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데로 임하려는 검찰의 모습에서 국민은 따뜻한 기운을 느낀다.”

“밑으로 기어라.”

자리에 앉자 밑줄까지 쳐진 조간신문 칼럼 두 편이 언뜻 보인다. 공감의 표시로 스크랩을 해둔 성싶다.

15일 그를 만나러 간 곳은 죄를 짓거나, 억울한 일이 없으면 여간해서는 갈 일이 없는 장소다. 서울 서초동 검찰청 15층에 자리한 서울고검 이만희(59ㆍ사시 16회) 검사의 방이다.

총장보다 기수 높은 '현역 최고참'

그는 ‘현역 최고참’ 검사다. 직속 상관인 안대희(사시 17회) 서울고검장은 물론, 정상명(사시 17회) 검찰총장보다 기수가 높다.

1979년 최규하 대통령에게서 임명장을 받고 26년간 꼬박 검찰에 몸담았다. 함께 임명을 받은 검사로 아직 현역인 사람은 동기인 서진규(63) 서울고검 검사가 유일하다. 군법무관 근무까지 합치면 올해로 검사 생활 30년 째다.

최근 그는 명예퇴직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이달 말이면 30년 검사 생활을 접는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감이 익으면 스스로 떨어지듯 자리를 나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담담하게 소감을 밝혔다.

“주변에서 정년까지 계실 것으로 기대한 것 아닙니까?” “중간에 그만둘까 왜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그렇지만 하는 김에 30년을 채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위 ‘용퇴’도 생각했으나 자리를 지킨 셈이다.

사실 요즘 검찰에서는 총장 빼고는 계급 개념이 없어져 ‘용퇴’라는 개념도 없어졌다고 한다.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지방검사장, 고등검찰관, 검찰관 등 과거에는 5개 계급이 있었으나 이젠 총장 이외에는 계급의 구분 없이 모두 검사라는 것.

그의 첫 부임지는 대구지방검찰청이었다. 당시만 해도 선배 검사들은 ‘영감’으로 불릴 만큼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적 색채가 짙었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도 못할 만큼 검찰의 권력도 달라졌다. 국민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져 자칫 실수했다간 낭패보기 일쑤라고 했다. 그는 서울지검 남부지청 특수부장과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ㆍ대구ㆍ광주고검 검사를 거친 뒤 다시 서울고검으로 왔다.

“억울한 사람이 없어야 된다.”

이 세계에서 당위론이지만 실제로는 실현하기 힘든 명제가 그의 30년 검사 생활을 관통한 좌우명이다. 그는 검사 직의 임무를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 ‘인권 보장’이란 양 날개의 개념으로 요약했다. 사실 이 둘은 때때로 현실에서 모순되기도 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영혼의 아포리아(해결하기 힘든 난관)’와 같다.

민주와 능률이 조화하기 어렵듯이 실체적 진실과 인권은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과제다. 어찌보면 그것은 검찰권력의 운명이다. 그래서 그도 ‘그렇게 했다’라기보다 ‘그렇게 하겠다’는 평생 다짐을 했던 셈이다.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도 그의 준비는 여간 꼼꼼하지 않았다. 인터뷰 전에 기자가 쓴 글 몇 꼭지를 챙겨 읽었다. 그냥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간단한 답변 같아도 숙고없이 말하는 것 같지 않다. 오랜 검사 생활의 내공이다.

“완벽주의자 같으십니다” 라고 불쑥 질문 반 확신 반으로 묻자 그는 웃음으로 답한다. 그리고 축구로 치면 검사는 최종 수비수와 같은 사람이라며 ‘검사 풀백론(論)’을 펼친다. 검사가 뚫리면 끝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매사 꼼꼼하고 정확한 습관이 몸에 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매사에 철저히 준비하라.” 또 하나의 좌우명이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올라오는 항고사건은 다시 돌려보내지는 경우가 다른 이보다 많다. 자연히 그가 사건을 맡으면 후배들은 긴장하게 된다.

