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리스트 김민경 "컬러 테라피는 감각이 중요… 고정관념 깨는 용기 필요"외모·상품개발·인테리어·심리 치료 등 색의 신비 컨설팅

아주 간단한 심리테스트. 당신이 좋아하는 색깔 하나만 대어보라. 만약 빨간색이 떠오른다면 당신은 자신감에 넘치고 활동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반대로 현실이 나른해서 한창 강렬한 무언가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란색? 당신은 이지적이고 침착한 성격이거나 냉정하고 합리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는 그렇게 되기를 지금 열망하는 중일 수도 있다. 나머지 색 이야기는 생략한다.

궁금하다면 이 사람에게 물어보라. 노련한 컬러리스트가 있다.

“그 사람이 입은 옷 색상이나 화장만 봐도 그 사람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어요. 색채 심리는 통계학과도 같거든요. ”

한국케엠케색채연구소 김민경 소장. 국내 대표급 컬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다. 최근에는 색채 심리 치료요법인 컬러 테라피로도 꾸준히 언론에 등장하는 주인공이기도 하다. 색에 관한 한, 그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 나이와 마음 상태에 따라 좋아하는 색도 달라져요. 가령 똑같은 분홍색이라도 10대가 좋아하는 건 자연스러운 감수성 때문일 수 있지만, 20대때 갑자기 분홍색이 좋아진다면 뭔가 애정이 필요해서, 사랑 받고 싶은 심리 때문일 수 있어요.

30대, 40대에 그렇다면 이때는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구요.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 연분홍 등 나이가 들면서 자꾸 고운 색 옷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예요. ”

컬러 테라피가 주목 받기 시작한 것도 ‘웰빙’ 붐이 불면서부터다. 재미있는 현상이 한가지 더 있다.

세계 최고의 ‘섹시 언더웨어’로 장수를 누리던 검은 색 속옷의 판매고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도 ‘웰빙’ 바람이 일면서부터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치솟고 우울증 환자들이 늘면서 검은 색의 주가가 추락하고 있다.

검은 색은 색채 속성상 ‘에너지 흡수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갖고 있다. 반면에 분홍 색 속옷 판매고는 상승중이다. 색상 하나로도 사람의 마음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색의 신비’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색채 전문가, 컬러리스트들의 덕이다. 컬러리스트는 각 색상이 지닌 속성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이 자료를 응용해 개인의 외모에서부터 심리 치료, 기업들의 상품개발, 인테리어, 공공 사업의 디자인 자문에까지 다양한 역할을 펼치고 있다.

■ 2,520가지 화장품 컬러 파레트 출시

김 소장은 오랜 기간에 걸쳐 색채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국내에 소개해왔다. 특히 화장품과 색채 연구작업을 접목해 내놓은 결과물들이 많다.

최근 몇 년 전의 연구만 해도 일반인들의 얼굴 유형을 192가지로 세분, 여기에 각 피부 톤과 성격, 계절, 나이별로 다시 나누어 표준화하며 각각 이에 맞는 파운데이션과 색조 화장품 등을 코드화하는 섬세한 작업을 선보였다. 이 결과 2006년 약 2,520가지에 이르는 컬러 파레트를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결론을 정리하기도 만만치 않지만, 과정은 더욱더 복잡하고 고단했다. 이 연구조사에 착수한 것이 1998년부터다. 이후 약 7년에 걸쳐 조사작업을 진행한 뒤, 이를 각각 코드화한 다음 해마다 또다시 같은 일을 반복하며 철저히 점검을 거듭한 뒤 얻은 결과다.

이를 얻기 위해 전국에 걸쳐 대상자를 정한 뒤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가장 간단한 자료만 해도 1인당 조사 문항수가 100여개짜리였다. 조사원들이 조를 이뤄 한 쪽에서는 설문대상자와 1대1로 마주앉아 일일이 항목별로 훑어가며 진단을 하고, 바로 옆에서는 그 진단 내용을 받아 적어 자료화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더 자세한 연구 관련 내용은 대외비. 이는 연구소의 노하우이자 기밀이다. 김 소장의 연구소는 자체적으로 R&D 센터를 갖추고 있다. 이들 컬러리스트의 연구는 현재도 계속 진행중이다. 해마다 연구주제와 강도가 더 치밀하고 정교해지고 있다.

