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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조 그래피티 아티스트 JNJ CREW, 그리고 마이어홀츠
문화혁명가-내일을 꿈꾸는 비주류들
회색 도시 담벼락에 '표정'을 불어넣다
JNJ CREW: '도둑그림'으로 시작해 국내 대표적인 그래피티 전도사로 도약
마이어홀츠: 유명한 한국계 독일인 아티스트, '서울 메이츠' 작업으로 인연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JNJ CREW 멤버 임동주(왼쪽)와 유인준/ 포토그래퍼 야옹이(왼)
크리스티안 마이어홀츠/ 포토그래퍼 김정욱(오른)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 1. 거리낙서에서 제3의 예술장르로

어느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 지하철 도림천역. 스프레이통을 든 청년 10여명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비뚤어진 모자, 해골 모양의 액세서리, 어딘지 모르게 불량해 보이는 청년들은 약속 장소에 모이자 콘셉트를 정하고 각자 알맞은 캔버스를 찾아 영역표시를 하기 시작한다. 이들에게 캔버스는, 벽이다. 스프레이로 벽에 낙서를 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Graffiti Artist)이기 때문이다.

‘벽에 긁어서 그린 그림’이란 뜻의 그래피티는 1970년경 뉴욕 슬럼가 소외계층이 사회적 불만을 드러내는 데 처음 쓰였다. 건물벽, 담벼락, 지하철, 열차 등에 거침없이 색색의 스프레이를 뿌려대며 시작한 ‘거리낙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후 그래피티 아트는 길거리 문화의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으며 기성의 예술 표현을 뒤집는 새로운 문화로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다.

도림천역에 모인 ‘스프레이로 낙서를 즐기는 청년들’에게 세상의 벽은 자유로운 영혼을 표현하기 좋은 캔버스였다. 그래피티 작업을 할 때는 이름 석자를 과감히 버리고 닉네임인 태그 이름(표식)만 남긴 채 홀연히 자취를 감추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삶은 무척 스릴 있을 것 같았다. 허락되지 않은 벽에 몰래 그림을 그리는 공격성까지도 말이다. 해질녘이 되자 을씨년스럽던 벽은 형형색색 빛깔로 빚어낸 또 하나의 예술공간이 되었다. 스프레이 하나로 요술을 부린 셈이다.

현재 국내서 그래피티가 합법화된 곳은 부산대학교 앞 온천천 주변의 벽이 유일하다. 하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 사이에 작업하기 좋은 장소로 알려진 곳은 서울 압구정동의 토끼굴과 신도림의 도림천역이다. 또한 부산 원종동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가장 많이 몰려와 작업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피티의 시초가 거리낙서와 저항정신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요즘은 ‘도둑그림’을 그리고 도망치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업이나 방송, 가수들의 앨범재킷 등에 작업을 하거나 신발, 스노우보드, 티셔츠 디자인 제작 등에 참여해 아트 상품으로 발전시키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한 그래피티 아트는 페스티벌이나 콘서트 현장에서도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으며, 대학가나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한 장소에서는 그래피티 아트로 건물을 꾸미는 곳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피티 아트는 비보이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함께 주목받기 시작해 톡톡 튀는 발랄함과 역동성으로 기성문화를 빛내주는 ‘소스’ 역할을 충분히 해내는 중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활동하기에 제약이 많은 나라다. 무엇보다 작업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장소가 거의 없어 아티스트 숫자도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그래피티용 스프레이가 따로 생산되지 않아 저렴하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공업용 스프레이를 많이 쓰는 편이다. 반면 미국이나 유럽은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많아 곳곳에 합법적인 작업 지역이 마련돼 있다. 게다가 그래피티용 스프레이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외국에 비해 악조건이지만 국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작품을 계속 탄생시키고 있다. 알파벳이나 정체불명의 외국인 캐릭터 대신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그려 넣거나 한국적인 캐릭터를 그리는 아티스트들도 늘고 있다. 이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도 한국적인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그래피티 작업 도중 멤버들이 재미있는 포즈를 취했다/포토그래퍼 김정욱(왼)
그래피티 작업 현장/포토그래퍼 김정욱(오른)


■ 2. 힙합과 그림으로 의기투합한 단짝 듀오

‘JNJ CREW’의 유인준(30), 임동주(30) 씨가 본격적으로 팀을 이뤄 활동한 것은 2001년부터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래피티 세계를 알게 된 임동주 씨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 도둑그림을 그려가며 그래피티 작업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광고디자인을 전공한 유인준 씨도 힙합문화에 눈뜬 지 오래였다. 둘의 만남은 군대에서 시작됐다.

뒤늦게 군에 입대한 유 씨는 동갑내기 선임병을 만났다. 그가 바로 임 씨였다. “취미가 뭐냐”는 선임병의 질문에 유 씨는 “힙합과 그림”이라고 말했다. 그 때 임 씨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 후 둘은 무료한 군생활을 그래피티 아트로 이겨나갈 수 있었다. 군인이 총을 들고 서 있는 선전벽화 작업이 군에서 그린 그림의 대부분이었지만 코드가 통하는 벗이 있어 기뻤다.

