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 강지원 변호사

17대 대선의 열기가 채 가시기 전에 4월 총선이 눈 앞에 다가왔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으로 국민의 기대가 한껏 고양된 상황에서 4월 총선은 새 정부는 물론 국민의 희망이 어떻게 채색될 것인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지난 대선이 네거티브 선거로 점철된 후진적 양상을 보였기에 4ㆍ9 총선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여야의 정치지형과 생존을 넘어 한국 정치, 나아가 통괄적 의미의 한국 문화 전반을 비추는 상징성을 띠기 때문이다.

이제 선거는 단순한 정치적 요식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이 지향하는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약속에 대한 확인행위다. 4월 총선의 가장 큰 함의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선거를 냉소하고 무관심해 한다. 선거가 오히려 사회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측면이다.

그럼에도 우리 선거문화는 점진적으로 개선돼 왔다. 최근 ‘정책’으로 후보와 정당을 평가하자는 ‘매니페스토’ 운동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가장 분명한 징표다.

‘매니페스토’는 선거 후보가 목표와 이행 가능성, 예산 확보의 근거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공약을 말한다.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그러한 메니페스토 운동이 선거문화에 뿌리를 내리게 된 데는 대표적인 매니페스토 운동단체인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역할이 컸다.

그러한 활동의 중심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강지원(58) 변호사가 있다. 강 변호사는 본래의 메미페스토 운동에 서양과 동양의 장점을 취합한 ‘한국형 매니페스토’를 대안으로 내놓는 등 선거를 뛰어넘는 사회ㆍ문화적 메니페스토 운동을 펼쳐 주목을 받고 있다.

강 변호사는 본업인 변호사 일 이외에도 ‘청소년 지킴이’, TV와 라디오를 넘나드는 방송진행자, 잡지 발행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다. 부인인 김영란 판사가 여성최초로 대법관에 임명됐을 때는 방송과 법무법인 대표를 그만둔 ‘통 큰 외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인신공격·지역바람 아쉽지만 '네거티브 전략은 낙선의 길' 교훈 얻어
정책으로후보·정당 평가하는 한국형 매니페스토 운동 정착 위해 왕성한 활동
"우리시대 주요 화두는 탕평… 수직·수평문화 결합된 플러스 사회로 나아가야"
매니페스토의 지향점은 신뢰… 사회공동체에 대한 약속 생활 속에서 실천
적성 조기개발과 특성화 고등학교 확대로 청소년의 개성있는 재능 키워야

■ 17대 대선은 절반의 성공

20일 법조타운이 있는 강남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강지원 변호사는 17대 대선 얘기부터 했다.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 대선에서 각 정당이 정책공약집을 발매하고 서점에서 판매할 수 있었던 것은 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건의안을 정부에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유권자들의 의식 변화도 이번 대선의 성과 중의 하나죠.”

강 변호사는 최근 몇 차례의 선거에서 대부분의 후보들이 매니페스토를 언급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실패를 한 것에 대해 인식공격 풍토와 지역바람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반면 이번 대선에서 한 가지 소득이 있다면, 인신공격적인 선거운동을 한 사람들은 반드시 떨어진다는 교훈을 얻었다는 것.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인신공격한 후보가 떨어졌고, 대선에서도 인신공격한 당과 후보가 모두 낙선했다는 설명이다.

“정해진 시간에 자기 정책 설명하기도 바쁜데 남을 비방하는 데 시간을 쓰면 그만큼 자기를 보여줄 기회가 줄어들잖아요. 전 이번 총선 출마하는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해요. 인신공격하면, 떨어진다고.”

선거라는 링 위에 올라간 선수들은 서로의 장기를 보여주되, 후보 검증은 제 3자, 특히 언론이 해야 한다는 것이 강 변호사의 생각이다. 매니페스토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언론과 시민단체의 철저한 후보검증 역할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유권자가 후보의 정책공약을 접촉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이 ‘선거공보’인데 그곳에 실린 공약이 대부분 ‘시민이 잘사는 사회’ 같은 뜬구름 잡는 얘기라고 지적한다. “그러한 것은 정책공약이 아닙니다. 매니페스토가 정착하려면 후보 개인의 공약을 유권자가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선거철이 되면 각 당에서 정책 공약을 대대적으로 만든다. 강제 사항은 아니지만, ‘정책 선거’가 이슈가 되는 만큼 공방을 할 때 하더라고 명확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그러나 강 변호사는 유연한 메니페스토 운동을 강조한다. “후보들이 꼭 지켜야 한다고 부담을 갖는데 매니페스토라고 해서 반드시 지켜야 되는 건 아닙니다. 나중에 상황이 달라질 수 있고 국제 정세가 변할 수도 있는데 한번 공약했으니 반드시 지키려고 하는 거시 오히려 자살골이 될 수 도 있어요.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되, 수정할 때는 국민의 동의를 얻으라는 겁니다.”

