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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프로듀서 이두헌 "음반 하나 끝내면 영화 한편 찍은 기분"
선곡·편곡·믹싱·마스터링 작업 등 CD제작 총괄하는 대중음악 멀티플레이어
기획에서 출시까지 3개월 동안 속전속결… 한 가지 악기에선 전문가 수준 연주자 돼야

이두헌(43)은 젊어졌다. 7년전 유학 직후 보았을 때보다, ‘이젠 나도 아이를 둔 아버지’라며 행복한 가장 티를 풍기던 때보다 오히려 ‘파릇’해졌다. 음악의 힘일까, 스타일의 효과일까?

“그런가요?(웃음) 음악을 시작한 지 올해로 24년이네요, 벌써. ”

그는 가수이자, 작사, 작곡자, 기타리스트, 음반 프로듀서다. 대중음악계의 전방위를 마크하고 있다. 최근엔 창작 뮤지컬 음악에까지 빠져 걸음폭이 더 넓어졌다. 이날도 대구 공연을 몇 시간 앞둔 그를 위해 잠깐의 추억담만 교환한 채 거두절미,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반 프로듀서는 영화감독과 비슷해요. 높은 산에서 아래 위를 바라보듯 전체를 조망하고 조율하며 직접 음반을 만들어내는 보람과 희열이 있어요. 음반이 완성됐을 때의 느낌이란 자기 이름의 영화가 나왔을 때 영화감독이 느끼는 기분과 비슷할 거예요. ”

음반 프로듀서는 뮤지션으로서의 실력이 종합적으로 완결되는 자리다. 아쉽게도, 직통으로 통하는 논스톱 버스는 없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접근할 수 있다.

“가곡 ‘가고파’의 작곡가 김동진 선생님께 누군가가 물었대요. 어떻게 해야 작곡을 잘 할 수 있냐고요. 선생님의 대답은 ‘한가지 악기의 최고가 되라’였다지요. 악기를 모르면 작곡을 할 수 없고, 작곡을 모르면 음반 프로듀싱은 더욱 불가능해요. ”





하나의 음반이 탄생하는 과정은 숨가쁘다. 요즘의 경우, 맨 먼저 기획사에서 가수를 정한다. 곧이어 그 가수에 맞는 프로듀서도 선정한다. 이후의 작업 전반을 총감독할 역할자다.

대부분 직접 작ㆍ편곡 능력을 갖춘 전문가들이다. 기획사와 가수, 프로듀서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 만들어낼 음반과 가수의 컨셉을 정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작품자, 즉 작사, 작곡, 편곡 작업이 시작된다. 프로듀서가 직접 곡을 쓰기도 하고, 외부 작곡가들에게 의뢰해 데모 CD 형태로 미리 2,3배수 이상의 후보곡을 받아 모은다.

음반에 총 12곡을 싣기로 했다면 1차로 받는 곡만 30곡 안팎이라는 얘기다. ‘주문’한 곡들을 추리고 추려 최종 수록곡을 정한다. 1차 후보곡 가운데 함량미달작이 많으면 일이 다시 늘어난다. 가령 30곡을 받았는데 6곡밖에 건질 것이 없으면 다시 작사,작곡자들에게 부탁해 새 곡들을 더 받아야 한다. 최종 선곡이 이뤄지면 가수는 이때부터 노래 연습에 들어간다.

작곡가로부터 받은 곡들은 편곡 작업을 거친다. 노래의 원곡은 보석의 원석과도 비슷하다. 정교한 세공이 필요하다. 원래 곡에 없던 전주와 간주를 새로 만들어 붙이고, 기타 멜로디로 할 것인지 피아노 멜로디로 할 것인지, 외국 연주팀에게 맡길건지 국내 연주팀에 맡길건지 세세한 모든 일들이 편곡 과정에서 이뤄진다. 노래 구석구석을 손질한다.



편곡이 끝나면 연주 단계로 넘어간다. 같은 연주자라도 녹음 전문가와 라이브 전문 연주자가 따로 있다. 적절한 녹음 전문 연주자를 물색하고 섭외해 연주를 맡긴다.

바통은 이어서 엔지니어에게 넘겨진다. 엔지니어도 비트 전문, 발라드 전문 등 각자의 특기가 따로 있다. 지망생들까지 합치면 수백명의 엔지니어들 중 유명 음반회사에서 기용하는 A급 음반 엔지니어는 몇십명선이다.

연주자와 엔지니어의 호흡 아래 마침내 연주 녹음이 완성된다. 이제 가수의 노래만 입히면 된다. 백그라운드 코러스가 필요할 경우 그 작업도 이때에 해결한다.

