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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파크 이상규 대표, 사업초기 모진 바람 뚫고 죽순처럼 일취월장
"온라인 쇼핑몰은 대세" 확신 갖고 뛰어들어
10년 만에 3,700배 매출 성장 이끌어





인터파크는 누가 뭐래도 인터넷 쇼핑몰의 지존이다. 중원을 평정했다. 필자는 책이나 공연티켓을 살 때 이용하는 정도지만, 주변 젊은이들 중에는 웬만한 물건은 모조리 인터파크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들은 “거기에 가면 다 있어요. 다 배달해줘요”라며 인터파크 찬양을 한다.

또 이런 얘기도 숱하게 들었다. 예전에는 몇몇 업체가 경쟁을 했지만 이미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인터넷 쇼핑몰 업계에서는 인터파크가 일정 지분을 갖고 있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연유로 이런 회사를 만든 것일까?

서울 강남역 근처 인터파크 본사에서 이상규(42) 대표를 만나는 순간 줄리아노(줄리앙) 석고상이 연상됐다. 화려한 헤어스타일, 우뚝 솟은 콧대, 차분한 눈빛을 가진 조각상으로 미켈란젤로 작품이다. 이 대표는 관상이 범상치 않았다. 안광이 형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베토벤 같은 헤어스타일도 인상적이었다. 청바지와 캐주얼한 재킷 차림이 대학교 복학생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가볍지 않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는 아주 진중했다. 공력이 느껴졌다. 이 정도 회사를 만들고 운영하려면 그만한 공력과 카리스마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파크를 보면 대나무 순이 떠오른다. 대나무 순은 몇 년간 거의 자라지 않는다. 그러다 수 년이 지난 어느 날부터 갑자기 키가 엄청나게 커진다. 인터파크가 그렇다. 이 회사는 출범 후 계속 성장했지만 적자를 냈다. 업종 성격상 단기간에 흑자를 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경쟁자도 워낙 많았다. 그러다 재작년부터 갑자기 회사 사정이 좋아졌다.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고 인지도가 높아진 가운데 경쟁자들마저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7년 창업 당시 연간 거래액은 2억6,500만원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1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다. 무려 3,700배나 성장했다. 게다가 자회사인 G마켓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지금은 배보다 배꼽이 커진 상태로 G마켓의 매출규모는 인터파크의 6배를 넘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그에게 성공의 정의를 물었다.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를 가졌는가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 나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지요.” 그래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그는 지체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구구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필자는 그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에게 팔자가 있듯이 기업에도 팔자가 있는 것 같다. 아니, 때가 중요하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인터파크는 1996년 데이콤 사내 벤처로 시작했다. 현재 회장으로 있는 이기형 대표가 시작했고, 1년 후 독립법인이 되면서 이상규 대표가 합류했다. 사업의 성공 여부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프라인에서 백화점과 할인점이 되는데 온라인에서 쇼핑몰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무조건 이 사업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이 시장에 깃발을 꽂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초기에 회사를 알리고 띄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무렵 터진 외환위기로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겨 고전했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옥션과 이베이는 초기에 적극적인 자본유입으로 선발주자가 누릴 수 있는 선점효과의 재미를 톡톡히 볼 수 있었다.



가장 중요했던 의사결정 순간과 위기에 대해 질문을 했다. 그의 답이다. “이 사업은 초기 선점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자본 조달이 결정적입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때문에 투자하기로 했던 회사들이 모두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또 모기업인 데이콤도 구조조정을 시작했는데 사내 벤처인 저희 회사가 정리대상 ‘0순위’가 된 겁니다. 참 갑갑하더군요. 뭔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고민 끝에 인터파크를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돈은 전혀 없었지요. 모기업에 70%의 지분을 팔라고 했습니다. 여기저기 있는 대로 돈을 꾸었습니다. 그러고도 모자라는 금액은 ‘몇 년 거치, 몇 년 분할상환’ 식으로 조달했습니다. 이런 위험한 결정을 한 것은 인터파크의 미래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렵지만 분명 이 사업은 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아주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그때가 바로 최대의 위기였다고 고백한다. “아무 자본 없이 사업을 꾸리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98년 초가 되자 남은 돈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판매액은 몇 십만 원밖에 안 되지요, 방문객은 적지요, 돈은 필요하지요. 돈 되는 일은 무조건 했습니다. SI(시스템통합) 영업도 열심히 했습니다. 투자자를 100명 넘게 만났는데 사채업자까지 만났습니다. 미래에 대한 확신은 분명했지만 하루하루 현실을 버티기가 너무 힘들더군요. 직원들 급여도 1년간 50%밖에 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꾸준한 성장 덕분에 99년 2월 투자를 받고 그 해 7월 상장을 하면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인터파크는 작년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너무 많은 곳에 에너지를 썼기 때문이다. 신규사업 진출을 위해 다양한 투자를 시도했는데 기대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물론 인터파크 쇼핑, 도서, 투어, ENT는 꾸준한 성장을 했다. 그의 말이다. “작년에는 너무 과욕을 부렸던 것 같습니다. 젊은 패기만 믿고 신규사업 투자를 너무 많이 벌렸습니다. 게임, 식료품을 파는 마트, 교육을 위한 토크빈에도 진출했는데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내실을 다져나갈 예정입니다.”

이 대표는 가치지향적인 인물이다. 무엇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무조건 회사를 키우는 것 보다는 좋은 회사, 위대한 회사, 무언가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한다. 투명성과 사회적 공헌은 회사를 운영하는 주요 덕목 중 하나이다. 느티나무도서관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처음 (경기 용인) 수지에 이사를 왔는데 황량한 공사판밖에 없더군요. 마침 남는 돈이 조금 있어 도서관을 만들기로 정했습니다. 집사람이 도서관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래서 최초의 사립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습니다. 마을마다 도서관을 만들어 지원하고 도서관과 기업을 연결하는 일도 합니다. 도서관은 돈은 안 되고 돈만 먹는 하마입니다. 하지만 계속 하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조그만 사회적 기여이거든요.”

인터파크는 이기형 회장과 이상규 대표가 기업가 정신을 갖고 만들어온 회사이다. 이런 기업가 정신이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개인을 건강하게 한다. 인터파크가 이 대표의 바람처럼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입력시간 : 2008/05/0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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