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고급 악어백 브랜드 '콜롬보'로 글로벌시장 공략하는 패션 머천다이저단일매장 확보·과감한 홍보 등 마케팅 전략 효과좋아국내시장 확대시킨 공로로 전세계 판권 획득 "명품을 팔려면 자신부터 명품이 돼라"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를 비롯해 세계 상류층에서 각광 받는 이탈리아의 고급 악어백 브랜드 '콜롬보 비아 델라 스피가(이하 콜롬보)'의 글로벌시장 공략에 한국인 머천다이저(MD)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게 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콜롬보 본사가 브랜드의 글로벌화를 위해 손잡은 파트너는 콜롬보의 한국 판권을 가지고 있는 (주)오르비스 인터패션의 이혜경 대표.

이 대표는 올해 초 콜롬보 본사와 전세계 판권을 공유하는 자회사를 설립하고, 향후 20년 간 콜롬보의 판매와 경영을 총괄하기로 했다. 콜롬보는 제조에 전념하고, 영업과 경영 쪽은 오르비스가 책임지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체계다.

현재 콜롬보와 함께 역시 초고가 브랜드인 '제니(Genny)' 모피를 독점 수입판매고 있는 그는 명품에 대한 안목과 경영능력을 갖춘 탁월한 패션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2002년부터 콜롬보를 수입판매하며 한국시장에서 브랜드의 판매와 인지도를 크게 높인 공로를 본사에서 인정한 거죠. 세계명품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는 대단히 큽니다. 이제 명품사업가들은 한국시장에서 통했다면 세계시장에서도 통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콜롬보 제품은 1970년대부터 수입됐으나 국내시장에서 브랜드의 인지도는 매우 낮은 편이었고, 소수의 장년층 마니아들이 있을 뿐이었다. 이 대표는 콜롬보 판권을 확보한 이후 브랜드 대중화에 앞장섰다. 이를 위해 그는 악어백은 나이든 사람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부터 바꿔놓았다. 고급스러우면서 약간은 무거운 분위기를 내는 콜롬보 ‘클래식라인’뿐 아니라 오렌지와 청록색, 파스텔톤 등 화려한 색감과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모던라인’을 선보이며 젊은 마니아층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젊은 연예인 가운데 황신혜, 이혜영, 최지우 등이 콜롬보 단골 고객이다. '악어백=정장'이라는 고정관념을 없애고, 악어백과 캐주얼 복장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대표 본인 또한 청바지에 악어백을 즐겨 한다.

광고와 홍보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다. 4년 전, 핸드백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하얏트 호텔에서 전시회를 가졌고, 최상류층 고객을 타깃으로 파티도 자주 열었다.

판매전략도 과감히 바꿨다. 이 대표는 인기가 높지 않은 브랜드라는 생각에 백화점코너에서 판매하던 기존 방식을 깨고, 콜롬보 단일 매장을 고집했다. 최고의 브랜드라는 자신감과 애정 때문이었다. 결과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았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매장의 경우, 계약 당시 약속했던 매출액의 3배 이상을 기록했을 정도다. 콜롬보 매장 수는 지난 5~6년 사이 크게 늘어나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 외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애비뉴엘 등 10개 매장을 두고 있다.

한국인 취향에 맞게 이탈리아 본사에 수시로 디자인 변경 제안을 하는 것도 그의 공로 중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가방 안감으로 양가죽을 써왔는데, 캐시미어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어요. 안감을 바꿔주고 나니 가방의 무게가 훨씬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더군요. 또, 악어가죽이 물에 약하다는 점에 착안해 가죽 위에 실리콘을 입혀보자고 제안했어요. 이렇게 주문해서 바꾼 제품들이 인기가 아주 높아요. 제품을 상품화 하는 사람 입장에서 디자이너들에게 끊임 없이 조언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이탈리아 본사 측은 한국 판권에 이어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판권을 그에게 넘겼고, 미국과 중동 등 글로벌 판매를 위해서 또 다시 그의 손을 빌렸다. 콜롬보는 1953년 밀라노에서 여성용 핸드백을 판매하는 부티크로 시작한 이래 독창적인 악어가죽 핸드백을 제조하는 회사로 명성을 쌓아온 최고급 브랜드다. 그러나 반세기 넘게 가족경영체제로 운영되어 온 콜롬보가 유럽시장에서 벗어나 세계로 진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역량 있는 사업가가 필요했고, 그 역할을 이혜경 대표가 하게 된 것이다.

글로벌화의 첫번째 작업으로 이 대표는 내년 말 뉴욕에 콜롬보 단독 매장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른 나라의 브랜드를 판매한다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외국의 좋은 브랜드를 발굴해 세계적으로 키우는 것은 결국 한국패션산업의 미래를 밝게 만듭니다. 패션에서 디자이너 못지않게 머천다이저(MD)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해요. 아무리 천재적인 패션디자이너가 있다 해도, 상품화를 못하면 그 옷은 무용지물이 되지요. 좋은 국내 브랜드가 나왔을 때 세계시장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머천다이저가 있어야 세계적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패션산업은 디자인뿐 아니라 상품화 기술도 패션 선진국에 비해 많이 부족한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이 대표는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러나 미국에서 그는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고 패션 머천다이저의 길을 택했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가 탄생하려면 나라의 브랜드가 필요해요. 당시 우리나라의 인지도나 문화수준으로는 도저히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 수 없음을 깨닫고 진로를 바꿨습니다."

훌륭한 패션사업가가 되기 위해 그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의 명품매장과 백화점, 벼룩시장을 돌며 패션에 대한 감각을 익혔고, 매년 파리, 밀라노, 런던 등 세계 4대 콜렉션에도 빠짐 없이 참석하며 패션산업에 대한 이해를 키웠다.

그가 발굴해 국내 시장에서 상품화한 브랜드는 콜롬보를 포함해 제니, 크리지아, 시버디니 등이다. 오르비스 인터패션을 통해 콜롬보와 제니 외에 한 두 가지의 패션브랜드를 더 수입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그는 명품을 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이 명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관리도 철저히 해왔다.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처럼 가꾼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 받는 패션 머천다이저가 된 그는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패션브랜드가 나올 가능성이 서서히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가 특히 앞으로 세계화의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하는 브랜드는 패션전문업체 오브제의 '와이앤케이'다.

그가 명품을 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좋은 재질이다.

"명품이라면 디자인, 색상 등 겉 모양도 좋아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최고의 품질이어야 합니다. 제가 브랜드를 발굴 할 때는 재질을 가장 중요시 해요. 콜롬보나 제니 모두 최고의 재질로 만들어졌기에 최고의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명품에서 섬유(textile)의 가치가 점점 더 높아질 거예요. 진정한 명품을 만들고 싶다면, 우리나라 디자이너들이 고급 섬유에 대한 감각을 더욱 키워야 합니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