가수의 노래 녹음까지 모두 끝나면 믹싱 작업이 진행된다. 악기 반주와 가수의 노래가 함께 들어있는 1차 완성곡 통째를 다시 세부 손질 하는 것이다.

“김치로 치면 배추에다 무, 양념 등이 모두 들어간 것을 가지고 다시 소금 간을 더 해야 할지 어떨지 가장 먹기 좋게 맛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기타를 더 키워야 할지, 드럼을 전면으로 세워야 할지 뒤로 빼야 할지 등등 미세 조정을 하는 거죠. ” 이 무렵이면 앨범 재킷 디자인 작업도 동시에 테이프를 끊는다. 음반 표지며 속지에 필요한 디자인, 사진촬영 작업 등이 함께 진행된다.

이를테면 믹싱은 개인전, 다음 단계인 마스터링은 단체전이다. 마스터링 작업은 각 곡이 아닌 전체 수록곡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첫 곡과 다음 곡, 그 다음 곡 등 연속되는 각 곡들간의 간격, 연결처리, 볼륨 밸런스, 시작과 마무리 기법 등 전체의 높낮이를 매끄럽게 다듬는다. 녹음 중의 잡음 등이 발견될 경우에도 이때 말끔히 걷어낸다.

끝나면 마스터 공장이 대기 중이다. 최종 완료된 내용을 담아 CD로 찍어낸다. CD에 재킷까지 입혀 포장하면 음반 완제품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음반 유통회사로 건너가, 도매상 소매상 순서로 시장에 깔리며 판매된다.

1차로 내보내는 음반 출시량은 대개 기획사측 판매예상치의 약 10%선이다. 재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시험삼아 미리 풀어보고 향후 제작수량을 조절하려는 의도다.

와중에 예외가 있다. 이수영, 조용필 등 기본적으로 검증된 기대치가 있는 가수들의 경우, 이미 앨범 홍보단계에서 선주문이 밀려든다. 대형가수는 미리 도매상을 통해 들어오는 선주문 수량만 봐도 대략 전체 판매고 윤곽이 튀어나온다. 밑질 것이 없다.

기획부터 출시까지, 이 모든 과정이 통틀어 3개월 안팎 걸린다. 대단한 속전속결이다. 정상적으로는 1년 이상 걸릴 작업들이다. 가수의 수명에도 한계가 있고, 트렌드와 판매시기의 타이밍이 결정적이기 때문에 요즘 추세로는 어쩔 수 없다.

만약 출시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경우, 아예 다음 해로 미루는 등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 과정의 전문적이고도 신속한 진행, 반 발짝 앞서며 트렌드를 주도하는 안목과 예측, 판단과 지휘력이 음반 프로듀서의 생명이다.



한번 작업이 시작되면 가수든 연주자든 다들 정신이 없다. 한 프로듀서당 1건만 아니라 2,3건씩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여러 개의 다른 음반 프로그램이 머릿속에 동시에 돌아간다.

“그중 제일 어려운 것은 역시 곡 선정 부분이예요. 편곡은 오히려 일사천리로 가는데 어떤 곡으로 갈건가, 어떤 곡이 히트할만한가, 곡을 정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지요. 어떤 면에선 운도 많이 작용해요. 윤도현의 ‘사랑했나봐’의 경우만 해도 원래 거의 무명이던 작가의 곡을 별 기대없이 썼다가 의외의 히트를 친 경우예요. ”

이두헌은 어린 시절 특히 명절이면 단골로 재탕, 삼탕되던 TV 외화 뮤지컬을 보며 자란 세대다. 뮤지션의 길로 직진한 데는 타고난 유전인자의 영향도 적지 않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등을 공부하던 사촌형들. 사업가이면서도 하모니카를 멋지게 연주하던 부친은 평생 음악과 영화를 사랑했다. 클래식에서부터 국악에 이르기까지 집 안에서 한번도 음악 소리가 끊인 적이 없었다.

83년, 그는 데뷔했다. 그룹 ‘다섯손가락’의 리더이자 가수, 기타리스트, 작사, 작곡, 편곡,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모두 4개의 앨범을 발표했다. 유학후인 2000년 자신의 솔로음반도 발표한 바 있다. 80년대 초반, 실제로 ‘다섯손가락’은 당시 국내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인기그룹이었다.

그 가장 중심부에 이두헌이 서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릴레이로 리메이크되고 있는 장수 인기곡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은 특히 그가 탄생시킨 ‘연가(戀歌)’의 전형이다.

