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연출가 김병화, 음악감독 서주은창작뮤지컬 '시간에'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2관왕 차지 영광로맨틱 코미디가 주류 이루는 기존 뮤지컬 시장에새바람 불러와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대형 제작사에서 만든 수십억 원 규모의 작품을 제치고, 가진 건 젊음과 열정뿐인 소규모 창작집단의 뮤지컬이 거대한 힘을 발휘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최우수 창작뮤지컬상과 여우주연상 등 2관왕의 영광을 차지한 극단 ‘뮤지컬 스토리’의 이야기다. 그들의 작품 <시간에>가 불려지는 순간, 모두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고 동시에 창작인으로서 희망을 찾았다.

창작뮤지컬 <시간에>가 막을 내린 지금 공연계는 젊은 창작인 김병화(30) 씨를 두고 기적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극단 ‘뮤지컬 스토리’의 대표이자 연출가 겸 프로듀서다. 첫 데뷔작인 뮤지컬 <시간에> 대본과 가사를 직접 쓴 그는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1인 다역을 소화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로맨틱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뮤지컬 시장에서 <시간에>는 기존 창작뮤지컬의 한계에 도전한 작품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상상해보았을 법한 ‘시간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시간에>는 마치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극 초반에서는 강렬한 사건과 빠른 전개로 관객의 호흡을 한치도 놓지 않는 긴박감이 있었다. 흔치 않은 소재인 데다 탄탄한 플롯을 갖춘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연결된 멜로디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뤄 한편의 완성도 높은 뮤지컬을 만들어냈다.

대학로 인켈아트홀에서 연장공연을 할 때까지 제대로 된 홍보도 없이 관객 입소문 하나로 객석 점유율 90% 이상을 이뤄낸 작품 <시간에>.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한 듯한, 무대 구성과 연출력이 뛰어난 작품”(adsl7510님), “보석을 주운 느낌의 작품”(ijustice님) 등의 관객 소감이 인터넷에 올라온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한편의 뮤지컬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호주머니를 털어 제작비를 대고 자투리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헝그리 정신으로 2년을 버텨낸 젊은 창작인의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누구나 마음 속으로 갈구하는 기적, 바로 성공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 연습할 때 바닥 적실 만큼 땀 흘려

“땀으로 바닥에 물이 고이는 걸 보신 적 있으세요?” 김 씨는 <시간에>란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아직 제작사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뮤지컬 스토리’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창작지원작에 공모하기 위해 만든 창작집단이다. 김 씨는 대표는 물론 연출, 프로듀서, 극작가 역할까지 맡았다.

‘세상 이야기를 무대를 빌려 뮤지컬로 다시 들려주겠다’는 의미로 만든 ‘뮤지컬 스토리’는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뽑았다. 그 중엔 탤런트 박형준 등 이름이 알려진 배우들도 몇몇 있었다. 노 개런티에 어쩌면 의리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는 열정을 가진 배우들이 그렇게 ‘뮤지컬 스토리’라는 작은 배에 올라탔다.

지난 6월 처음 닻을 올리기 위한 연습시간. 어렵게 구한 지하 연습실은 그나마 있던 에어컨마저 고장난 상태였다. 어느새 거울과 바닥엔 서서히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땀이었다. 연습실은 마치 샤워를 하고 난 욕실 같았다. 연습이 끝나면 배우들은 모두 탈진상태가 되었다. 연습 도중 토스트를 먹다가 흐느껴 운 적도 있었다.

“단지 우린, 하고 싶은 걸 하고 살려는 건데 뭐가 이렇게 힘이 드냐”며 투정도 했다. “먹어도 먹어도 왜 항상 배가 고픈 거냐”며 소리쳐 보기도 했다. 배우와 연출가, 스태프의 나이는 모두 29, 30세였다. 평균 나이 29.5세의 그들은 그날 부둥켜 안고 젊음을 노래했다. 아니,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안정된 기획사에서 공연을 했던 배우들은 열악한 제작환경에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이 멀지 않았다며 어른처럼 토닥여 주는 배우들이 있었다. 배우들은 연출가인 선장이 무사히 순항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든든한 투자자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 <시간에>는 이렇다 할 홍보 없이 첫 공연을 제외하곤 거의 매진행렬을 기록했다.

