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주인공을 만들어주는 마술사가 돼야 해요"예식상당이서 인생삼담까지…한쌍의 부부 탄생의 순간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신랑·신부 그림자 같은 존재

결혼식 1시간쯤 전. 예식장 신부 대기실 한켠에서 남몰래 우는 사람이 있다. 신부의 가족도, 친척도 아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 본인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신부가 안 울면 저도 안 우는데, 이상하게도 신부가 울면 저도 따라서 눈물이 나요. 특히 (결혼 준비 과정에) 저를 힘들게 했던 신부일수록 외려 더 가슴이 뭉클할 때가 있어요.”

결혼상담 업체 ‘MS 웨딩클럽’의 민경화(40) 실장. 민 실장은 올해로 14년차 웨딩 플래너(Wedding Planner)다. 웨딩 플래너는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을 상담하고 진행해주는 컨설턴트 겸 매니저. 예비 부부의 가족 상견례에서부터 예복, 혼수, 야외 촬영, 메이크업, 예식장 이벤트까지 결혼 과정 전반의 일을 함께 해결하며 대행한다.

주어진 시간도, 요구도 천차만별이다. 이르면 결혼식 5, 6개월 전부터 의뢰가 들어오기도 하지만, 늦을 땐 결혼 몇 주 전에 부랴부랴 찾아오는 커플도 있다. 그럴 때면 웨딩 플래너의 동작도 그만큼 빨라져야 한다.

“그래도 예식장만 정해지면 사실 할 일의 절반은 끝난 거나 다름없죠. 보름 정도면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예비 부부들의 문의전화를 받는 것에서 첫 단추가 끼워진다. 커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결혼 날짜를 정한 후 준비를 의뢰한다. 결혼식까지의 기간을 역산해 꼼꼼히 스케줄을 짜서 야외 촬영과 결혼식 예복을 고르고 맞추는 일에서 메이크 업, 식장의 비누방울이나 드라이아이스 효과 등에 이르기까지 세부사항을 의논하고 약정한다.

‘웨딩 클래식’의 경우, 1인당 한 달에 평균 15건 정도를 진행한다.

고객들의 상당수는 입소문을 타고 알음알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대규모 웨딩 컨설팅사에 비하면 처리 건수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인원 대비, 창업 1년 남짓에 이 정도면 우수한 성적이다. 상담 건수를 무작정 더 늘릴래야 늘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다른 업체와 달리 예비 부부들의 혼수 투어(당사자들이 지정 업체나 매장들을 순회하며 원하는 물품을 고르는 것) 때 본인들만 현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웨딩 플래너가 동행해 문제들을 직접 조율하며 당사자들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또 틈틈이 안부전화를 걸어 고객과의 신뢰도 다진다. 필요할 땐 신부의 다이어트까지 관리해준다. 대개 토요일에 1건, 일요일에 2건 정도 예식을 치러낸다.

■ 결혼시즌엔 예식장 잡기 전쟁

무엇보다 어려운 건 예식장 잡기다. 결혼 시즌인 봄과 가을의 토, 일요일 오후 1, 2시대는 거의 모든 커플들이 원하는 황금시간이다. 당연히 이 시간대를 확보하기 위한 컨설팅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인기 예식장의 예약이 이미 찼을 경우, 새로 문을 연 예식장 등으로 재빨리 대체해야 한다. 예식장 한 군데를 잡는 데만 전화 수십 통을 걸기도 한다. 운이 좋을 땐 단 한 번에 성사되기도 한다.

맡은 결혼식은 많을 땐 하루에 5, 6개가 겹칠 때도 있다. 가장 피곤한 경우는 드레스 샵을 순회하거나 메이크 업을 받거나, 야외 촬영을 할 때다.

사진 민경화 제공

이런 날은 온종일 커플 곁을 지키며 돕느라 온몸이 파김치가 된다. 오전 9시에 나가면 오후 6시쯤 돼서야 겨우 일이 끝난다. 그래도 곁에서 하나하나 조언하다 보면 짧은 인연에도 신부와 정이 든다.

결혼식 당일은 신부만큼 바쁘다. 오후 1시에 예식이 있을 경우, 아침 일찍부터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예비 부부의 그림자 노릇을 한다. 신부 화장만 해도 아침 8시쯤 시작해 장장 3시간이 걸린다.

이따금 예식장이 지방에 있을 때는 새벽에 일어나 달려가야 한다. 대여섯 명의 스태프와 함께 예식 때 쓸 꽃장식이나 음향기기, 비누방울기 등 준비물까지 모두 챙겨간다.

종종 예기치 못한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주로 예식장 자체의 시설이나 관리상 실수로 말썽이 생길 때다. 결혼식 진행 중 갑자기 마이크가 고장난다든지, 비누방울이 제때 나오지 않는다든지 하는 일이다.

문제의 경중을 막론하고, 무조건 현장에서 수습해야 한다. 결혼식 사회자가 나타나지 않아 민 실장의 남편이 긴급 대타로 투입돼 사회를 맡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마침내 신랑 신부가 무사히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뒷모습을 볼 때쯤에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한 달 뒤 결혼식 앨범까지 건네고 나면 컨설팅 한 건이 완전히 마무리된다.

그간 민 실장의 손을 거쳐 결혼식을 치른 커플만 수백 쌍에 이른다. 젊은 커플들의 세태는 천태만상이다. 특히 야외 사진 촬영을 둘러싸고 티격태격 다투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어 안타깝다고 한다.

