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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영업맨 이준일 씨 "사람 빼고, 팔 수 있는건 다 팔죠"
[직업의 세계] 변화무쌍한 세계를 상대하는 지식노동자
전력적 사고와 정신력·체력 무장 대우인터내셔널 세일즈맨
입사 3,4년차부터 본격 해외살이… 1인 기업 사장과 다름없어





‘또다시 보따리를 싼다. 아내의 눈초리가 따갑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이번 출장은 왠지 가슴이 무겁다.’

그의 비장한 일기의 한 편은 그렇게 시작된다. 종합상사 ‘대우인터내셔널’의 철강2본부 냉연1팀 이준일(45) 부장. 너무나 혹독했던 2000년 겨울의 힘든 삶의 편린들이 그의 수첩에 빼곡히 담겨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당시 무역업계에서 내로라 하는 선두권 종합상사. 이 부장은 줄곧 해외 영업맨으로 20년 동안 한길을 뛰어온, 실력파 베테랑이다.

“우리는 아메바입니다. 잘 변신하지 못하면 죽습니다. 매사 치밀하고 계산도 빨라야 합니다. (무역업은) 힘들기도 하지만, 아주 재밌고 그래서 더욱더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일반 기업의 부서와는 달리, 개개인의 역량이 회사 전체의 매출을 좌우할 수도 있는 종합상사는 해외 영업의 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이라면 무엇이든 판매 대상이다.

작게는 바늘에서부터, 크게는 직접 공장을 지어 통째로 매각하는 플랜트 수출까지, 상품으로 팔 수 있는 것은 모두 판다.

아프리카 오지 등 지구촌 곳곳 발길이 안 미치는 곳이 없다. 가진 장비라고는 몸과 전화, 컴퓨터 정도가 전부. 나머지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협상력, 끈기로 해결해야 한다. 이 부장은 “앨빈 토플러가 말한 지식노동의 가장 대표격인 직종이 이 분야”라고 강조한다.

종합상사에 입사하면 약 3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친다. 선배들 곁에서 현장 실무를 배우며 기본 훈련을 받는다. 대리급 말년 또는 과장급 초기쯤에 본격적으로 야생으로 방목된다.

해외 지사의 주재원으로 4, 5년간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 전 세계 100여 곳에 지사망을 갖춘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주재원 발령이 잦은 편이다.

■ 신규거래 계약률 2~3%면 성공작

정년 때까지 국내외 근무를 교대로 반복한다. 경륜이 쌓일수록 해외 출장 횟수는 늘어난다. 해외 파견 주기 또한 짧아진다. 전무급 임원들도 해외 주재원으로 나가는 경우가 꽤 많다.

종합상사 해외 영업부의 특성이다. 국내 근무 기간에도 해외 영업인들의 생활은 24시간 비상대기 상태나 다름없다.



자신이 담당한 상품의 공급량을 확보하는 일로부터 전투가 시작된다. 이 부장이 속한 철강 본부의 경우, 경쟁사들 간에 물량 확보 전쟁이 치열하다.

“말하자면, 원형경기장 안에서 같은 먹이를 놓고 맹수들끼리 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때로는 치사한 방법도 등장하죠. 예를 들면 이미 계약이 다 성사된 상태에서 경쟁사가 끼어들어 악성루머를 퍼뜨려 훼방을 놓는 식이죠. 그럴 땐 정말 피눈물납니다.”

이미 계약이 맺어진 거래선이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행여 도중에 경쟁사가 계약을 낚아채지 않을까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 채 긴장를 풀지 않는다.

더불어 기존 판로를 유지하고 새 시장을 개척하는 임무도 동시에 진행된다. 해마다 팀별로 주어진 목표치를 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거래처가 내일의 거래처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

기존의 판로는 사수하고, 어떻게든 기존 시장의 틈새를 찾거나 신규 상품 등을 개발해 끊임없이 새 시장을 찾아야 한다.

