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희 전 교사, 재단비리 폭로로 파면 뒤 거리수업

▲ 13일 ‘파면 교사’ 조연희 씨가 서울 시흥동의 주택가 공터에서 거리수업을 하고 있다.
"비 그치고
막차를 기다리고 선 가리봉의 밤
차는 오지 않고
밤마다 쪽배 마냥 작은 리어카를 끌고 온
한 노인이 내 앞에 멈춰 선다"

“자, 이 시의 화자는 왜 노인의 모습을 보고 목이 메였을까요?”

13일 오후 서울 금천구 시흥동 주택가 주차장을 낀 제법 널따란 공터. 전 동일여중 국어교사 조연희(42ㆍ여) 씨가 이 지역 출신 송경동 시인의 <막차는 없다>란 작품을 낭낭한 목소리로 제자들에게 읊어준 뒤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이에 학생 서너 명이 손을 들고 차례로 자기 생각을 말한다. 거리수업이다.

이날 오후 3시부터 50분 동안 이어진 조 씨의 이번 거리수업은 지난 11일에 이어 두 번째다. 참석 학생 수는 200여 명. 모두 누가 시켜서 온 것이 아니다. 몇몇 옛 동료들도, 학부모들도, 골목 주민들도 ‘참관인 자격’으로 빙 둘러섰다.

거리를 오가는 차들이 내는 소음이 간간이 들리고 행인들이 이따금 기웃거리는 ‘열린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학생들의 얼굴에는 한결같이 진지함이 묻어있다.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운 채 조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조 씨는 해직교사다. 그래서 학교 대신 거리로 나선 것이다. 3년 전 동료 교사 2명과 함께 급식비, 동창회비, 장학기금 등에 관련된 학교재단의 비리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2월 학교측으로부터 해직 처분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29일 마침내 파면을 통보받았다.

해직 처분 이후 조 씨는 1년여 수업을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꼬박꼬박 출근했지만, 내내 교무실에만 앉아있어야 했다. 그러다가 교문 앞 1인시위에 나섰다. 학교측에서 파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때문이었다.

“1인시위를 하면서 지나치는 학생들과 눈짓을 주고받고 말을 나눠보고 하다 보니까 어느덧 친해졌습니다. 애들이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시와 나의 느낌을 적은 유인물을 서너 번 나눠줬지요. 그랬더니 학생들이 그걸 갖고 토론을 벌이는 거예요. 나에게 수업을 받고 싶다고도 하더군요. 그래서 마음먹었죠.”

조 씨가 거리수업에 나선 이유다. 수업의 주된 내용은 시다. 그는 시를 무척 좋아할 뿐만 아니라 시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했다.

재단 비리를 폭로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조 씨는 교사로서의 양심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학생들을 상대로 상업적 이익만을 좇는 재단의 행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쫓겨난 조 씨는 지난해 12월 한국투명성기구가 주는 투명사회상을 수상했다. ‘투명한 학교 운영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기여’한 공로다. 물론 함께 파면 당한 다른 2명의 동료교사와 받았다.

조 씨는 학생들 앞에 다시 당당하게 서는 그날이 올 때까지 거리수업을 앞으로 계속할 작정이다. 몇 명이 참석하든 개의치 않겠단다.

“거리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입이 안 떨어져 혼이 났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큰 소리로 호응을 해 주니까 기운이 솟더라구요. 학생들이 너무 고마워요.”


송강섭 차장 speci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