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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도서관 사서 임미화
도서관을 움직이는 주역 司書
"책만 사랑해선 2%부족… 사람을 좋아해야죠"
서울시 사서 공채 1기, 올해로 23년째… 사람 상대가 가장 곤용
"책, 지긋지긋할 만도 한데… 파묻혀 있다보면 책의 마력에 빠져"







코 앞에 책이 산더미라도 읽을 틈이 없어 못 본다. 막노동은 기본. 허리와 손목이 무시로 삐걱거린다. 토, 일요일도 없다. 휴관일에도 평일처럼 일한다. 그래도 1년에 한두 번씩 공습하는 장서점검 때보다야 낫다. 오죽하면, 전연 저지르지도 못할 잔꾀까지 공연히 발동할까 보다.

“그때 일부러 연가를 낸다든지, 연수를 신청한다든지···(웃음). 하지만 진짜 그랬다간 동료들만 더 고생시키기 때문에 안 되지요. ”

남산도서관의 베테랑 사서 임미화(44) 씨. 자료봉사과 자연과학실장으로 근무 중이다. 사서로 일한 지 올해로 23년째를 맞는다. 임 씨는 1984년 서울시의 사서 공채 1기로 채용돼 그동안 용산, 남산, 동대문, 마포 어린이도서관 등을 거친 뒤 남산도서관에 온 것만 이번이 두 번째다. 서울의 공공도서관들을 누비는 동안 사서에게 맡겨지는 웬만한 업무란 업무는 모두 거쳐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한마디. 우아한 사서? 아니면, 나른한 오후의 한가한 사서? 다 틀렸다.

“저도 대학입학 때 막연한 생각으로 문헌정보학과를 지원했었어요. 하지만 막상 공부를 하고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처음엔 갈등이 많았지요. 하물며 도서관 사서가 돼 보면 배운 것과 더더욱 차이가 납니다. 사서는 책만 사랑해서 되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람을 좋아해야 되는 일이예요. ”

도서관을 움직이는 주역인 사서(司書). 책이 들어오고 나가기까지 모든 과정에 사서들의 손이 닿는다. 필요한 책들을 선정하고 구매하는 작업인 ‘수서’, 그렇게 들여온 책들을 분야·주제별로 분류하고 목록을 만들어 자료화하는 ‘분류·목록’ 작업, 그리고 책과 이용자들을 연결해주는 ‘열람봉사’가 사서들의 주요 역할이다. 도서관의 각종 문화행사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사서들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남산도서관의 경우 주기적으로 들여놓는 장서가 1년에 약 1만6,000권에 이른다. 수서를 맡은 사서는 미리 도서정보를 탐색하는 일로부터 첫 땀을 흘린다. 추천도서, 권장도서, 수상작 등 좋은 책으로 소문난 책들이란 책들은 모두 리스트를 구해 모은 뒤 하나둘씩 알짜들을 골라낸다. 이용자들이 신청한 희망도서는 1순위다.

수서를 담당한 사서는 큰 분야별로 각 1명 정도다. 어떤 책을 마련할지 홀로 고민하고 혼자 판단해야 한다. 남모르는 부담감이 사서의 어깨에 얹힌다. 자신이 선택한 책들에 따라 도서관의 질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엔 만화책 한 권을 들여놓았다가 학부모 이용자들의 항의세례를 받았던, 만화같은 시절도 있었다.

새 책을 구입하는 마지막 관문은 ‘현장수서’다. 직접 대형서점 등에 출동해서 사야 할 책들의 장정이나 내용, 품절 여부 등을 하나하나 확인한다. 현장수서는 체력전이다. 쉴 새 없이 서점 안 곳곳을 헤집고 다니며 사방에 흩어져있는 책들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낸 책은 저자와 출판사, 파본여부 등을 확인해 종이에 일일이 메모한다. 1,000여 권의 책을 확인하는 데 허락된 시간은 단 2, 3일밖에 안 된다. 임 씨가 처음 현장수서를 나갔던 날엔 딱 하루 일하고도 다음날 아예 일어나지도 못했다.