통상적으로 하나의 거래선을 새로 뚫는데 걸리는 기간은 아무리 빨라도 3, 4년. 사전 준비 작업까지 합치면 10년 정도 공을 들여야 한다. 이만한 장기전에 그나마 소득이라도 거두면 다행.

대개 신규 시장의 경우 100곳을 두드려 2, 3곳에서 계약을 따내더라도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며칠 전 이 부장이 다녀온 남미 출장 건만 해도 이미 5년 전부터 설득한 결과가 이제야 조금씩 계약으로 성사되는 상황이다.

“출장을 갈 때도 온통 새로운 판로 생각뿐이예요. 어떨 땐 호텔에 묵으면서 그 방에 있는 전화번호부를 펴놓고 거기에 나온 현지 철강업체 명단을 찾아 무작정 일일이 전화를 걸었던 적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우연히 기내 잡지에서 순간온수기와 아파트 광고를 보고는 거기에 실린 업체에 연락해 접촉한 경우도 있었어요.

아주 무식한 방법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해서 계약이 성사된 경우도 많습니다. 인터넷 자료 검색은 물론이고, 동종업계의 세미나나 박람회, 경제단체를 찾아가 자료를 수집하기도 하는 등 접근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씁니다.”

국내 근무 중에도 긴급 상담을 요하는 바이어들의 국제전화가 회사든 집이든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다. 시차 때문에 낮과 밤이 엇갈리기 한다. 새벽에 걸려온 전화를 받다가 아파트의 경비원이 올라와 ‘주민들이 항의하고 있다’며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

그가 맡고 있는 철강재 산업 특성상 외국의 거래 회사들은 주로 자동차, 가전제품, 조선 업체들이 주류다. 낯선 이국 땅에서 외판원 취급을 받으며 문전박대당하는 설움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아예 정문의 수위의 제지로 회사 마당조차 밟아보지 못하고 쫓겨날 때도 있었다. 그럴 땐 정문 앞에서 매일 죽치고 기다린다. 초창기엔 ‘내가 고작 이걸 하려고 여기에 왔나’ 자괴감도 느꼈다고 한다.

“양복만 멀쑥하게 입었을 뿐, 신발에는 뽀얗게 먼지가 덮여있고 밥도 쫄쫄 굶은 채 무작정 기다릴 때는 그렇게 자신이 초라할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점점 그런 일에 익숙해지면서 결국 원하던 일을 성취했을 때의 기분이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거의 중독에 가까워요. 그것에 빠지다보니 결국 오늘까지 온 거구요.”

■ 자부심과 오기로 외환위기 극복

이 부장은 1986년에 입사, 첫 부서로 중국팀에 배치되었다가 ‘보다 역동적인 승부’를 하고 싶다며 해외 영업부를 자원했다. 당시는 종합상사맨들의 자부심과 사회적 인식이 대단했던 황금기였다.

특히 국내 굴지의 종합상사에서 일한다는 자긍심도 높았다. IMF금융위기를 견디며 끝까지 제자리를 떠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같은 직업적 자부심과 오기때문이었다.



그는 94년 중국 하이난(海南)섬에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직접 틴 플레이트(Tin Plate, 깡통을 만드는 데 쓰이는 원자재 철판) 제조 공장을 세워 가동한 전력도 있다. 그리고 5년 뒤 매각 작업에 이르기까지 한 사업체의 흥망성쇠를 모두 지켜봤다. 공장 설립 초기에 설계부터 장비 구매, 인력 고용 등 공장을 가동하기까지 모든 일을 혼자 감당했다.

당시 귀가 시간은 평균 새벽 2시.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 5시면 다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곤 했다. 현지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주로 밀가루 빵과 물로 끼니를 때웠다.

공장이 본격 가동된 뒤 결국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해외 주재원들의 근무 형태는 현재도 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이 직종의 재미가 바로 그것이기도 합니다. 해외 영업인 한 사람이 모두 1인 기업 사장이나 다름없죠. 단조로울 틈이 없습니다. 지루할 만하면 해외로 나가고 항상 새로운 환경에서 새 비즈니스를 창출해야 하니까 삶이 늘 변화무쌍하고 도전적이죠.”