컬러리스트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점차 기업들의 러브콜도 함께 늘고 있다.

와중에 씁쓸한 해프닝도 종종 터진다. 최근 한 가죽제품 기업으로부터 자문 요청이 들어왔다.

일을 의뢰 받자마자 김 소장은 발 빠르게 브리핑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현지의 업체들과 다급히 접촉해가며 가죽이란 가죽 소재는 거의 빠짐없이 모두 모았다. 최대한 각 소재별로 원단을 구해 입수한 뒤 일일이 일정 크기로 잘라내어 샘플 자료집을 만들었다.

이것을 다시 하나하나 살피고 분석해가며 각 가죽 소재에 따라 염료가 어떻게 먹혀서 어떤 색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조사했다. 그렇게 준비한 가죽 샘플집이 두툼하고 묵직한 자료집이 여러 권이었다. 이윽고 프리젠테이션이 벌어지던 날, 철저히 준비한 자료를 들고 의뢰 기업을 찾아간 김 소장은 입이 벌어졌다.

“ 정작 그 회사에서 내놓은 샘플이란 게 손톱만한 크기의 가죽 샘플 달랑 두개뿐이었어요.

게다가 뒤늦게서야 말하기를 자기 회사에서는 가죽 원단이 아니라 PVC로 만든 제품만 취급한다는 거예요. 너무나 황당했어요. 컬러 컨설팅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저희더러 자료를 준비해달라고 한 거죠.

진작 PVC제품만 만든다고 말했으면 저희가 그 고생까지 안 했을텐데... 그러면서도 저희가 준비한 자료를 보더니 놀라며 좀 보여줄 수 있냐길래 거절했어요. 사실 그 자료는 다른 가죽제품 회사에서라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정보들이기 때문에 허사만은 아니죠. ”

반대의 경우도 있다. 언젠가 한 CEO의 요청을 받아 사무실 인테리어를 컨설팅해 준 적이 있다. 처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짐작대로 가구며 벽지, 분위기가 무겁고 칙칙하기 그지 없었다.

CEO 대부분이 흔히 갖고 있는 고정관념의 인테리어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CEO 스스로가 답답해 했다.

이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식상한 고전풍의 가구들을 현대식의 깔끔한 디자인으로 교체하고, 특히 CEO 본인이 좋아하는 색상을 물어본 뒤 적절히 주변 환경에 반영하여 산뜻한 색상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리모델링이 끝난 뒤 사무실을 들어선 CEO는 너무나 흡족해 했다. 이러한 일들이 알음알음으로 소문이 나면서 다른 일까지 밀려들곤 했다. 또다른 CEO의 경우엔 가구나 조명은 물론, 메모지와 브로슈어, 심지어 명함의 디자인과 색상까지 맞춰주고 감사의 인사를 받은 때도 있다.

“ 꼭 돈을 많이 들여야만 환경을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예요. 궁극적으로 컬러 테라피는 돈이 아니라 감각의 문제예요. 무엇보다 고정관념을 깨는 용기가 필요하지요. ”

한번은 모 대기업 직원이 양 손에 청소기를 들고 그를 찾아온 적도 있다. 김 소장이 기억하는 1999년의 인상적인 경험 중 하나다. 당시는 아직 컬러리스트에 대한 인식이 국내에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화장품 회사도 아닌 엉뚱한 가전제품 기업의 상무가 우연히 어느 매체에서 김 소장의 이야기를 접한 뒤 곧바로 과장에게 직접 지시해 그를 찾도록 만든 것이었다. 자사에서 생산중인 청소기의 색상에 대해 자문을 얻어오라는 임무였다.

“ 저도 깜짝 놀랐어요. 컬러 컨설팅이 뭔지도 다들 잘 모를 때였는데 어떻게 가전제품에다 색채 개념을 도입할 생각을 앞질러 하실 수 있었는지, 더구나 대기업 상무님이 직접 지시를 내려 바로 직원을 보낸 것을 보고 ‘아, 이 회사는 참 발전 가능성이 높겠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어요. 실제로도 결과가 좋았구요. ”

그는 원래 미국 켄신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경영학도 출신이다. 그러다 전공을 급선회하면서 프랑스 파리 예술학교 ‘장 떼스데’ 뷰티아트 디자인 졸업 등 독일과 유럽 등지에서 색채전문가로서의 다양하고도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갑자기 컬러리스트로 변심한 계기는, 그러나 알고 보면 싱겁도록 단순하다.