책이 서기에 꽂히기까지 사람 손 19번 거쳐

마침내 새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다른 사서들이 또 바빠진다. 이를테면 책들의 ‘반(班) 편성과 출석부를 만드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 각각 장르·주제별로 분류한 뒤 고유번호를 매기고 도장을 찍고, 스티커를 붙인다. 책에 도장을 찍는 건 분실과 도난을 대비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도서관 직원들만 아는 특정 페이지의 ‘은인(隱印)’을 찍거나 뒷표지 안쪽에 주머니식 대출카드집까지 붙여야 했던 옛날에 비하면 일손이 많이 덜어졌는 데도 여전히 만만찮은 일거리다. 기본손질이 끝난 책들은 자
료화 과정으로 넘어간다. 새 책에 대한 필수 정보들이 사서들의 손을 타고 컴퓨터에 하나하나 입력된다. 이용자들을 만나기 전 마지막 절차다.

“책 한 권이 도서관 서가에 꽂히기까지 최소한 19번 사람의 손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은 정성이 든 만큼 적시, 적소, 적절한 이용자에게 제대로 활용이 돼야 그 땀이 헛되지 않다는 얘기지요. ”

책들이 비로소 열람실 서가에 줄지어 꽂힌다. 이때부터는 열람봉사실 사서들이 분주해진다. 책을 빌려가려는 이용자들의 회원 카드를 만들어주거나 대출·반납을 관리하는 일, 이용자들의 상담에 따라 필요한 도서정보를 제공하며 도와주는 일 등이 이뤄진다.

책이 엉뚱한 자리를 배회하는 것만큼 사서들에게 민감한 일은 없다. 이용자들이 요구할 때 빨리 찾아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제때 내줄 수 없으면 죽은 책이나 다름없다. 사서들이 수시로 서가를 돌며 확인한다. 한 번만 쓱 시선이 스쳐도 길 잃은 책은 바로 사서의 레이더에 걸린다. 분류코드의 힘이다.

때로 책보다 사서들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건 ‘사람’이다. 도서관은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예측불가의 열린 공간이다.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 임 씨가 속한 자연과학실의 경우에만 하루 약 130명을 맞는다. 인문과학실이나 어문학실에 비하면 그나마 절반밖에 안 되는 숫자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응대하기란 어느 직업에서든 쉽지 않은 일. 책의 대출이나 반납과정에서는 사소한 실랑이가 자주 벌어진다.

환란 때는 실직자들이 부쩍 많이 찾아왔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인지 이들에겐 조그만 일도 곧잘 시비거리가 되곤 했다. 주로 사서들이 화살받이였다. 실직률이 다시 줄어들 때까지 사서들은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더 난처한 단골들도 있다. 남산도서관은 위치 특성상 주변에 노숙자들이 많은 곳이다. 돈 없고 오갈 데도 없는 이들에게 도서관은 인기 있는 소일장소 중 하나다. 노숙자가 방문하는 날은 이용자들의 민원도 함께 늘어나는 날이다. 주로 악취 때문에 사단이 벌어진다.

“한번은 민원을 받고 가보니, 얼마나 오래 갈아입지 않았는지 바지가 삭을 대로 삭아서 3분의 2만 겨우 남고 속옷도 입지 않은, 그런 분이 앉아 계신 거예요. 내보내긴 내보내야 하는데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오시라고 좋은 말로 설득해서 겨우 내보내긴 했는데, 그럴 때 참 쉽지가 않지요. ”

본의 아니게 경찰서에도 두 번이나 다녀 온 임 씨. 한번은 이용자들끼리 싸움이 벌어진 것을 진정시키려 도서관 밖으로 내보내려다가 한 사람의 행패로 결국 경찰 도움을 받아야 했다. 더 섬?한 봉변은 어느 화창한 아침에 있었다. 출근 후 막 업무 준비를 하던 중 복도의 컴퓨터 앞에서 음란사이트를 펼치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걸 보시면 안 된다’고 제지하자 남자는 욕설을 퍼붓더니 급기야 임 씨가 일하는 자리까지 따라와 갑자기 칼을 들이밀었다. 역시 경찰이 출동해 데려가고서야 겨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중에 조서 때문에 경찰서에 갔었는데, 그래도 그 칼을 들고 다른 곳에 가서 해 끼치지 않고 일단 도서관을 찾아 온 사람이라는 걸 감안해서 선처해달라고 했어요. 어쨌든 그 후론 이용자들을 대할 때 아무래도 전보다 좀 경계가 되더라구요. ”

