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의사 남영한 박사, '한민족 평화병원' 건립 추진

/ 김지곤 기자
1983년 2월25일 오전 북한 공군의 이웅평 대위(2002년 작고)가 미그 19기를 몰고 서해 북방 한계선을 넘어 한국 품에 안겼다. 당시는 한-미 합동 팀스피리트 훈련 등으로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됐던 터라 이 대위는 일약 ‘귀순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시절 미국 오리건 주립대에서 치예과 과정을 밟던 한국인 유학생 한 명은 우연한 기회에 신문에 실린 이 대위의 수기를 접하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것’이 솟구침을 느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의사로서의 성공도 좋지만 분단 조국을 위해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2000년 6월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남북 정상이 악수를 하는 장면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렸다. 그때 예전의 그 유학생도 이 감격적 모습을 TV로 지켜봤다. 미국 LA 교민사회에서 성공한 치과의사로 자리잡은 남영한(61)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귀순 용사 이웅평 대위가 술회한 북한 사회의 참상과 남북 사이에 항상 도사린 전쟁 위기를 보면서 휴전선에 병원을 세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죠. 미움과 적개심이 끓어오르는 휴전선에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병원을 세운다면 한반도 평화 구축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조금씩 키워오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마침내 실천에 나서기로 결심하게 됐습니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의 씨앗 뿌리기를 목표로 ‘한민족 평화병원’ 건립에 나선 남 박사는 우선 뜻을 같이 하는 교민들을 규합했다. 2004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정식 인가를 얻어 ‘한민족 평화병원 건립재단’(Peace Hospital Foundation)을 발족시켰다.

교민 사회의 명망가들도 그의 취지에 공감하고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워싱턴주 상원의원 신호범 박사 등은 재단의 고문이나 자문 역할을 기꺼이 수락했다.

그러나 한민족 평화병원 건립은 재단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사업. 그래서 남 박사는 미국 교민 사회에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하는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는 한편 고국에도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나섰다.

다행히 한국 내 협력자들도 늘고 있다. 남북평화사업 범국민운동본부(평사운)는 첫 번째로 어깨를 맞잡은 협력단체다.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 곽태환 전 통일연구원 원장, 장성민 전 국회의원 등 북한 전문가들도 고문으로 참여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사업의 취지를 국제 사회에 널리 알려 지지를 얻기 위해 대외 활동에 적극 나설 작정이다.

이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추천서를 받아 유엔의 한민족 평화병원 건립 지지 결의(resolution)를 얻어내는 것은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남 박사는 고국을 방문해 재단 및 평사운 관계자들과 함께 16일 광주서 열린 ‘2006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에 참석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등 14명의 수상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 성공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바로 남북한 당국, 국민, 해외 동포 등 한민족 전체의 성원과 지지다. 이를 위해 고국을 떠나 사는 동포들이 먼저 솔선수범할 계획도 세웠다. 100만 동포를 후원자로 확보해 사업 추진에 필요한 약 1억 달러의 예산을 마련한다는 것. 아울러 남북 당국에는 각각 100만평의 병원 부지 제공을 요청하기로 했다.

남 박사는 우선 어린이 병동과 재활 병동을 먼저 세운 뒤 순차적으로 문화, 예술, 체육 시설 등도 지어 한민족 평화병원을 민족 교류와 화합의 장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는 야심찬 청사진도 갖고 있다.

그는 “한민족 평화병원이 세워지면 남북한 주민들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상징적 장소로, 또 세계 각국에는 분쟁 지역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의미를 강조했다.


김윤현 기자 uny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