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45주년… 독창성 중요하지만 대중의 공감 못 얻으면 실패한 디자이너변화는 기본… 같은 의상 한번도 만든적 없어가장 중요한 패션 컨셉트는 지성미와 교양미… 자연·음악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 많이 얻어

올해로 패션계에 데뷔한 지 만 45년이 된 앙드레 김. 그 오랜 세월 내내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정점에 선 인물. 대부분이 알고 있지만 누구도 그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캐릭터의 소유자. 앙드레 김 만큼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디자이너도 드물다.

앙드레 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린다. 디자이너의 생명인 ‘개성’을 두고도 누구는 “변화가 없는 몰개성적”이라고 말하고, 또다른 이는 “그만의 독창성을 지닌 드문 예술가”라는 식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앙드레 김이 한국 패션계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외국인들로부터 가장 높게 평가 받는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그것은 그가 단순한 디자이너에 머물지 않고 패션이라는 문화 아이콘을 통해 한국을 알리고 동양의 정서를 전달하며 ‘패션 코리아’의 강인한 인상과 위상을 각인시킨 남다른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서울 신사동의 앙드레 김 본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패션의 메시지와 그 안에 담긴 45년 패션 인생의 파노라마를 들어봤다.

우선 앙드레 김이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했다. 그는 “한국전쟁 때 본 유럽영화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제가 중학생 때 한국전쟁이 났어요. 우리가족은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굉장히 많은 외화가 수입됐는데 요즘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보다는 아름다운, 서정적인, 로맨틱한 유럽 영화가 많이 들어왔죠. 영화내용도

흥미롭게 보았지만, 출연진이 입는 의상에도 눈을 뜨게 됐어요. 이전에는 한복위주로만 봐 왔는데, 세계의 다양한 연기자들, 의상에 대해서 현혹됐죠.

그때 ‘나는 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돼야지’라고 생각했어요.”

7년 후 서울로 돌아온 앙드레 김은 1961년 ‘국제 디자인 학원’의 제 1회 학생으로 입학한다. 1년간의 공부 후 62년 첫 의상발표회를 연 앙드레 김은 그 해 중구 소공동에 의상실 ‘앙드레 김’을 열었다.

지난 45년 간 한국 패션의 변화에 대해 묻자 그는 “엄청난 변화가 왔다”고 말했다.

“우선 그 당시는 대학에 의상학과가 전혀 없었다고요. 30여년 전부터 의상학과가 탄생하기 시작했어요. 요즘은 거의 모든 대학에 의상학과가 있죠. 유학을 한 학생들도 굉장히 많아요. 제가 첫 의상 발표를 했을 때 많은 분들이 파리에서 유행했으면 한국에 영향을 미치는데 5년이 걸린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의 동시에 첨단적인 패션이 같이 유행하고 있어요.”.

그러면 앙드레 김 패션은 얼마나 변한 것일까. 일부에서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고 하자 그는 “변화는 항상 있어왔다”고 답했다. 시대에 따라 로맨티시즘을 강조하거나 세계적인 화가, 동양적 영감 등을 받아 작품을 변화시켜왔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해외에서 ‘뮤지엄 컬렉션(museum collection ; 박물관에 소장될 의상)’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한 번도 같은 의상을 만든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의 패션에서 변치 않는 것과 변하는 것에 대해 묻자 “동양적이고 아시아적인 분위기는 일관되게 지켜가고 있지만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해요. 그게 창조이지요.”

그는 유행을 좇는 요즘 세태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급급하게 유행만 쫓아가는 사람들은 무조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피카소의 개성 있는 그림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잖아요? 피카소가 자기 그림을 그리다 반 고흐 같은 그림을 그리면 ‘개성이 없다’고 말할 거 아니에요? 패션은 본인이 창조해야죠. 해마다 바뀌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디자이너로서 인정 받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앙드레 김의 독특한 패션은 어떠한 영감으로 빚어지는 것일까.“자연과 음악을 대표적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굉장히 많은 영감이 떠오르게 되고요 클래식 콘서트에서 음악을 들었을 때 지성미가 깃든 작품을 구상하게 되요. 그리고 세계적인 조각, 건축, 한국과 중국의 왕실문화, 색상, 실루엣을 보면서 창조를 하는데 영감을 얻게 되죠.”

그가 패션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이고, 패션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어떤 것일까. 그는 디자인에서 지성미와 교양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제가 만든 옷은 지성미, 교양미를 느끼면서도 한국적이면서 동양적인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의상이죠. 저는 한국인으로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거든요.

유럽디자이너들이 지니고 있지 않은 동양의 뿌리를 갖고 태어났다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세계 각국에 나가 패션쇼를 하면 하이라이트 부분은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기품, 신비감을 테마로 발표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끼게 되고요.” 그리고 그는 “내 작품에 퇴폐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모델을 섭외할 때도 지성미가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고.