‘예전보다 남자들이 변한 것 같다’고 민 실장은 원인을 나름대로 분석한다. 가령 앨범에 실을 20컷의 사진을 위해 기본적으로 촬영하는 분량이 약 100컷인데 본인들에게 직접 앨범용 사진을 고르게 하면 신랑 사진 일색인 경우가 많다. 예전보다 신부에 대한 배려가 줄어든 요즘 예비 신랑들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 자기중심적 남자 많아져

“저희 세대나 과거에 비하면 자기중심적인 남자들이 많아졌다고나 할까요. 언젠가 신부 드레스를 고를 때인데 심지어 장모에다 처형까지 와 계신데 신부 드레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한쪽에 혼자 앉아서 오락만 하는 남자도 있었어요.

보다못해 장모분이 한마디 하시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아요. 그날 한밤중에 신부가 제게 전화를 걸어 ‘너무 속상해서 밤새도록 울었다’고 말해 한참을 달래줬죠.”

준비 과정의 마찰로 결혼식을 보류하거나, 파혼까지 하는 커플도 있었다고 한다. 30쌍 중 1,2쌍꼴이란다. 아주 드물게는 도중에 사기 결혼 행각이 드러나 파탄을 맞는 경우도 있다.

“신랑, 신부랑 상담이 끝나 수백만원의 견적에다 예약금까지 이미 60만원 받은 상태였는데, 갑자기 그 다음날 신부가 전화로 ‘우리 결혼 못하게 됐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그 뒤 신부 측 어머니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었는데, 남자가 결혼을 빙자해서 신부를 이용해 돈만 잔뜩 울궈먹고는 사라진 거였대요.”

예비 부부 10쌍 중 약 3쌍은 ‘속도 위반’ 커플이다. 드레스 모양 등에 신경을 써 하객들에게 어떻게든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웨딩 플래너의 몫이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황당한 일도 경험하게 된다. 약속 시간 30분전에 돌연 이를 취소하는 손님도 있다. 한번은 성격상 신경불안증이 워낙 심해 시시콜콜 트집을 잡거나 우왕좌왕하는 등 주윗사람을 힘들게 하던 신부도 만났다. 결국 스트레스로 분장사도, 민 실장도 두 손을 들었다. “차라리 다른 컨설팅사에 가시는게 좋겠다”며 민 실장이 정중히 더 이상의 진행을 거절했다.

“제가 경험한 가장 엽기적인 신부였어요. 알고보니 이미 다른 컨설팅사에 갔었다가 그쪽에서도 거부당해서 저희한테 왔어요. 주변에서 하도 설득을 해서 어쩔 수 없이 제가 다시 맡았는데, 막상 결혼식 날이 되자 신부가 우는 걸 보면서 저도 그렇게 눈물이 날 수가 없었어요. 그토록 저를 힘들게 했던 일들도 모두 용서가 되고, 신혼여행 떠나기 직전에 신부를 안아주었는데 그때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예식 문제로 시작된 상담이 인생 상담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준비 과정에서 커플끼리 다툴 때면 자신도 모르게 중간에서 중재하고 화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민 실장은 1994년 웨딩토털이벤트 업체에 입사하면서 웨딩 플래너로서의 첫발을 떼었다. 결혼 후 첫아이를 낳고 한동안 전업주부로 있었다. 2005년에 독립해 현재의 회사를 창업, 최근에는 동종 업계에서 일해온 남편까지 합류해 함께 회사를 이끌고 있다.

일이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결혼 후 행복하게 살아가는 커플들을 만날 때다. 얼마 전 주말에는 예식을 진행하러 갔다가 우연히 하객들이 모인 자리에서 예전에 자신이 결혼식을 맡았던 부부 다섯 쌍을 동시에 만난 일도 있었다.

■ 인간적 기쁨과 보람 많은 직업

“언젠가는 결혼식 앨범을 갖다주려고 신혼집에 잠깐 들렀는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진수성찬으로 차린 밥상이 앞에 있더라구요. 놀란 저에게 ‘전부터 꼭 한번 대접하고 싶었다’고 신부가 말하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웨딩 플래너의 수입은 철저히 본인의 능력에 달려있다. 현재 국내 웨딩컨설팅사 급여체계는 대부분 기본급 50만~70만원에 개인별 실적 수당을 더하는 식이다. 본인의 선택에 따라 기본급을 낮추는 대신 실적 수당의 비율을 올리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다. 능력을 자신하면 후자가 유리하다.

웨딩업계의 성수기는 5~8월과 9~12월. 결혼식이 가장 많이 몰리는 5월엔 한 달 1,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웨딩 플래너도 있다.

“능력만 있으면 시작 후 단 6개월 만에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어요. 대신, 그만큼 힘이 듭니다. 뭣보다 인내가 필요해요. 특히 초창기에는 일은 힘든 데 버는 돈이 적어 도중에 그만두는 이들도 많아요.”

주말이나 공휴일은 따로 없다. 대개 1주일 중 월요일 하루쯤 쉬는 게 고작이다. 성수기 때는 스케줄이 빽빽하다.

대인관계가 중요한 직업이기는 하지만,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도 공연히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민 실장 역시 ‘원래 낯가림도 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이 일을 하면서 이젠 푼수가 다 되었다’며 웃는다. 정보와 설득력, 체력이 모두 필요한 웨딩 플래너는 특히 기혼·미혼자를 불문하고 여성들이 도전 할 만한 유망 직종이다. 경륜이 쌓일수록 업무 진행이나 수입에 더 유리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 웨딩 플래너가 되려면

대부분 컨설팅사에서 수시로 채용한다. 업체에 취직해 근무하며 기초를 익히고 경력을 쌓은 뒤, 원하면 프리랜서로 독립하거나 창업할 수도 있다. 출신 전공이나 학력, 나이와 관계없으며 기혼자라도 지원이 가능하다. 성격이 원만하고 외향적이며 설득력, 인내력이 강한 여성들에게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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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