워낙 과정이 험난한 만큼 뭔가 성과가 나타날 때는 그 기쁨과 보람도 몇 배 더 크다. 특히 해외에서 외국 기업들과의 경쟁을 뚫고 마침내 계약에 성공할 때는 기업 차원을 떠나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뿌듯함도 함께 느낀다.

그의 일기에 남아있는 2000년 겨울의 살풍경은 이 부장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을 처절한 기억이다. 당시 중국 최대 자동차 회사의 철강재 입찰을 위해 출장을 떠났다. 입찰에 참여한 한국인은 혼자였다.

일본에서는 무려 8개 업체가 입찰에 뛰어든 상황. 1 대 8의 힘든 싸움이었다. 도착 후 현장에 들어서자마자 그에게 던져진 첫 일성은 일본 기업인의 모욕이었다.

환란 당시 한국 경제의 어려움과 취약함을 내세워 공개적으로 수치를 줌으로써 경쟁무대에서 내쫓으려는 수작이었다. 순간 중국의 고사를 인용하며 순발력있게 잘 대처하기는 했지만, 가슴속으로는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수치를 잘 참아내는 것이 진짜 남아대장부’라는 뜻의 고사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지요. 그런 상황은 해외 영업인들이 흔히 당할 수 있는 일 중 하나입니다.”

끝내 일본 기업 8개를 모두 물리치고 계약을 따낸 승자는 이 부장이었다. 이때 인연을 맺은 중국의 자동차 회사와는 오늘날까지도 장기 계약으로 꾸준히 거래하고 있다.

이 같은 ‘대반전의 신화’는 해외 영업의 세계에서 종종 전해오는 에피소드다. 무차별 공격과 쉼없는 반격, 백병전이 이 직종의 험난함이자 매력이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는 동료와 선후배들 간의 위계 질서와 끈끈한 인간관계가 큰 힘이다.

■ 연봉수준 높으면… 순발력·끈기 필요

거래는 대부분 단발성으로 체결된다. 월 단위 또는 분기별 계약만 따내도 부러움의 대상이다. 1년짜리 계약을 성사시키면 직원 조회 때 CEO가 직접 공개적으로 치하할 만큼 대단한 월척잡이로 대접받는다.

해외 영업인이 부딪히는 어려움은 또 있다. 풍토병이다. 아프리카 수단에 파견되었던 한 주재원은 말라리아에 걸려 여러 차례 고생하기도 했다. 바이어를 접대하면서 마시는 과다한 술자리의 후유증도 적지 않다. 잦은 폭음으로 병을 얻거나 과로사로 세상을 뜨는 이들도 있다.

종합상사 해외 영업인들의 연봉수준은 높은 편이다. 자세한 연봉 내역은 대외비란다. 주 5일제가 실시된 이후 여가도 확실하게 보장되고 있다. 업무상 술을 마시는 횟수나 강도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편이다.

종합상사는 전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활성화된 독특한 기업형태다. 20년을 뛰고도 여전히 신입사원처럼 도전하고 꿈을 안고 질주하는 이 부장은 ‘한국인의 정서나 기질적인 면에서 가장 적합한 직종’이라 강력히 추천한다.

순발력과 모험심, 목표점까지 끈덕지게 밀어붙일 수 있는 열정, 그리고 체력을 갖춘 이들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 < 해외 영업인이 되려면 >








각 상사마다 다르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은 1년에 약 두 차례 공채한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 외국어 능력은 기본 요구 사항. 해외 연수자나 해외 주재원 자녀 등 해외 생활 경험자들이 유리하다.

약 3개월 전에 있었던 공채 요강을 보면 영어 토익은 860점 이상, 중국어는 HSK 8급 이상, 스페인어는 중급 이상자로 경영학, 무역학, 중국어 전공자가 우대되었다. 1차 서류전형에 이어 총 두 차례 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면접은 즉석에서 주어진 주제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등 까다롭다. 지원 요강은 매번 공채 때마다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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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06/11 14:23




정영주 객원기자 pinplu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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