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을 잇는 사람들' 주제로 사진전 열어

흑백의 사진이 있다. 갓 쓰고 흰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와 낡은 병풍을 뒤로 한 채 단정히 두 손을 모으고 앉아있는 백발 할머니의 사진 등…. 조선시대 촬영된 오래된 사진처럼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득하다.

8월 15일부터 21일까지 서울 관훈동 토포하우스에서‘맥을 잇는 사람들’이란 주제로 ‘종손과 종부’의 전시회를 여는 작가 김분호(53)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느낌이 기묘하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해체되고 사라지고 있는 종가 문화에 대한 작가의 아쉬움과 사랑을 매우 진지한 교감으로 형상화한 사진들이다.

안동지방의 유교 가정에서 자란 영향으로“종가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란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는 작가는“초점을 인물의 눈에 맞춰 그들의 눈을 통해 정신을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전통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는 심정이었다”고도 고백한다.

하지만 촬영의 과정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서애 유성룡 종가, 농암 이현보 종가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100여 곳의 종가를 쉰이 넘은 주부의 몸으로 일일이 찾아 다니는 과정도 고생스러웠지만, 종가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한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일도 만만찮았다.

대개 너 댓 차례의 거듭된 방문은 기본.“장관이 찾아와도 사당 문을 열지 않는데 하물며 이름 모를 아낙에게 촬영을 허하겠느냐”는 꾸지람도 달게 받았다.

이렇게 삼고초려 끝에 어렵게 카메라에 담은 수백 장의 사진 중 26점을 그는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인물 사진이지만, 그 속에는 역동적인 힘이 있다. 개인화로 인해 잊고 살았던 동류의식을 일깨우는 ‘고향’어르신들의 기품과 전통이 오롯이 배어 나온다.

전통 문화의 기록으로서도 뜻이 깊다. 종손에게 평상복이 아닌 사당 참배 등 고유한 임무를 수행할 때 입는 의상을 갖추도록 해 고유성을 강조했다.

이재길 계명대학교 사진디자인학과 교수는“조선시대에 걸맞은 옷차림을 한 인물을 촬영한 사진은 그 자체로 한국 고유의 패션 사진으로 기능하게 된다”고 평했다. 사당의 감실 등을 통해선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저마다 독특한 종가의 문화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국가나 사회가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종가가 겪었던 어려움과 희생이 더 이상 헛되지 않게 종택의 복원과 함께 종가의 옛 명성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전통 문화에 매료돼 4년 전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입문한 ‘늦깎이’ 사진 작가의 소박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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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