■ 방송 진행하다 매니페스토운동 합류

강 변호사가 매니페스토 운동에 뛰어든 것은 ‘청소년 지킴이 사업’의 일환으로 방송을 진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방송을 하다 보면 ‘너는 어느 쪽이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데 특히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와 지역감정을 뼈져리게 느꼈습니다. 2006년 5ㆍ31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몇몇 분들이 매니페스토 운동을 하자고 제안해 쌍수를 들고 환영했죠.”

강 변호사는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탕평’이라고 말한다. 그가 꺼낸 탕평은 정치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을 가로지른다. “우리 사회는 문병사적 갈등과 당파적 분열 양상이 매우 심해요. 수직(│), 수평(─) 문화가 결합된 플러스(╀)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과거 권위주의, 위계질서 중심의 수직문화와 근대사회의 평등하고 개방된 수평문화의 장점을 조화시켜 플러스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설명이다. 수직사회의 권위주의는 지양하되 권위는 지켜가야 한다는 것. 또 수평문화를 대표하는 인터넷문화에서 개똥녀 사건이나 최근 나훈아 사건 등 부작용이 큰 만큼 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플러스 사회로 진일보하는데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보장하고 있는 현행 헌법뷰터 뜯어 고쳐 일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고답적인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각 자의 영약에서 능력을 발휘하게 해 발전된 평등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그러한 플러스사회를 지향하는 것 또한 메니페스토 운동이라고 말한다. 그가 요즘 강조하는 것은 ‘생활속 메니페스토’이다. 즉 사회속 공존, 공유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그가 청소년 지킴이, 장애인 권익 운동, 인수위의 정부조직개편에서 여성부를 폐지한 것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약자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그의 일관된 삶에서 우러난 것이다. 즉 사회공동체에 대한 약속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 공교육은 고등학교부터 개혁해야

강 변호사가 추구하는 생활속 메니페스트 운동에서 여전히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청소년 부분이다. 그들에게 이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만큼 개성이 발현되고 자유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바꿔나가는 게 강 변호사의 가장 큰 메니페스토다.

자녀 둘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낸 그는 “우리나라 교육은 고등학교부터 개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의 개성을 억누르고 엘리트주의를 자향하는 현재의 교육의 틀을 깨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특성화고등학교를 만들고 어릴 적부터 적성을 개발해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이 재능을 키워주는 것이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지금 우리교육의 고질적 병폐는 대학입시제도를 뜯어고친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어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가려고 혈안이 돼있는데. 고등학교가 변하면 대학은 마지막으로 바뀔 겁니다.”

강 변호사는 최근 중학생 때부터 적성을 찾고, 특성화고등학교에 들어가 적성을 개발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육전문가들과 비공개 토론회를 실시하고 있는데,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한다. 전국에 특성화 고등학교가 200여개 있는데 하나 둘 더 늘어나 2,000개가 되면 교육혁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로스쿨(법학전문 대학원) 정책에 대해서도 독특한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로스쿨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하지만 제한된 정원을 나눠주는 식으로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며 “개인적으로는 카이스트와 포항공대처럼 법조 전문대학원을 세우는 것이 복안”이라고 말했다.

로스쿨 하나만 갖고 학교를 운영하면 현재의 암기식, 주입식 법학교육에서 탈피해 소크라테스적 토론을 하고 무엇이 정말 인간을 위한 삶인지, 무엇이 공동체를 위한 정의인지 알게 하는 교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 변호사는 요즘 4월 총선과는 별도로 매월 말일을 ‘매니페스토 약속의 날’로 지정해 다양한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생활에서 매니페스토를 실천하자는 취지다. 29일 선포식에는 요리사, 청원경찰, 버스기사 등 제복을 입은 사람을 등장시켜 각자 직업에서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선포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4월 총선에서 100% 성공 못한다고 해도 이런 행사를 통해 유권자들이 생활 속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강 변호사는 메니페스토의 지향점이 ‘신뢰’라고 강조한다. 자신과 사회, 국가 간 약속에 대한 ‘믿음’ 말이다. 개인이나 국가가 신용이 있다면 믿고 투자를 하게 돼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경제적인 부(富) 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부도 향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강 변호사의 다양한 이력과 왕성한 활동은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회복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사법시험(18회, 1976년) 수석합격, 행정고시(12회, 1972년) 합격 등으로 그야말로 잘 나가던 법조인에서 청소년 문제에 천착해 외도(?)를 시도한 강 변호사는 자주 일탈을 꿈꾸고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강 변호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사무실에는 그를 만나려는 다양한 삶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가 최근 펴낸 <강지원 생각, 큰바위얼굴 어디없나>라는 책을 받아들면서 어쩌면 강 변호사가 이 시대의 ‘큰바위얼굴’이 아닌가 생각해봤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