눈 침침 목 칼칼… 허리·손목 등 성한데 없어

남산도서관 전체 장서 수는 약 46만 권.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장서 점검은 목록대로 도서관의 책들이 제대로 다 있는지, 훼손된 것은 없는지, 책들의 안부를 일제히 확인하는 날이다. 이때는 전담 업무를 막론하고 관내 사서들이 총동원된다. 그 어느 때보다 고된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자연과학실의 경우 소장도서는 총 11만 권 정도. 사서 3명이 맡을 몫이다. 한 권당 30초씩, 하루 8시간 동안 꼬박 앉아서 본다고 해도 족히 두 달은 걸릴 분량이다. 눈은 침침해지고 목에는 기침이 걸린다. 깨알 같은 활자에다 미세한 종이 먼지 때문이다. 와중에 비염을 얻는 사서들도 적지 않다.

아프기로 치면 허리와 손목도 빼놓을 수 없다. 책을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하기 일쑤다. 운반용 카트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서가에 꽂자면 직접 들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서가에 비스듬히 누운 책들을 바로 일으켜 세우는 과정에서 손목도 곧잘 상한다. 열람봉사 사서들의 경우엔 이용자들을 맞을 때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느라 허리가 성치 않다.

“87년인가 구일서(남산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옛 일제 시대 때의 도서들) 5만 권을 정리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워낙 오래 서고에 쌓여있다보니 쥐 오줌, 똥에다 책벌레까지 붙어서 책 상태가 아주 엉망이었거든요. 잘못 만지면 바로 종이가 바스라질 만큼 낡아서 먼지를 털지도 못하고 마스크랑 장갑을 끼고 일했는 데도 작업이 끝난 뒤엔 피부병, 기관지염, 비염으로 병원에 다닌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

여가는 거의 포기하고 산다. 주말 근무는 물론이고 평일에도 퇴근 시간이 늦은 편이다. 부서에 따라 저녁 8시 또는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특근과 야근이 돌아온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휴관일에도 예외없이 출근해 밀린 대청소 등을 한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뭘까? 사서라서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만족감이 한켠엔 자리잡고 있다. 언젠가 임 씨는 자신의 참전기록을 찾지 못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며 애태우던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근거 기록이 나올 만한 자료나 고문헌들을 열심히 찾아가며 담당자에게 연결해주었다. 얼마 뒤 결국 원하던 기록을 찾아내 유공자로 인정받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신참 시절 한창 갈등에 빠져 있을 때에도 ‘어디에서 일해야 할까’를 고민하긴 했어도 책을 떠난 직업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청소년 대상 독서치료 진행, 긍지와 보람 느껴

임 씨는 요즘 특히 독서지도에 마음이 많이 끌린다.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녔다고 그는 믿고 있다. 실제로 작년부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치료를 맡고 있는 그는 현재 대학원에 다니며 전문 사서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책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책 때문에 행복하기도 합니다. 특히 제가 권해준 책 한 권이 그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새삼 제가 맡은 일의 중요함과 긍지를 느낍니다. 누군가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아주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 사서가 되려면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어야 국·공립도서관을 비롯해 대학도서관, 연구기관 등에 사서로 취업할 수 있다. 4년제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면 졸업할 때 2급 정사서 자격증이, 2년제 대학에선 준사서 자격증이 주어진다.

공공도서관의 경우 최근 들어 채용 기회나 모집 인원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준사서 자격증 이상을 갖추면 응시할 수 있으며 대우는 공무원 규정에 따른다.

시험 경쟁률이 높고, 채용된 후 이직률이 낮아 현재 사서직의 고령화 현상이 뚜렷하다. 때문에 서울시 도서관 사서의 경우 과거 2, 3년에 한 번씩 채용시험이 실시되던 것이 최근에는 4, 5년 주기로 길어졌다.




입력시간 : 2006/11/27 15:21




글,사진 정영주 pinpl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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