'시간에' 출연 남녀 배우, 공연 장면

■ 반바지, 티셔츠 차림으로 레드카펫 밟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의 첫 공연은 잊을 수가 없다. 마치 투자자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기분이었다. 이미 창작지원작 2위로 지원금을 받은 상태였지만 워낙 실력이 쟁쟁한 팀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에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중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무대화한 작품이자 창작지원작 1위를 차지했던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은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게다가 이미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은 <소리도둑>이나 <오디션>, <만화방 미숙이>등 만만찮은 경쟁작도 다수였다.

김 씨는 혼자만 만족하는 공연이 될까봐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관객 반응이 좋은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우리 주제음악을 흥얼거리지 않느냐”며 오히려 위로해주었다.

페스티벌 마지막 날, 시상식이 있었다. 그는 혼자 대구로 내려가던 참이었다. 수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단지 뮤지컬 관계자들에게 인사나 하며 인맥을 다져놓자고 생각하던 터였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죠. 여배우들이 시상식장에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전화였어요.” 연출가를 위로해주던 여배우 3인방은 공연이 끝나고 홀연히 국토 대장정 배낭여행을 떠난 상태였다. 김 씨는 여배우들을 급하게 호출했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시커멓게 타고 반바지에 티셔츠, 밀집모자도 모자라 허리에 전대를 차고 목에 수건까지 둘러맨 여배우들은 그렇게 레드카펫을 밟았다.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 사이에서 여배우 3인방은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했다. 생애 첫 레드카펫을 누구보다 코믹하게 장식한 3인방 중 극중 ‘이팔자’ 역을 소화한 윤수미 씨가 여우주연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윤 씨는 <넌센스>나 <헤어스프레이>에서 연기를 인정 받은 신인이지만 여우주연상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상식이 끝나고 안도의 한숨을 쉬던 차에 최우수 작품상에 <시간에>가 호명된 것이다. 기적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시간이 멈춰진 장면을 여러 번 보았는데 제가 경험할 줄은 몰랐어요. 초라한 의상 때문에 조용히 앉아 있던 여배우들은 작품상이 거론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눈물을 흘리더군요. 모든 순간이 슬로모션 영상처럼 기억되네요. 어떻게 시상식 무대까지 걸어갔는지 기억 나지도 않지만요.”

“관객 몇 명 앉혀 놓고 하는 게 무슨 연극이냐. 당장 때려치워라”던 아버지에게 그때만큼은 아들의 꿈을 당당히 이야기하고 싶었다. 멀게만 보이던 별이 그의 손 안에 살포시 앉은 순간이었다.

■ 스물아홉 살 불안감에서 작품 착상

<시간에>로 독립하기 전 김 씨는 <난타>, <대장금>을 만든 PMC프로덕션의 연출부 소속이었다. 창작뮤지컬 <달고나>와 <뮤직인마이하트>에서 조연출이었던 그는 서른이 되기 전 무언가 이루고 싶은 조급한 마음에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었다.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시간에>는 바로 스물아홉 살의 불안함이 만든 작품이에요. 2007년 1월 첫 주, 눈 내리던 밤 이런 상상을 해보았죠. 만약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그때부터 뮤지컬을 시작했다면 지금쯤 난 달라지지 않았을까? 두렵고 불안한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면서 저는 네 명의 등장인물에게 목표를 주고 그들끼리 살아가게 만들었죠.”

그는 주인공들을 일부러라도 치열하게 살아가게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작품 속 주인공들이 그가 안고 있던 불안함에 답을 안겨주었다. “지금부터 이 시간에 열심히 살아! 돌아간다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요(웃음).”