연예인 모델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해 앙드레 김은 “패션쇼에서 예술성, 작품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스타마케팅’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패션을 종합예술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서는 직업 모델만 데리고는 한계가 있어요. 멋스럽게 의상을 표현하는 건 직업 모델이 하지만, 제 쇼는 예술적인 감성을 보여야 해요. 감성적인 연출을 위해서 텔레비전, 영화 스타를 초빙하게 된 거죠.”

대중성에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쿨 하게 대답했다. 패션상품은 의상 자체보다 국가의 문화적 수준에 따라 그 평가를 받는다고 앙드레 김은 말한다. 그는 “오랜 기간 해외 패션쇼를 진행해 한국의 문화적 수준을 끌어올렸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저는 예술성과 상업성, 두 가지를 병행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지금 기성복을 직접 하진 않거든요. 제가 하는 패션쇼를 통해서 외국인들이 문화적인 감동을 받으면 ‘메이드인 코리아’의 이미지가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대신 직접 운영은 하지 않지만, 라이선스 계약으로 골프웨어, 속옷, 안경 등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아이템을 출시했죠. 원하시면 누구든지 부담 없이 구입하실 수 있게.”

그는 뜻밖에도 “대중의 공감을 받지 못하면 실패한 디자이너”라고 말했다. 해외 유행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는 디자이너와 이를 스타 마케팅에 이용하는 스타일리스트, 코디네이터도 문제가 있지만 대중이 인정하지 않은 작품을 내놓고 자아도취 하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독창성과 창의성이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공감을 느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실력 있는 디자이너죠. 가끔 패션잡지 보면 ‘이런 걸 어디 입고 가라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앙드레 김은 후배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에게 “시대 변화에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개성을 살리라”고 조언했다. 동양인의 감성을 살리면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힌트도 주었다.

“자기가 태어난 곳의 뿌리를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게 재창조하는 게 중요해요. 동양 디자이너로서 독특한 개성을 살리면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동양적으로 디자인하라는 게 한복 디자인 하라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아름다운 참된 미덕, 겸손한 아름다움, 부끄러움을 타는 듯한 아름다움, 이게 저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거라 생각하거든요.”

● 앙드레 김 의상 누가 입나 ?
만찬·파티용으로 대사 부인들에 인기

앙드레 김 패션쇼를 본 사람들의 의문점 가운데 하나가 ‘저런 옷들이 잘 팔릴까?’이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패션쇼 의상을 대중화해서 매장에 출시하지만, 앙드레 김의 경우 패션쇼 의상 그대로 신사동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다. 그럼에도 잘 팔린다. 우선 대사 부인들 만찬이나 파티용으로 각광을 받는다.

앙드레 김의 20년 단골이라는 미국 교포 여성은 “앙드레 김 의상은 독특하기 때문에 이브닝 드레스로 사랑 받는다. 파티에 입고 가면 돋보인다”고 칭찬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도 앙드레김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팝 가수 마이클 잭슨, 사마란치 전 IOC위원장, 고 다이애나비가 그의 의상을 극찬한 것은 이미 알려진 일. 연예인 시상식이나 파티복, 결혼예복 등으로도 애용되고 있다.

앙드레 김 의상 중에서 가장 잘 팔리는 옷은 베이직 수트들이다. 일반 정장옷은 양갓집 자녀들이 선을 볼 때나 지방 유지 부인들이 즐겨 애용하는 편. 멀리 일본에서도 앙드레 김 의상을 사기 위해 한국에 오는 일본인들도 ‘많다’.

이밖에도 자신을 ‘영국왕족’이라고 소개한 ‘윌리엄 남작’도 앙드레 김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아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앙드레 김 의상은 100% 수제 맞춤이기 때문에 가격은 200만~300만원선. 그러나 98년 옷 로비 사건 때문인지 구체적으로 단골을 말하는 것은 꺼렸다.

● 원로화가 김종하 화백과 앙드레 김의 특별한 인연

한국 미술사의 ‘산증인’인 원로화가 김종하(90) 화백은 앙드레 김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김 화백은 1932년 15세의 나이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최연소 입선한데 이어 42년 조선미술전람회특선, 8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루벤스훈장 수훈, 2002년 우리 정부로부터 최초로 생존예술가 중 문화훈장 수훈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김 화백과 앙드레 김의 인연은 앙드레 김이 패션계에 입문하면서부터. 1960년대 국내 최고 양장점을 운영하던 ‘국제양장점’ 최경자 선생은 디자인 전문학원인 ‘국제복장학원’을 세웠고 앙드레 김은 제 1회 학생으로 디자인을 배웠다.

최경자 선생은 체계적인 교육을 위해 <스타일화>를 과목으로 개설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스타일화란 복식 디자인의 내용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의상 디자이너가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 때 그것을 스타일화로 그려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며 보존하게 한다.

앙드레 김에게 스타일화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김 화백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 앙드레 김은 12월 초, 강남 포털아트에서 열리는 김종하 화백 특별 초대전 개막에 맞춰 자신의 은사를 꼭 찾아 뵙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전했다.

<저작권자 ⓒ 한국아이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행 박종진차장·이윤주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