제대 후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팀을 결성했다. 처음엔 도둑그림으로 기초를 다졌다. 하지만 둘은 거리예술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음악 캠프’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 방송 프로그램의 무대 그래피티를 그리며 활동무대를 넓히기 시작했다. 힙합 가수나 래퍼, 서태지나 윤도현 등 유명가수의 음반 재킷 작업에도 참여했다.

올해 초에는 ‘벽을 파괴하고 캔버스로 탈바꿈한다’는 의미의 ‘TWD(The Wall Destroyer)展’이란 그래피티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길거리 문화였던 그래피티 아트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온 셈이었다.

그래피티 아트가 캔버스로 옮겨지는 작업은 외국에선 일반적인 전시 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들은 마치 그래피티 문화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전도사 같았다.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거리예술에 매력을 느끼겠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벽’으로부터의 해방은 이들에게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다. 모자, 신발, 보드, 티셔츠 등 각종 오브제를 활용해 그래피티로 표현하는 일은 그래피티 아트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예술 세계였다.

현재 JNJ CREW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인 ‘헬로우 키티’ 탄생 30주년을 맞이해 63빌딩 스카이아트에서 진행 중인 ‘Kitty S. Exhibition Seoul’에도 참여하고 있다.

거리예술이 건물 안으로 들어와 대중과 좀 더 가까워지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은 JNJ CREW의 오랜 바람이다. 하지만 그래피티 아트를 예술 장르로 인정할 수 있느냐를 놓고 고민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건 낙서고 저건 예술이다, 이런 식의 구분법은 잘 모르겠어요. 꼭 예술로만 보이고 싶지는 않아요. 단지 보는 이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이니까요.”(유인준)

“검증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그래피티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우리의 과제 아닐까요? 형식과 틀을 깨는 예술 행위의 출현이 기존 예술 장르에게 환영을 받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안정 속에 멈춰 있는 안일한 행위는 예술가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임동주)

“우린 단지 지루함이 조금 덜어지는 세상을 위해 그림을 그릴 뿐”이라는 두 사람. 하지만 그들의 솔직한 꿈은 “그래피티 아트가 기성예술을 뒤집는 제3의 예술장르가 되는 것”이다.

■ 3. 내 이름은 이윤성, 그래피티로 자유 얻어

크리스티안 마이어홀츠(27). 한국 이름은 이윤성, 예명은 모기(MOGI)다. 독일에서 온 마이어홀츠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한국에 온 이유는 JNJ CREW와 함께 두 달 동안 진행하는 ‘서울 메이츠 2008(seoulmates)’ 프로젝트를 위해서다. 서울과 소울 메이트(soul mate)를 합쳐 지은 서울 메이츠. 마이어홀츠에게 서울은 또 다른 소울 메이트나 다름없다.

서울과 부산, 특히 홍익대 일대에서 JNJ CREW와 마이어홀츠는 다양한 작업을 남겼다. 한국 전통의 그래피티와 서구의 그래피티가 만나 충돌하고 융합되는 과정을 보여주자는 것이 이번 서울 메이츠 프로젝트의 테마이다. 서울 메이츠의 모든 작업은 독일과 프랑스의 예술채널 아르테(Arte)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한국말이 서툰 마이어홀츠와 영어가 서툰 JNJ CREW는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소통했다. 하지만 언어는 그들에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감정을 표현하고 생각을 나누는 데는 그래피티 하나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JNJ CREW를 먼저 발견한 건 마이어홀츠였다. 그는 독일에서 열린 각종 전시회와 유럽 각지의 그래피티 워크숍 등에 초청되는 인기 그래피티 아티스트다. 2년 전 한국 작가들과 교류하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 JNJ CREW의 그래피티 작업을 접하게 되었다. 서로 통할 것 같은 느낌에 마이어홀츠는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독일에서 서울을 알리는 ‘서울 메이츠’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에 JNJ CREW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3주 동안 독일 도시들을 순회하며 ‘서울 메이츠 2007’ 프로젝트를 탄생시켰다. 모든 일정이 끝났지만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셋은 즉흥적인 사건을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서 일주일 동안 그래피티 여행을 하자는 것이었다. 이 여행은 국경과 언어의 벽을 거뜬히 뛰어넘어 진정한 소울 메이트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마이어홀츠가 그래피티를 시작한 이유는 정체성 찾기에서 비롯되었다. 혼혈로 태어난 그는 독일에서나 한국에서나 늘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그래피티를 할 때만큼은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의 그림에는 ‘이중성’을 담아낸 것들이 많다. 성장하면서 느낀 정체성 혼란이 투영된 탓이다.

서울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독일로 떠난 마이어홀츠, 아니 이윤성에게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낯선 나라가 아니다. 소울 메이트와 함께 아이처럼 순수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마음 속의 ‘그래피티 유토피아’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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