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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프로듀서 이유리' 승부사 기질로 무장한 흥행 보증수표
'오구' '태풍' '페퍼민트' '겨울연가' 등 수많은 히트작 낸 여성 프로듀서 1호





뮤지컬 '태풍'


뮤지컬 '페퍼민트'

뮤지컬 관련 기사를 보면 꼭 이 사람의 조언을 볼 수 있다. 20년간 연극과 뮤지컬 프로듀서로 살아온 국내 ‘여성 프로듀서 1호’ 청강문화산업대 뮤지컬 학과의 이유리(42) 교수다. 이 교수는 강단과 공연 현장을 오가며 뮤지컬을 프로듀싱하고 뮤지컬에 관한한 작품성, 완성도는 물론 성패요인과 뮤지컬 산업분석까지 한다. 뮤지컬은 그에게 삶 자체다.

■ 여성 프로듀서로 산다는 것

뮤지컬 프로듀서는 공연 기획과 투자, 배우 섭외부터 홍보와 티켓판매까지 공연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직업이다.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지만 성공했을 때의 ‘열매’는 그만큼 달다. 창작 공연의 경우 라이선스 권도 프로듀서가 가진다.

이유리 교수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대학 졸업 후 극단 ‘연희단 거리패’ 창단멤버로 공연계에 발을 들인 그는 이윤택 연출의 작품 <히바쿠샤>와 <오해> 등에 출연했다. 그는 “연기를 하기에는 자의식이 너무 강했다”고 말했다.

“배우는 기질적으로 안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윤택 선생님의 조연출을 거쳐 선택한 다음 직업이 기획이었어요. 방송국에서 기획을 하다 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와 만나 본격적인 기획자의 삶을 시작했죠.”

동숭아트센터 기획부장을 거쳐 공연기획사 ‘컬티즌’의 대표를 맡으며 연극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오구> <어머니> 등을 프로듀싱했고 98년 서울예술단 기획위원을 하는 동안 창작 뮤지컬 <바리-잊혀진 자장가>를 만들었다.

이후 <태풍> <페퍼민트> 등이 성공하며 이름을 알렸고 뮤지컬 <겨울연가>로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 공연계에서 그가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강부자, 나문희, 이혜영, 전도연 등 이름난 스타들을 무대에 세우는 타고난 마케팅 감각도 발휘했다. 가수 바다를 뮤지컬 배우로 데뷔시킨 것도 이 교수다.

“후배들에게 프로듀서의 가장 큰 능력은 설득력이라고 하죠. 일단 머릿속의 작품을 현실화하기 위해 투자자를 설득해야 합니다. 투자를 받으면 크리에이터를 설득하고, 배우를 설득해 섭외하고, 스텝을 설득하고 협찬사를 설득하죠. 홍보를 위해서는 다시 언론사를 설득합니다. 최종적으로 관객을 설득해야 성공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이유리 교수가 두드러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성 프로듀서 1호라는 점이다. 이 교수는 뮤지컬 관련 전문가 명단에서 보게 되는 유일한 여성 전문가다. 이 교수는 “여성 프로듀서로 활동한다는 게 어느 단계가 오면 한계가 없을 줄 생각했는데 분명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회를 가도 여자는 저 혼자에요. 뮤지컬 시상식 집행위원 회의를 가도 여자는 저 혼자죠. 공연기획은 여성인력이 많은데 여성프로듀서는 흔치 않아요. 제작자, 프로듀서는 남성중심의 비즈니스 하는 ‘흥행 사업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앞으로 시장이 확대되면서 산업이 체계화되면 여성 프로듀서가 많이 생길거라 생각합니다.”

■ 뮤지컬은 쇼 비즈니스

성공한 프로듀서 이유리 씨는 2004년 청강문화산업대학 뮤지컬과 학과장으로 부임했다. 2005년 <겨울연가> 이후 그의 활동이 뜸 한 것은 이 때문. 학과장으로 부임한 후 그는 뮤지컬과와 무대미술과의 커리큘럼을 만들고 변희석, 송용태, 성재준 등 공연계 대가들을 교수진으로 섭외했다.

학교 이야기가 나오자 말이 빨라진다. 그는 미니홈피에 올려진 제자들의 사진 밑에 ‘내 자식들’이라고 써놓을 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학과를 만든다는 매력에 강단에 서게 됐죠. 100% 현장 활동가가 교수진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시설도 어느 극단 못지않아요. 무대 미술과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할 정도의 시스템을 갖춰놓았습니다.”

학교에서 그는 극단과 똑같은 형식으로 학생들을 훈련시킨다.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고 집단체제로 공연을 만들어 실제 무대에 올린다. 기획을 배우는 학생들은 협찬서 양식부터 티켓 판매 방식까지 세세한 부분을 모두 교육받는다.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인력을 만드는 게 그의 목표다.

“우리 아이들이 현장에서 ‘일 잘 한다’는 칭찬 받을 때가 제일 보람되죠. 제가 창작 뮤지컬을 전문적으로 만들다 보니까 학생들도 창작뮤지컬에 대한 의식이 상당히 강해요. 앞으로 졸업생을 중심으로 프로덕션을 꾸릴 생각입니다. 전략적으로 연출가, 안무가, 배우를 키우고 있어요.”

이 교수는 급성장하는 뮤지컬이 공연 시장을 넓히는 일등 공신임에도 연극의 하위 개념으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내 뮤지컬만이 연극적인 방식으로 제작돼왔고 연극의 파생장르처럼 인식돼있다고. 그는 연극과 뮤지컬 시장의 차이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소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지는 연극과 달리, 뮤지컬은 브로드웨이, 웨스트앤드 두 개 시장으로 구성돼 전 세계 사람들이 뮤지컬을 보기 위해서 이 도시에 모여드는 독특한 구조로 운영된다.

뮤지컬 작품 하나가 한 도시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쇼 비즈니스로 인식된 것은 2002년 <오페라의 유령> 장기공연이 성공하면서 부터다. 1966년 <살짜기 옵서예>로 시작된 국내 뮤지컬이 장르형태의 공연예술로 인정받은 것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뮤지컬은 태생이 ‘상업 대중예술’이에요. 오페라에 대항하는 중산층의 오락이 노래와 춤을 혼합한 버라이어티 쇼였고 이것이 뮤지컬의 전신입니다. 뮤지컬을 연극처럼 만들기보다 오락성을 갖춘 대중예술로 받아들여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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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08/04/30 11:09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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