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대회 첫 출전서 준우승… 11월 월드 파이널 대회 출전 목표

입상작 ‘블러쉬드 카페 (Blushed Cafe)’와 함께 한 바텐더 김현진씨.
47개국 대표들이 쟁쟁한 실력을 겨룬 세계 3대 바텐더 대회에서 처녀 출전한 한국인이 당당히 바텐더 세계 2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주인공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모던 바 ‘블러쉬’의 대표 바텐더인 김현진씨(33).

김씨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 퍼시픽 바텐더 대회(Asia Pacific Bartender of the year)’에 나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동, 오세아니아 등의 이름난 해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위를 수상했다.

이 대회는 팬 아메리카 바텐더 대회(Pan America Bartender of the year), 그리고 세계 파이널 바텐더 대회(World Final Bartender of the year)와 더불어 세계 3대 바텐더 대회로 꼽히는 바텐더들에겐 경합이자 또한 축제의 장.

더욱 놀라운 것은 세계 바텐더 협회 소속 국가들이 출전할 수 있는 세계 3대 대회에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비회원국이란 이유로 참가 자격조차 없었다. 이제껏 국내에서는 감히 그 누구도 나서지 못한 것인데 김씨가 첫 스타트를 끊으면서 화려하게 입상 데뷔까지 한 것.

김씨가 입상한 부문은 ‘클래식 칵테일’ 분야.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병을 공중으로 돌린다든가 하면서 쇼를 펼치는 것은 ‘플레어 칵테일’ 부문이며, ‘클래식’은 창작 칵테일을 만들어 선보이는 분야다.

5분 내에 2잔의 창작 칵테일을 만들어 보여야 하는데 최대 5가지 이하의 재료로 알코올은 75ml 이하로만 이용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붙어 있다.

김현진씨가 이번에 내놓은 출전작은 일명 ‘블러쉬드 카페 (Blushed Cafe)’. 커피와 팔각, 카다몬을 이용한 칵테일이다. 약재 중 하나인 팔각을 드물게, 또 인도식 향신료인 카다몬을 칵테일 재료로 사용했다는 것 자체도 기존 개념으로는 무척 이례적이다.

국내에서는 기존의 술을 이용해서 주로 칵테일을 만들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천연 향신료를 직접 갈아 이용하거나 과일을 불에 구워 만드는 등 마치 요리를 하듯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칵테일을 주조하는 것이 이미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그의 칵테일이 이런 창의성에서만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클래식 칵테일 분야 역시 술을 주조하는 동안 심사위원들을 향해 마치 마술사들이 대중들에게 마술쇼를 하듯 능숙하고 프로다운 프리젠테이션 동작이 필수이다.

대회의 심사 기준도 만드는 동안의 이러한 기술적인 면이 50%, 눈을 가리고 맛을 보는 블라인드 테스팅이 마지막 50%에 해당한다.

“완성된 칵테일 잔을 기울이고 술을 따르고 그리고 수저나 냅킨을 테이블에 놓는 동작 등 모든 행위들이 바텐더에게는 하나의 예술입니다.” 그는 “일하면서 나타나고 보여지는 모든 동작들이 바로 워킹 퍼포먼스”라며 “동작 하나하나의 실현과 구성에도 세심하게 신경썼다”고 입상 비결을 털어 놓았다.

또 이번 대회에 출전할 때 위생 장갑을 끼고 심사위원들 앞에서 칵테일 만들었는데 이 점 또한 플러스로 작용했다. “칵테일 한잔을 만들어도 좀더 위생적인 면까지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요.”

김현진씨는 한국인으로서 세계 3대 바텐더대회 입상도 처음이지만 출전도 처음이다. “국제 대회에 대한 자료가 없어 87개국가의 바텐더 협회장에게 일일이 도움을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대부분 거절했지요.” 그런데 10개국 대표들은 친절하게도 그의 대회 참가에 협력해주겠다고 답신을 보내왔다. 세계 바텐더협회장 또한 그의 대회 참가를 수락하는 답장을 손수 보내기도 했다.

대회에 나가 무엇을 만들어 보여줘야 할지도 막막했다. 국내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기술적인 프리젠테이션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없었던 것.

김씨는 여기저기 해외의 전문가들을 수소문, 관련 자료를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해외에서 그들이 보내준 답장과 CD 동영상 자료가 유일한 스승이었습니다. 가끔씩 해외 유명 바텐더가 한국의 유명 클럽에 오면 꼭 현장에 가서 눈으로 보고 어깨너머로 배웠죠.”

유명 바텐더들은 본인만의 기술은 가르쳐 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에 김씨는 때로는 몰래 핸드폰으로 칵테일 주조 모습을 촬영까지 했다. 국내에서는 딱히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본인이 매일 셀프 동영상을 찍어가며 스스로를 감독하고 연습도 했다.

“한국이 술 시장은 크지만 칵테일 시장은 후진국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외국인들이 호텔에서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난 칵테일을 찾을 때 국내 바텐더들이 재료는 이미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깐요.” 김씨는 “세계 칵테일 시장은 벌써 음식, 푸드와 접목되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고 최신 트렌드를 소개한다.

“당장은 11월 대만에서 열리는 세계 월드 파이널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 김씨 개인의 노력으로 한국 바텐더 협회의 세계협회 가입도 곧 성사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한국 바텐더들의 세계무대 진출도 활발해질 수 있게 된다. “바텐더요? 많이 알고 보고 손님들을 기쁘게 해주고 즐거움을 주는 것이 본연의 업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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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박원식차장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