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합·단결·웅비의 교내 분위기 다지고 8월 퇴임… 생명공학계 거목

2단계 BK21에 14개 사업단 선정, 16개 건물 완공 혹은 신축, 신임교수 400명 초빙···.

학교 건물에 내걸린 대형 플래카드에 쓰인 ‘도약하는 건국’이란 문구가 결코 허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이다. 올해 개교 60주년을 맞은 건국대학교에는 요즘 새롭게 활기가 넘쳐난다.

“비행에 비유하자면, 이제 눈부신 비상을 위한 ‘이륙’ 단계에 들어섰다고 확신합니다.”

8월 정년 퇴임을 앞둔 정길생(鄭吉生ㆍ65) 건국대 총장. ‘대학의 위기’가 사회적 이슈로까지 떠오른 요즈음, 학내 안팎의 숱한 난기류를 뚫고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는 건국대의 중심에 그가 서 있다.

“4년 전 총장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2011년까지 건국대를 명문 사학 5위에 진입시키는 기반을 닦겠다 약속했습니다. 그때는 다들 될 성싶지도 않은 말을 한다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됐습니다.”

2002년 9월, 취임 직후부터 정 총장은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참으로 많은 땀을 흘렸다.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은 정 총장이 학교를 키운 키워드다. 덕분에 정 총장이 일하는 총장실은 역설적이지만 ‘철옹성’이라고 불리며 타 대학들로부터 부러움을 샀다.

“지난 4년간 우리 학생들은 한번도 총장실에 난입, 점거한 적이 없어요. 크고 작은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의 다른 사립대학들에게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로 보이겠지요.”

물론 대학뿐 아니라 어느 조직이든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부르짖지 않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화합’의 구현이 그렇게 말처럼 쉽게 되는 일은 아닐 터. 그는 먼저 학교의 실질적 주인인 학생들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몸을 낮추었다고 비결을 밝힌다.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는 학생들에겐 총장이 아니라 선배로서 다가갔다. “워낙 가난하게 자라서 학생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학생들이 예닐곱 번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다시 설득을 위해 무릎을 맞대고 얘기하는 장을 만들었죠.”

4대 인프라 구축에 전력 쏟아

정 총장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건국의 비전’으로 옮겨갔다.

총장 재임 중 그가 제시한 건국 발전의 청사진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단합을 다지는 초석이 됐음은 물론이다. 대학은 어디까지나 “교육과 연구의 산실이 돼야 한다”는 믿음이 그 바탕이다.

그는 소위 ‘4대 인프라’ 즉 ▲ 인적 ▲ 물적 ▲ 제도적 ▲ 재정적 인프라 구축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는 먼저 교육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신임 교수 400명과 행정 요원 50명을 영입했다. 행정요원들의 경우 100~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온 인재들.

게다가 의생명공학연구원 등 대학이 명운을 걸고 육성중인 분야에는 포항공대, 미국 우주항공국(NASA) 등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모셔왔다. 이들은 총장보다도 연봉이 높다. 연공서열이 중요한 대학사회에서 과히 파격적인 일. 그러나 정 총장은 “최고의 교수진으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좋은 학생을 유치할 수 있다”며 석학 초빙을 밀어붙였다.

이러한 정 총장의 전략 덕에 최근 건국대의 입학경쟁률은 서울캠퍼스와 충주캠퍼스를 막론하고 해마다 치솟고 있다. “지난 입시에서 충주 캠퍼스 경쟁률이 평균 6~7대 1로 나타났어요. 미달 사태가 빈번한 지방대에서 있을 수 없는 기록”이라고 자랑한다.

관례를 거부하는 그의 자유로운 사고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영됐다. 행정 시스템을 일반 회사처럼 팀제로 운영한다. 과거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평가했다면, 아랫사람도 윗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쌍방향 평가제를 도입한 점이 그것이다.

정 총장은 또 취임하자마자 건물 신축에 나섰다. 지난 4년의 재임기간 동안 새로 준공했거나 완공한 건물만 무려 16개 동에 달한다. 취임 이전의 학교 전체 건물 면적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다.

그는 “군대 갔다 복학한 남학생들이 ‘이게 정말 건대 맞아’라며 놀랄 정도”라고 말했다고 웃는다. 이를 위해 그는 사립대학으로서는 전국 최대 규모인 약 2,400억원에 달하는 재단 지원금을 끌어냈으며 발전기금으로 200억원도 모금했다.

이처럼 정 총장이 재임 기간 이뤄낸 성과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숨이 찰 정도로 눈부시다. 인프라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학교도 하루하루 성장해갔다.

