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개봉 '사랑 따윈 필요 없어' 주연… 세상에 눈감은 시각장애인 성숙한 열연

마냥 맑기만 한 그녀의 미소에 슬픔이 깃든다. 언제나 솔직하던 그녀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스무 살의 문근영. 그녀가 깊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서 밝은 웃음 속에 감춰진 또 다른 모습을 꺼내 보이려 한다.

11월 9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 따윈 필요 없어’(감독 이철하, 제작 싸이더스FNH)에서 문근영이 맡은 류민은 세상 모두가 부러워하는 부를 상속 받았지만, 어려서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 역시 세상을 떠나 세상과 소통을 단절한 시각장애인. 어둡고, 쓸쓸한 역이다.

깜찍 발랄함이 매력인 ‘국민 여동생’ 문근영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인다. 9일 서울 신사동 코오롱주택문화관에서 열린 영화 ‘사랑따윈 필요 없어’ 제작발표회를 통해 공개된 짧은 영상에서도 그 변화가 전해졌다. 문근영은 눈으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처연한 분위기로 표현해 눈길을 모았다.

문근영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믿지 못하며 ‘사랑 따윈 필요 없다’고 말하는 민은 그래서 사랑이 더 필요한 아이”라고 ‘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며 “그런 아이가 사랑을 통해 세상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어서 어느 때보다 연기하면서 행복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밝은 캐릭터는 아니지만 정말 너무나 행복하게 사랑했어요. 진짜 민이가 되고 싶었죠. 많은 분들도 영화를 보면서 그런 행복함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시각장애인 연기도 인상적. 굳이 장애를 과장해서 드러내거나 숨기지 않는다. 문근영은 “촬영 전 시각장애인들을 실제 만났다. 그때 받은 느낌은 한마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하는 것. 단지 다른 점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었다”며 “관객들에게도 그런 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달라진 문근영의 모습에 사람들은 ‘변신’이니 ‘충격’이니 하지만 정작 그녀는 담담하기만 하다.

“이전보다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보여드리려 하지만 일부러 변신하려 한 것은 아니에요. 그 역시 제가 갖고 있던 한 부분을 보여드리는 것이라 생각해요.”

성인이 된 후 첫 연기이기 때문일까. 연기 안팎으로 성숙함이 감지된다. 대학생이 되면서 스스로도 달라지는 자신을 느낀다나.

문근영은 “처음에는 대학생활과 연기를 병행하는 게 많이 고민이 됐다. 하나라도 망가지지 않을까 걱정했다”면서 하지만 “다행히 제작진이 촬영으로 인해 학교에 많이 빠지지 않게 배려해줘서 공부와 영화 모두 목표 삼은 만큼은 열심히 했던 것 같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대학생활이 연기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사실 촬영만 하면 제 감정에 빠져 자만할 수 있는데, 학교에 다니면서 그런 위험을 피할 수 있었어요. 여유롭게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말이죠.” 사뭇 의연한 태도로 조리 있게 말을 풀어가며 한층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여준 문근영은 그러나 사랑에 관한 질문 앞에서는 다시 살짝 소녀의 감성을 엿보인다. “앞으로 어떤 사랑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아직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며 수줍게 웃는다.

“아직 맛보지 못한 사랑이 많아요. 욕심이 많아서, 모든 사랑을 맛보고 싶어요. 지금은 좀 달콤한 사랑에 빠져보고 싶구요.” 대학생이 된 이후 더욱 단단해진 모습으로 관객 앞에 다시 서는 문근영. 과거 실제 여고생 신분으로 대중 문화계에 ‘여고생’ 바람을 일으켰던 그녀가 ‘여인’으로서의 도전을 이제 막 시작됐다.

류민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평범한 눈이 아니라 세상을 꿰뚫는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을까.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