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한 우물만 고집한 외골수'처음처럼'등 히트 브랜드 제조기로 명성 쌓아

‘승부사, 전략가, 마케터, 열정가, 여걸’. 브랜드 디자인업체 <크로스 포인트> 손혜원 대표는 최소한 5종 타이틀의 보유자다. 본인이 아니라 그를 오랫동안 알아 온 지인들이 붙인 이름이다.

더 중요한 메인 타이틀이 있다. ‘히트 브랜드 제조기’라는 별명이다. 웬만한 히트 브랜드들 대부분이 그의 작품들이다. 옥토, 힐스테이트, 참이슬, 처음처럼, 트롬, 딤채, 위니아, 엑스캔버스 등 무수하다.

최근 발표된 ‘인사이트리서치’ 조사결과에서도 그의 최신작 'EYE2O(삼일제약 인공눈물)'가 브랜드 인지도에서 1위를 차지, 다시한번 ‘손혜원 파워’를 확인시켰다. 브랜드 디자이너 생활 30년째. 그럼에도 여전히 왕성한 20대의 두뇌를 과시하는 그의 끝없는 창의력의 발원지를 잠시 엿보기로 했다.

- 가장 궁금한 점, 브랜드 히트작만 쏟아내는 비결은 뭔가

“특별한 게 없다. 미련하고 우직할만큼 그냥 열심히 내 길만 죽어라고 따라오다보니 길이 조금 보인 것 뿐이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열심히 30년씩 관통하면 이만큼은 얻으리라 생각한다”

- 전공은 시각디자인인데 언어적 영역인 브랜드 네이밍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어떻게 두가지가 동시에 가능한가

“첫 직장에서부터 심볼 마크를 만들거나 로고 타입을 디자인 하는 일 등이 내 업무였다. 그러다보니 내게 주어진 컨셉트를 직접 언어적인 것과 연결해서 작업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단계쯤에 이르렀을때 고객측에 ‘제가 직접 이름을 만들어보면 안될까요?’했더니 한번 해보라고 해서 직접 이름도 만들고 디자인도 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두가지를 함께 하면 시너지가 생긴다”

- 기억에 남는 히트작을 꼽는다면

“‘이브자리’도 생각나고, 처음으로 돈을 받고 이름을 지어줬던 신원어패럴의 ‘베스띠벨리’. 그리고 여성생리대 ‘매직스’가 떠오른다. 매직스의 ‘매직’은 특히 내가 이 브랜드를 내놓으면서부터 여성의 생리를 마법에 비유하는 표현이 일상의 언어생활에까지 번지는 계기가 됐다”

- '처음처럼'은 특히 각별한 산고를 치뤘다던데

“2005년 연말에 두산에서 갑자기 ‘山’소주를 대체할 소주 브랜딩을 의뢰해왔다. 당시 전국 시장점유율 5%, 수도권 시장 12%를 점유하고 있는 그것을 버리고 신제품을 낸다는 건 사실상 전면전쟁을 뜻하는 선전포고였다. 신제품의 컨셉트인 ‘알칼리수’의 장점에 대한 설명만 간단히 듣고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프로젝트의 작전명이 ‘아나콘다’였다. '처음처럼‘은 평소 나의 좌우명으로, 꽤 오랫동안 내 휴대폰 초기화면에도 설정해놨던 것을 이 제품에 써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신영복 교수의 말씀인줄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래서 고객사 프리젠테이션 전에 직접 신 교수님을 찾아 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린 뒤 허락을 받아 후보작 명단에 넣었고, 예상대로 결국 신제품 브랜드 네임으로 단번에 선택됐다. 그런데 막상 존경하는 신영복 교수님의 이 말이며 글씨까지, 특히 소비재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제품에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게다가 신 교수님은 “‘처음처럼’을 돈을 받고 팔 수는 없다”며 일체의 사례도 받지 않으셔서 더 마음에 얹혔다. 결국 이러저러한 과정을 거쳐서, 내가 받을 용역비 일부와 두산에서 별도로 출연한 금액을 합쳐 장학금 1억원을 만들어 ‘처음처럼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신 교수님이 재직중이던 성공회대에 기부하는 것으로 그나마 감사의 빚을 갚았다. 당시 장학금 전달식 분위기도 너무나 인간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잊을 수 없다”

