"꿈이 있어 민머리의 아픔도 잊어요"

2004년 10월 태극마크를 가슴에 새긴 이지은(17ㆍ전남제일고 1년)양. 그는 지난해 11월 마카오에서 열린 제4회 동아시안게임 여자 자유형 4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상식에서 감격적인 순간을 만끽한 이 양은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에도 수영모를 벗지 않았다. 민망한 민머리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한 때는 그만둘까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이 옆에서 지켜주셨습니다.”

7살 때부터 원형탈모증을 앓아온 이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설상가상으로 온몸의 털이 빠지기 시작했다.

탈모증엔 약제를 머리에 바르는 것을 제외하고 뾰족한 치료법도 없는 실정이지만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도핑테스트에 걸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수영 자유형의 대들보로 떠오르고 있는 이양은 168㎝ 55㎏의 당당한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파워 넘치는 스트로크로 동료들 중 발군의 실력을 자랑한다.

그가 수영을 시작한 때는 초등학교 3학년. 교내 수영 클럽 모집 광고를 보고 ‘이거구나’ 생각하고 부모님의 동의를 얻어 수영에 첫발을 내디뎠다.

“물 속에 들어가는 게 마냥 좋았어요. 그 때는 그냥 수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꽉 찼습니다.” 이후 뛰어난 재능을 보인 그는 수영을 시작한 지 1년 만인 4학년 때 전국소년체전 전남 대표로 뽑혔고, 초등학교 6학년 때는 50m와 100m에서 체전 2관왕을 거머쥐었다.

국내 대회를 싹쓸이하며 주목 받은 그는 2004년 마침내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팀 ‘김봉조 호’에 합류했다. 하지만 그동안 위기도 많았다. 탈모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여러 차례 엄습했다.

“‘왜 나만 이런 병에 시달릴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특히 사춘기 때 그랬습니다. 연습 후 모자를 벗으며 수건으로 머리를 닦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저에겐 ‘꿈’이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이양의 꿈은 2008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선수의 매운 맛을 수영 선진국 선수들에게 보여주는 것.

지난 2004아테네올림픽에서 여자 수영 사상 최초로 개인 혼영 8강에 진출한 남유선의 뒤를 잇겠다는 각오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