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수학자들 학문 발전속도 놀랍다"과학기술한림원 회원가입 기념 초청 강연회서 열변

“수학에서의 ‘증명’이란 수학의 영혼 또는 심장과 같습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 메달(Fields Medal) 수상자 에핌 젤마노프(Efim Zelmanov) 교수가 지난 10일 한국 강단에 섰다.

고등과학원에서 열린 이날 강연은 그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외국인회원 가입을 기념해 마련된 초청석학강연.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국내외 저명 학자들로 구성된 한국 최고 권위의 학술기관으로, 가입된 외국인회원 중 과반수가 노벨상 수상자들이다.

국내 학계로서도 못지않게 감회어린 이날 강연에서 젤마노프 교수는 ‘현대 수학과 사회’라는 주제로 열강을 펼쳐 참석자들로부터 ‘역시 대가답다’는 반응과 갈채를 받았다. 한국 학계의 명실상부한 ‘안 식구’로서 펼친 첫 행사다.

젤마노프 교수는 러시아 태생으로 군론(群論) 분야에서 천재적인 연구업적을 달성, 39세때인 1994년 스위스 국제수학자총회(ICM)에서 필즈상을 수상해 세계의 주목과 선망을 받은 주인공이다. 전 옥스퍼드대, 예일대 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미국 UC 샌디에이고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 한국에도 1년에 약 1~2개월씩 체류․ 왕래하며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에 대한 젤마노프 교수의 애정과 인연은 특히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여년전 고등과학원 개원과 함께 석학교수로 초빙돼 첫 인연을 맺은 그는 현재 대한수학회가 추진중인 2014년 ICM 한국 유치를 위해서도 전방위로 활약, 대회유치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쏟아왔다.

그는 “지난 10여년간 지켜봐 온 한국 수학자들의 성장수준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놀랍다”고 평가, 지난해 국제수학연맹(IMU)이 한국의 국가등급을 2단계 상향했다는 호보가 전해진 당시에도 “한국 수학계의 발전수준에 비하면 오히려 (등급상향조정이) 뒤늦은 감이 있다”며 한국수학계에 대한 남다른 신뢰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그의 이번 한림원 입성은 특히 ICM의 한국 유치 가능성 측면에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ICM은 전세계 수학자들이 총결집하는 국제 최대 규모의 학술대회로, 이를 국내에 유치할 경우 한국학계의 세계적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향후 국가간 공동연구 등 학문적 성과에도 지대한 상승효과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5월로 다가온 최종 결정을 앞두고 젤마노프 교수의 행보 또한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수학을 비롯, 기초과학의 소외라는 현재 한국내 분위기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시, “예로부터 학문을 존중해 온 한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살아나기를 바란다”며 그는 이를 위한 국민적 관심과 정부 차원의 적극적 지원을 강조했다.

이번 석학강연에서 해박한 지식과 위트있는 강연으로 청중을 사로잡은 젤마노프 교수는 수학의 두 축이라 할 예술과 실용적인 부분을 현대 수학의 형성과정과 사회적 측면에서 새롭게 조명,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강연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화제를 만발. “수학이 예술과 같다면 아름다움을 수학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라는 한 참석자의 돌발질문에 특유의 명쾌한 화법을 구사해 회자되기도 한다.

“학창시절 수학자 소볼레프(Sobolev)로부터 하마는 정의가 필요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답변의 운을 뗀 그는 “동물원에 가보면 하마가 하마인 것을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 것. 젤마노프 교수는 강연이 끝난 며칠 후인 15일에 출국, 올 여름중 다시 내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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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기자 pinplu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