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 비정규직 해법엔 문제 많아…스웨덴식 노동시장 모델 참고 필요

대선이 끝난 후 국민의 관심은 단연 경제에 맞춰있다. 대선 전후의 미디어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 대다수는 경제 성장도 중요하지만, 성장만큼이나 분배 효과를 중요하게 여긴 것으로 나타났다.

차기 정부가 올바른 경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우선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는 무엇일까. 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소장을 만나 비정규직 문제와 경제 분배, 노동계 현안에 대한 혜안을 들어보았다.

_이명박 당선인이 제시한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 경제정책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비정규직 양산과 양극화다. 이명박 당선인은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숙련도나 업무집중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런 지적은 타당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 당선인은 기업경영자 출신답게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을 정규직의 고임금체계와 대기업의 단체협약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해법으로 정규직의 임금 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 처우 개선에 쓰도록 정규직이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하는 해법을 강조한다. 이런 해법은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_왜 성장의 걸림돌이 되나.

“대기업 노동자의 양보를 통해 비정규직과의 차별을 해소하는 해법은 ‘피용자 보수율(국내총생산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 감소를 불러온다. 이와 같은 비정규직 차별해소 방안은 시장경제주의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피용자 보수율을 낮춤으로써 건전한 내수의 창출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경제문제 양극화 해법은 ‘임금 상승을 통한 소비 촉진’에 있다.”

_임금이 오르면 기업경쟁력, 나아가 경제성장을 억제하지 않나.

“지금 우리 경제는 수출보다 투자의 비율이 더 높고, 투자보다 소비 비율이 더 높다. 국민의 소비 역량이 줄면 기업의 수출역량이 줄어드는 것보다 경제에는 더 해롭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수출보다 소비가 성장 기여율이 높아졌다. 국민 소비가 줄면 경제전체에 굉장히 해로운 상황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와있다. 비정규직근로자 저임금문제는 철저한 시장경제적 입장에서 봤을 때도 해로운 것이다.”

_친 시장 정책은 대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지 않는가.

“우리나라 경제양극화의 원인은 대기업의 투자가 적기 때문이 아니다. 트리클다운 효과(Trickle Down,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덩달아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경제 이론)가 상실됐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트리클다운 효과는 40%대에 머물러있다. 대기업의 수익이 상위 40%에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하위 20%로 가면 ‘트리클 업(하위계층이 상위계층에게 소득을 뺏기는 것)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국민 대다수의 노동소득을 높여주는 것이다. GDP가 4~5%대로 안정적으로 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서민이 이를 체감할 수 없는 이유는 노동소득이 낮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극빈 계층의 70%를 차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소득을 정규직 소득만큼 빨리 올려주는 일이 시급하다.”

_이명박 정부의 친시장 정책에 대해 노동계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큰데.

“선거기간 이 당선인은 노동문제에 정부가 적극적인 중재 역할을 하는 것보다 조정자로서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동문제에 대한 새 정부의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법과 원칙을 내세워 노동운동을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

_많은 지식인들이 경제성장 롤모델로 스웨덴을 꼽는다.

“이명박 당선인도 비정규직 양산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을 낮춘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은 임금을 낮추는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저임금사업장을 퇴출시켜 경제성장을 일군 나라가 스웨덴이다. 스웨덴은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전 국가적으로 시행된 나라로 유럽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다.

_'동일노동, 동일임금'이 국내 여건에서 효과를 발휘할까.

“스웨덴의 선반공이 받는 임금을 보면 9만 명이 일하는 볼보 같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는 고임금을 지불하면서 고부가가치로 경쟁하는 선진기업만 계속 성장할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저임금의 노동절약 방식을 택하는 기업은 전부 도태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부설 연구소조차 ‘동일노동 동일임금’체계가 스웨덴의 국가성장을 견인했다고 말한다. 관건은 이 과정에서 퇴출되는 사업장에서 해고되는 근로자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는 점인데, 스웨덴은 이 시스템이 국가차원에서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우리나라는 97년 외환위기가 경제 시스템을 전환시킬 기회였지만 스웨덴과 반대로 작용했다”

_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 구조 변화를 진단한다면.

“1929년 세계 대공황을 겪은 후 구미에서는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수정자본주의가 생겨났다. 노동자들의 경제력을 일정수준 유지해주지 않으면 사회전체가 몰락할 수 있다는 교훈을 깨달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 염려증’이 생기고, 경제적 가치가 모든 가치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풍조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노조활동이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비정규직을 기업성장을 위한 필요악으로 생각한다. 현재 한국의 노조조직률은 10.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노조의 협약을 적용 받는 ‘단체 협약조직률’도 전체 근로자의12%로 최하위다. 이런 현상은 시장경제 전체에 있어서도 결코 이롭지 않다. 노조조직률이 낮다고 해서 기업의 경쟁력이 오르는 것은 결코 아니다.”

_새 정부가 경제 노동정책에서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면.

“이 당선자는 기업이 이윤추구 못지않게 노동자 복지증진과 사회적 책임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한 성과 배분과 고용안정, 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그러나 개별 경제문제가 발생할 경우 차기 정부가 기업의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관련법의 ‘차별시정제도’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기업은 노동비용증가에 대해 완강히 저항할 것이며 실현가능성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면서 사회 권익을 실현한 역대 정부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_차기 정부에게 조언할 것은.

“20년 전 절차적 민주주의가 형성되고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왔다.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지금의 현실에서 군사독재시절 못지않은 억압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새 정권에서 확실한 처방을 하지 않으면 향후 5년, 10년 안에 민주화 운동처럼 거대한 저항의 물결이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점진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 하종강 약력

◇ 1955년 인천 출생

◇ 현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 현 인천대학교 강사

◇ 현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정위원

◇ 현 한국노동교육원 객원교수

◇ 현 노동자교육센터 교육위원 저서

<왜 80이 20에게 지배당하는가?> (공저, 2007년, 철수와영희) <길에서 만난 사람들> (2007년, 후마니타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 (2006년, 후마니타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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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