‘풍선’ 또한 최근 리메이크를 통해 동방신기의 인기를 증폭시키며 가요대상을 안겨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역작이다.

그는 국내 1세대 음반 프로듀서다. 브라운관이나 무대에 직접 보이든 보이지 않든 줄곧 음악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을 전천후로 이어왔다.

김건모 1집, 조규찬, 변진섭, 최성수, 김종찬, 유익종, 이재영 등의 음반 프로듀서를 맡았다. 전체 또는 편곡 등 일부 참여한 것을 모두 합쳐 지금껏 만들어 낸 음반이 수십장이다. 기뻤던 순간이 일일이 다 기억나지도 않는다.

“한창 일하던 중 ‘정말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1993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초 2년 예정의 계획과는 달리 도중에 중대한 변심을 맞았다. 한동안 놓고 있던 기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기타 연주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열병이 다시 도졌다.

93년부터 97년까지 미국 보스턴 버클리음대 퍼포먼스과에서 연주를 전공한 데 이어 LA에 소재한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스튜디오 재즈 기타를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에 그는 귀국했다. 약 8년만에 돌아온 그는 귀국길에서 이미 자신이 많이 변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2002년 한 뮤지컬 제작자의 의뢰를 받게 되면서 뮤지컬 음악과의 인연까지 새롭게 추가됐다. 2003년 관객과 공연계의 대 반향을 불러냈던 창작 뮤지컬 ‘페퍼민트’는 순수 국산 창작 음악이라는 점에서도 남다른 주목을 받았던 이두헌의 작품이다.

“그 뮤지컬 음악을 올렸을 때가 지금도 마음에 남아있어요. 배우들의 연기, 동작과 제가 만든 음악이 서로 호흡이 딱딱 맞아 떨어질 때 느낀 쾌감과 희열, 공연후 관객들이 기립박수 칠 때는 정말 가슴이 찌릿했어요. ”

모 유명 기획사의 음반 프로듀싱 총괄을 맡아 약 1년간 ‘직장 생활’을 한 것을 비롯, 한 때 또다른 모 대형 연예기획사의 대표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2005년에 발표된 발라드의 황제 가수 신승훈의 일본 진출음반 ‘I Believe’도 이두헌의 작품이다.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7년간 그는 경희대 ’포스트모던음악학과‘의 겸임교수로도 강단에 섰다. 학계와 연주현장, 제작자로서의 세가지 영역을 모두 거쳐 본, 행복한 실력파 뮤지션이다. 사실상 뮤지션들의 연주 기회를 터주기 위해 꾸민 와인 & 뮤직 복합문화공간 ‘피노(pinot)’의 주인이기도 하다.

“맨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지막 한 곳이요? 제게는 역시 연주 현장이예요. 결국에는 제 음악, 제 것을 만들게 될 것 같아요. ”

음반프로듀서는 연주자 또는 작곡가의 결승점 선상에 있다. 작곡가든, 음반 프로듀서든 생업적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전체 활동인력 중 상위 5~10%만이 살아남는다.

자, 어린 후배들이여 용감히 뛰어들어 보라. 대신, 1세대 대선배 음반프로듀서 이두헌의 충고를 듣고 난 뒤에 결정할 일이다. 조건은 딱 세가지다.

“음악을 정말 많이 들어야 합니다. 편견없이, 장르 없이. 그리고 한가지 악기에서는 거의 정통 전문가 수준의 연주자가 돼야 합니다. 또, 독서로든 영화, 여행으로든 세상을 만나며 감성을 풍부히 키워가야 합니다. 이 세가지가 제일 중요합니다. ”

얼마 뒤 그는 차표를 끊으러 서울역 매표소로 총총 사라졌다. 그를 등지고 돌아서자마자 돌연 한숨이 새 나왔다. 너무나 멋진 직업임엔 틀림없지만, 한번 도전해보라는 건지 차라리 일찍 두 손 들라는 건지 머릿속이 잠시 복잡해졌다.

■ 음반 프로튜서가 되려면

출신 전공의 제한은 없다. 대중음악 관련학과가 개설된 대학의 교육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유리하다. 연주 능력이 일정 수준 갖춰지면 밴드활동에 참여하거나 뮤지션들이 모이는 곳에 적극 찾아다니는 것이 좋다.

관련분야의 대인관계를 넓혀야 한다. 자연스레 음반 제작 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늘리면서 실력을 인정받다보면 점차 전체를 일임받는 음반 프로듀서로 기용된다. 수입과 명예는 철저히 개인의 능력. 최소 5년 이상은 연주 경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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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7/10/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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