‘의생명공학연구원’ ‘차세대혁신기술연구원’ ‘동아시아연구원’ 등 학문 영역을 특성화했고, 외국인 전임 교수를 30명이나 채용해 원어 강의를 200개나 개설하는 등 캠퍼스 내 국제화도 이뤄냈다. 교육ㆍ연구ㆍ행정업무 모두 컴퓨터 안에서 이뤄지는 ‘정보화’의 기틀도 마련했다.

정 총장은 이러한 변화의 성과를 모두 “전폭적인 재단의 지원과 협조, 그리고 대학 발전을 위해 한마음으로 따라준 학생과 교직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러나 그가 학교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천에 옮긴 수많은 개혁방안을 보면, 탁월한 경영 마인드를 익히 가늠케 한다. 정 총장은 이에 대해 “경영 지식은 많지 않지만, 학교에 대한 애정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59년 축산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면서 건국대와 인연을 맺은 정 총장은 졸업 뒤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 도쿄(東京)대학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와 73년부터 건국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학했던 10년 기간을 제외하곤 건대를 떠나 생활해 본 적이 없어요. 교정의 나무 한그루의 역사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어찌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있겠어요?”

애정과 있으면 목표는 절로 찾게 되는 법이다. 그가 건대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데 유리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준비된 총장으로서의 자질 형성은 10대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고등학교도 다니기 어려운 집안 형편이라 고시합격이 유일한 학업의 길이었던 시절이었다”며 “혹독한 독학의 경험이 훗날 사고를 유연하게 만드는데 기여한 것 같다”고 말한다.

8월이면 정 총장은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한다.

‘정년 퇴임’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그는 “24시간 ‘대학’만을 생각하며 4년을 보냈다. 이제 에너지가 다 고갈되어 가는 느낌”이라며 “대학 발전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물러날 절호의 시기라 생각한다’고 애써 아쉬운 심정을 감췄다.

도약 기틀 마련한 후회없는 4년

▦ 정길생 총장은
△ 1941년 경남 산청 출생
△ 1959년 경남 안의고등학교 졸업
△ 1965년 건국대 축산학과 졸업
△ 1973년 일본 토쿄대 농학박사
△ 1973~ 현 건국대 축산학과 교수
△ 1973년 건국대 축산대학장
△ 1996~98년 건국대 부총장
△ 2002~ 현 건국대 총장

후임 총장에 대한 기대를 묻자 “건대는 이제 일어서려고 한다. 이 의욕을 사장시키지 않고, 더욱 불을 지필 수 있는 총장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총장 재임기간 중에는 학교에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각오가 중요하다”고 애정어린 당부를 남겼다.

그는 전공분야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룬 학자형 총장으로도 유명하다. 황우석 박사로 인해 근래에 주목 받은 축산ㆍ생명공학 관련 연구를 국내 처음으로 개척한 이가 바로 그다. 해외에 발표한 논문만 97편, 국내 논문 300편, 저서만 해도 22권에 달한다.

카이스트 한용만 박사, 축산기술연구소 장원경 박사, 차병원의 정형민 박사, 마리아병원의 박세필 박사 등 쟁쟁한 생명공학 학계 리더들이 모두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소위 ‘정길생 사단’으로 알려져 있다.. 95년부터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종신회원을 맡고 있다.

학문의 태동에 앞장섰던 선배 학자로서 정 총장은 요즘 ‘저출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 수 있는 해법 찾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 불임 여성이 전체 여성 중 12%나 됩니다. 이 여성들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해도 저출산의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입니다.” 퇴임 후의 계획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말은 아꼈다. 그러나 ‘연구의 길’로 돌아갈 의향을 이렇게 내비쳤다.

평생 학문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학자여서일까. 풍모에서부터 고결한 선비의 느낌을 주는 정 총장은 점점 입시기관의 양태를 띠는 상아탑의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대학이 취업기관처럼 변모해가면서 전문 지식인은 많이 양성되는데 정작 지성인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워요. 대학이 본연의 상아탑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론 대학의 존재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일생을 학교 발전에 기여하고 떠나면서도 걱정이 그치지 않는다.

끝으로 정 총장은 ‘건국대 바로 보기’를 당부하는 말을 남겼다.

“과거 농축산 대학으로 널리 알려졌던 건국대는 현대에는 걸맞지 않는 낡은 대학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의생명공학 등 최첨단 학문의 장으로 다시 태어났다. 달라진 건국대를 주목해달라.”

이제 캠퍼스에서 몸은 떠나지만, 그는 건국대 비상의 ‘명 비행사’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