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이후 매년 10% 이상 성장했지만 경쟁사 도전에 효과적 대응 못해 주춤신약개발·마케팅 전략 혁신으로 위기 돌파… 인재육성·연구개발 핵심투자

지난해 교육인적자원부, 산업자원부, 노동부, 중소기업청 등 4곳이 공동 주최한 ‘2007년도 인적자원개발 우수기관’ 수여식에서 제약회사로는 최초로 인증서를 획득한 곳이 있다. ‘토비콤’이라는 약품 브랜드로 잘 알려진 안국약품이다.

안국약품은 어진 대표가 1998년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연 10% 이상 꾸준하게 성장했다. 한 해 43.8%의 고도성장을 기록한 적도 있다. 2007년 매출은 700억 원을 넘어섰으며, 올해는 주사 없는 주사기 ‘인젝스’와 제약계의 이슈 제품인 ‘레보텐션’(고혈압 치료제)의 쌍두마차로 900억 원 목표를 향해 고삐를 당기고 있다.

어 대표가 안국약품을 이끌어가게 된 계기는 아버지인 어준선 회장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어 회장은 증권회사에서 잘 나가는 직원이었던 아들에게 어느날 한 달간 선택의 시간을 줬다. 지금 들어오든지 아니면 평생 들어올 생각을 말라는 명을 내린 뒤였다. 그는 고민 끝에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제약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공공재 성격을 많이 갖고 있다. 보험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무엇보다 제약업계의 최대 변수는 법규 제정 혹은 변경이다. 법이 시장 전체를 흔들어놓기 때문이다.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은 제약업계에 ‘쓰나미’ 같은 존재였다. 그 전에는 약국을 통해 파는 약(OTC)과 병원을 통해 파는 약(Ethical)의 비중이 대충 반반 정도 되었다. 하지만 의약분업 이후 약국매출과 병원매출 비율은 2대 8 정도로 급변했다. 새 제도가 시장 판도를 확 뒤바꾼 것이다.

98년 그가 대표로 취임한 이후 처음 한 일은 이런 의약분업에 따른 대책 마련이었다. 우선 병원들의 니즈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미리 개발하기로 했다. 마케팅 전략도 전면 수정했다. 약사를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과 의사를 상대하는 마케팅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전략에 따라 당시 푸로스판(가래를 없애는 진해거담제)이라는 신약과 소화제인 애니탈, 애니팬 등을 출시했는데 시장의 반응이 뜨거웠다. 병원을 상대로 실시한 기술 세미나 등의 마케팅 수단도 효과가 뛰어났다.

신약 개발 성공, 마케팅 능력 배가 등으로 매출이 올라가자 직원들의 사기도 한층 높아졌다. 그 결과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고도성장을 기록했다.

안국약품을 보면서 필자는 전승불복(戰勝不復)이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전쟁에서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즉, 같은 방법으로는 성공을 계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2000년대 초반의 성장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가파르게 올라가던 성장곡선은 2004년부터 둔화되었다. 물론 그 후로 2007년까지 10% 정도의 성장세는 이어갔지만 과거의 기세를 재현하지는 못했다.

“작은 성공이 실패의 시작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의약분업이란 변화의 물결을 활용해 고도성장을 이뤘지만 그 성공으로 안일해졌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수준의 몇몇 경쟁사는 엄청난 성장을 했는데 저희들은 상대적으로 주춤했습니다. 잘 나갈 때가 가장 큰 위기라는 것을 시간이 지난 뒤 알게 된 셈이죠.”

어 대표의 씁쓸한 회고는 이어졌다. “우리가 잘 나서라기보다 변화의 물결 덕분에 성장한 것인데 이를 모르고 교만했던 것이죠. 우리가 잘 나가니까 경쟁사들은 우리 제품 특성과 마케팅 방법을 그대로 배워서 써먹었습니다. 당연히 예전만큼 효과가 날 수 없지요. 그러니까 성장세가 주춤한 겁니다.”

다시 한 번 도약의 기회를 마련해야 했다. 제약업체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신약개발이다. 어 대표는 신약개발에 힘을 집중하고 마케팅 전략을 다시 세웠다. 이런 준비 끝에 나온 신약이 제약업계의 이슈가 되었던 레보텐션이다. 기존 동종 약품의 절반만 먹고도 같은 효과를 내게끔 만든 신약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 1위 제약회사가 자신의 고혈압 처방약의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호사다마였다.

회사를 구원해줄 것으로 기대한 신약이 특허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사내 분위기는 어두워졌다. 더구나 2006년 8월 특허심판원에서 패소한 데 이어 2007년 2월에는 판매금지가처분신청까지 진행됐다.

업계에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며 모두 안국약품의 패배를 예상했다. 더 손해를 보기 전에 빨리 포기하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 세계1위 회사와 '골리앗-다윗'의 싸움

“사실 힘들었습니다. 세계 1위 회사와 싸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특허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는 특허의 범위를 너무 확대해 주장했습니다. 물질특허만 갖고 있으면서 제조법특허까지 거론하는 상황이라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지요. 더군다나 신약은 새로운 캐시카우가 될 것이고 기업의 사기와도 직결되는 상황이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해 이의신청을 했지요.”

결과는 어 대표의 예상대로 괜찮았다. 2007년 2심기관인 특허법원에서 승소했다. 그 회사가 다시 항소해 현재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리고 있지만 어 대표는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그 회사가 미국에서도 비슷한 소송을 했지만 패소로 끝났기 때문이다. 다윗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거대한 골리앗과의 소송전은 오히려 회사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세계 제일의 제약회사와 맞붙어 이겼다는 자신감은 임직원의 사기를 끌어올렸고 매출에도 영향을 주었다. 제약업계의 이슈가 되면서 마케팅 효과도 부수적으로 얻었다.

제약업은 연구개발이 핵심이다. 하지만 연구개발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데다 성공하더라도 특허소송에 시달리기 일쑤다.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마케팅도 전쟁터나 다름없다. 잠시만 방심해도 다른 회사 제품에 자리를 내주기 십상이다.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생산기준 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기 때문이다. 생산기준 강화는 기존 설비를 교체하는 등 생산설비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라는 게 골자다.

당연히 원가상승 요인이 된다. 세계 각국과 동시다발적으로 협상을 진행 중인 자유무역협정(FTA)도 큰 산이다. 지적재산권 보호가 강화되기 때문에 특허권 분쟁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예전에도 위기는 존재했고 앞으로도 위기는 계속 있을 겁니다. 또 위기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닙니다. 위기를 통해 기회를 창출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기를 예상하고 꾸준히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 핵심이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재육성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그들만 있다면 어떤 산이라도 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 대표는 느리지만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의 책상 뒤에는 ‘구농’(龜農)이라는 글자가 씌어진 액자가 있다. 구농은 지인으로부터 받은 호인데, 거북이처럼 천천히, 그리고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삶을 누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단다. 안국약품과 어 대표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변화하면서 더욱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한근태 한스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