“ 프랑스에 갔다가 우연히 한 섬유 공장에 들렀는데 색상이 너무나 예쁜 거예요. 각 색상별로 코드화 돼 있어서 아주 섬세하고 정확한 색상을 뽑아내는 걸 보고 감탄했어요.

1970년대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화장품 색상도 몇 가지 안 되던 시절이었죠. 아, 이런 직업도 있구나, 나도 이런 일을 하면 좋겠다 하고는 정말 단순한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가 처음엔 고생 많이 했어요. 초창기에는 정말 암담했지요. ”

유난히 검은 색을 싫어했던 해가 있다. 2004년, 자신이 쓴 책 내용을 표절 당해 악몽 같은 소송을 치렀던 때다. 1차 소송에서 패소한 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직접 사실을 입증하겠다며 1년4개월간 법원을 드나들며 샅샅이 증빙 자료를 찾고 모았다.

심신 모두 초인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싸움이었다. 2005년 마침내 서울 고등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고서야 전쟁이 끝났다.

“그 한 해 동안 검은 색 옷이라곤 단 한번도 입은 적이 없어요.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검은 색이 싫더라구요. 요즘도 그때 얘기를 하다 보면 ‘당시엔 몰랐는데, 1년 동안이나 검은 옷을 단 한 벌도 사지 않았다는 게 나도 신기하게 느껴진다’고 말할 때가 있어요. ”

김 소장은 현재 사단법인 한국색채디자인학회 이사로도 활동중이다. 숙명여대 대학원 초빙 교수로도 10년 넘게 출강, 국내뿐 아니라 미주, 유럽, 홍콩 등지에서도 맹활약중이다. 세계의 컬러 트렌드를 추적하기 위해 수시로 출장도 떠난다. 외국에서 보내는 시간만 해도 1년의 약 3분의 1에 이른다.

최근 서울시의 지하철 9호선과 3호선의 정거장 디자인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어떨 때는 단 15일만에 책 한 권을 뚝딱 써 낼 만큼 집중력과 추진력이 남다른 그는 2005년에 발표한 ‘퍼스널 컬러(Personal Color) 진단 천 개발을 위한 한국 실용섬유 표준색의 활용분석에 관한 연구’를 비롯해 그간 세간의 반향을 끌어낸 많은 연구논문과 저서들로도 주목을 받아왔다. 천직은 천직.

전화번호라곤 불과 몇 개도 제대로 외기가 힘들지만, 컬러 코드만큼은 스스로도 신기하다 싶을 만큼 기가 막히게 뽑아낸다.

■ 대단위 국가사업에서도 활약

컬러리스트에 대한 국내의 인식도 눈에 띄게 변했다. 기업은 물론 대단위 국가사업에도 갈수록 컬러리스트들의 활약이 늘고 있다. 화장품 회사를 위시해 기업마다 자체 상품개발을 위해 직접 컬러리스트들을 채용하는 곳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기업이든 민간 연구소든 전반적인 대우도 좋은 편이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신입 컬러리스트의 연봉이 평균 2,700만원에서 3,000만원선이다.

끝으로 한번 더 던져보는 딜레마형 퀴즈 하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과 어울리는 색이 서로 다르다면, 당신은 둘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지레 한 쪽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김 소장의 조언대로라면, ‘병살타’가 가능한 해답이 있다.

옷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으로 입되,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은 주변의 가구나 소품의 색으로 맞추면 된다. 어쩌다 당신이 원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섣불리 단념하거나 예단하지 말기를. 색깔의 세계 하나만으로도 당신이 원하는 것들을 얼마든지 나란히 안고 갈 방법이 있으니.

■ 컬러리스트가 되려면

일반적으로 미술이나 디자인 계열 출신자들이 유리하지만, 전연 다른 전공 출신자로도 컬러리스트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원칙적으로 전공 제한이 없으며, 공채를 통해 기업이나 민영 연구소 등에 취업할 수 있다.

관련 자격시험이 있지만, 자격증에만 의지하기보다는 색채관련 전문기관에서 교육을 거친 뒤 취업하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케엠케연구소의 경우, 자체 전문가 과정을 통해 인재를 발굴, 채용하고 있다.

사진 한국케엠케색채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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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영주 객원기자 `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