재임 중에 처리한 유명한 사건 하나를 소개해줄 것을 부탁하자 “별로 소개할 게 없다”며 굳이 사양했다. 언론이 기억할 만한 굵직한 사건이 없다는 설명이다.

▲ 그는 검사 직의 임무를 '실체적 진실의 규명'과 '인권 보장'이란 양 날개의 개념으로 요약했다. 사실 이 둘은 때때로 현실에서 모순되기도 한다. 어찌보면 그것은 검찰권력의 운명이다. 그래서 그도 '그렇게 했다'라기 보다 '그렇게 하겠다'는 평생의 다짐을 했던 셈이다.
/ 사진=김지곤 기자

대신 그는 공부 이야기를 꺼낸다. 사실 그는 검찰 내 대표적인 학구파이자 중국통으로 통한다.

대만과 미국에 유학하면서 중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까지 공부했다. 4개국 언어 모두 웬만한 대화에 문제가 없을 정도다. 박사학위도 땄다. 끝이 없는 공부 욕심 덕에 이뤄낸 성과들이다.

그의 생활은 ‘에누리’없이 규칙적이다. 사건 맡으면 하루 이틀 밤새워 일하는 것이 다반사인 검사 생활을 하며 몇 개의 외국어와 박사까지 한 그를 보면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그는 1994년 모교인 고려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 논문은 ‘범죄인 인도 조약’에 관한 연구이다. 미국과 일본은 1886년에 이미 범죄인 인도 조약이 체결했지만 한국과 미국은 그때까지 범죄인 인도 조약이 없다는 사실에 자극받아 이 분야 공부를 시작했다. 나

중에 그의 논문은 1997년 한-미 간 범죄인 인도 조약 협상에서 우리측의 귀중한 참고 자료로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이 얼 싼쓰’도 모르는 기자에게 자신의 저서라며 중국어로 쓰여진 논문을 서명과 함께 건넸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는 책이다.

중국법 전문가답게 그는 앞으로 짬이 나면 4차례의 수정을 거친 중국 헌법에 대한 해설서를 낼 계획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 헌법은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라는 모토로 쓰여진 것이지만 도대체 무엇이 중국적 특색인가에 대해선 아직도 결론내기가 쉽지 않아 연구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술은 경직된 검찰 조직의 윤활유"

그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서울서 하숙 생활을 했다. 선후배 간 엄한 학풍으로 이름 난 중동고등학교가 그의 모교다.

넘치는 패기로 종로통을 휘어잡았던 선배 주먹들의 일화로 화제가 옮아가자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지며 좀처럼 끝을 내지 못한다. ‘합천 촌놈’이 어린 나이에 상경해, 모든 것이 신기했을 시절의 일이니 남다른 기억을 가졌을 터이다.

“술은 좀 하십니까” 묻자 못한다는 소리는 안 한다. 상당한 주량인 듯싶다.

“그럼 ‘폭탄주’는 즐깁니까?” 그는 검찰로서는 한때 안 좋은 기억 탓인지 “요즘은 검찰 내부에선 안 한다”면서도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란다. 이어 펼쳐지는 술에 관한 그의 철학은 흡사 ‘폭탄주 예찬론’에 가깝다.

적당한 폭탄주는 검찰과 같은 상명하달 조직의 딱딱함을 깨는 여흥의 시간도 되고, 하의상달의 의사소통 기능을 한다는 것. 그래서 늘 긴장 속에서 사는 검찰에게 2잔 정도의 폭탄주는 마치 가벼운 등산과도 같다고 했다.

그는 슬하에 남매를 뒀다. 둘 다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내일모레 환갑의 나이에도 군살 하나 없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틈틈이 하는 국선도 덕이다.

검찰 내 드물게 중국통인 그는 중국 법률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로펌들 사이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30년 다니던 직장을 떠나니 섭섭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무슨 소리”냐며 “신이 날 정도”라고 했다. “30년 동안 검사 했으면 국가에 봉사도 한 셈이고 이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부담없이 하게 됐는데 왜 안 즐겁겠냐”는 것이다.

이달 검찰을 떠나면 그는 국내 로펌에서 변호사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조신 차장 shin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