- 크로스 포인트는 어떤 회사인가

“1986년에 설립된 회사를 1990년에 내가 인수해서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보고 있는 셈이다. 직원 수가 12명 정도된다. 작년부터는 미국 뉴욕에도 지사를 설립해 이미 가동중이다”

- 매번 새로운 발상을 해야한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지는 않나

“ 모든 일이 다 전쟁이다. 게다가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프로니까 항상 성공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일이 잘 해결되면 모든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만약 머리를 쥐어짜듯이 일한다면 아마 죽어날거다. 내게는 이 일이 재미있는 ‘게임’과 같다”

- 그런 '게이머'로서의 기질은 어디서 생긴 것 같나

“집안의 피가 원래 그런 것 같다. 부모님부터 가족 전부가 다들 창의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하다. 특히 다들 책을 아주 좋아해서 독서를 많이 한다. 아버지는 항상 책을 끼고 사셨다. 큰 오빠만 해도 발명특허를 여러개 냈다. 생각뿐 아니라 행동도 아주 빠르다. 나도 ‘모범생’은 아니다”

- 얘기를 들을 수록 아주 분명하고, 치밀한 성격같다

“사실 뭘 하든 대강 하는게 나는 안 된다. 한가지를 알아도 아주 확실하게 알아야 직성이 풀린다. 독서도, 뉴스를 볼 때도 다 그런 식이다. 어떤 사건이 터졌다하면 TV부터 신문, 인터넷, 심지어 안티사이트 등 남들이 잘 안 보는 매체나 정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철저히 독파한다. 한가지를 봐도 아주 정확하게, 깊이 판다. 그래야 전체가 보이고,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성향이 나의 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친구 중 하나는 ‘죽고나서 한번 머리를 뜯어보고 싶은게 너’ 라고 한다(웃음)”

- '농촌홍보포럼', '모새골', '열매나눔재단' 이사 등 조용히 사회봉사도 함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곳들인가

“신앙과 관련해서 주로 알게 된 곳들인데 보육원 등 다들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 도움을 나누는 곳이다. 내 경우엔 무료로 디자인을 해드리는 일도 하고, 금전적인 후원 형식으로 돕기도 한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이미 많은 것을 받았다. 난 개인적으로도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면 안 갚고는 못 지나가는 스타일이다. 그것도 평생을 두고 갚는다. 사회적으로 약하고 아픈 분들에 대해서는 ‘가진’ 사람들이 무조건 마음과 지갑을 열어야한다고 본다. 말만 할게 아니라”

- 현재 진행중인 작업은

“뉴욕 지사쪽에 들어온 3가지 프로젝트를 포함해 현재 국내외로 약 10건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쪽 반응이 좋아서 23일에는 재뉴욕한인경제회의 강연도 맡게된다. 미래의 일정 같은 건 내 달력에 없다. 그저 죽을 때까지,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 일을 하는 것 뿐이다”

■ 손혜원은

1977년 홍익대 미대 응용미술과 졸업. 1981년 홍익대 미술대학원 졸업. 전 홍익대 교수 역임. 현 크로스포인트 대표. 현 VIDAK 수석부회장. 현 서울디자인센터 이사. 저서 <브랜드와 디자인의 힘(2006)> ‘참眞이슬露’,‘종가집 김치’,‘트롬’,‘미녀는 석류를 좋아해’,‘하늘보리’‘레종’,‘사랑초’,‘엑스캔버스’등 브랜드 히트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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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