<시간에>와 함께 스물아홉 살을 잘 버텨 지금 서른 살이 된 김 씨는 그때처럼 두렵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른 것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시간에>란 어엿한 분신을 탄생시킨 것이다. 게다가 세상으로부터 인정도 받아냈다. 내년 1월부터 대구에서 앙코르 공연을 열도록 초대도 받았다. 아쉬운 건 연말에 서울 공연을 올릴 무대가 없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지금 퓨전 뮤지컬을 준비 중이다. 먼저 10분짜리 뮤지컬로 만들어 쇼케이스를 거쳐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다. “시대적 배경은 조선이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물건들은 현재의 것이죠. 남산에 마이크 한 개가 놓이고, 뉴스에서 신문고 제도의 부활을 알리면서 극이 시작됩니다.(웃음)”

‘뮤지컬 스토리’란 창작집단 이름처럼 세상 이야기를 보고 듣고 느껴서 자신만의 작품으로 무대에 표현하는 것, 그리고 관객에게 먼저 인정 받는 것이 그의 ‘가까운 꿈’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작품을 지금보다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극장도, 탄탄한 제작사도 만들어질 것 아니겠냐며 여유롭게 말한다. 김 씨는 “탄탄하고 완성도 높은 ‘웰 메이드 뮤지컬’로 공연계에 승부수를 던지는 연출가로 기억되고 싶다”며 수줍게 소망을 이야기했다.

■ 동갑내기와 작업하기

“병화가 뮤지컬 잘 되면 저에게 차를 한 대 사주겠다고 약속한 걸요.” 명랑한 웃음이 매력적인 음악감독 서주은(30) 씨는 <시간에>를 ‘웰 메이드 뮤지컬’로 탄생시킨 주역 중 하나다. <시간에>를 보고 난 관객들은 입을 모아 노래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물론 가사는 김병화 씨가 1년이란 시간 동안 전략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재기발랄한 감성을 끌어내고 음악적인 완성도를 이뤄낸 데는 음악감독의 공도 컸다.

그녀는 김병화 씨와 서른 살 동갑내기 절친한 친구이다. 둘의 만남은 창작 뮤지컬 <살인사건>과 <뮤직인마이하트> 때부터다. 그땐 각자 신분이 조연출과 음악 조감독이었다.

매일 서로 ‘갈구는(?)’ 사이였지만, 꿈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진지했다. 김 씨는 영화, 드라마, 공연, 뮤지컬을 만드는 제작사를 크게 운영하는 것이 꿈이었고, 서 씨는 끼 많은 배우들을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다스리는 겸손하며 능력 있는 음악감독으로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다.

출발이 같아서일까. 둘은 누구보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아봤다. “<시간에> 음악감독이 되어줄 수 있느냐”는 김 씨의 제안에 서 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개런티 없는 제안이었고 고생길도 뻔했다.

김 씨가 사비를 털어 제작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창작지원금으로 받은 지원금 4,000만 원은 공연 한 편을 올리기엔 터무니없이 작은 돈이란 걸 서 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더 기다리면 투자자가 확실한 대형기획사의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데뷔할 수도 있었다.

“우정의 힘이 컸어요. 혼자 대본 쓰고 연출, 프로듀서를 맡아야 하는 병화에게 친구로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둘은 매일 싸웠다. 연출가와 음악감독이기 전에 친구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작품을 위해 싸우는 듯했으나 나중엔 ‘기싸움’으로까지 발전했다.

■ 우정의 힘으로 수 차례 고비 넘겨

“병화는 음악감독이 해야 할 세세한 부분까지 관여를 했어요. 서울 공연을 앞두고 편곡과정을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과정에서 멜로디나 편곡에 들어갈 악기 하나까지 연출가가 개입하는 거예요. 그 동안 쌓인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린 거죠. 결국 서로 하지 말아야 될 말까지 하고 말았어요.”

서 씨가 울면서 연습실을 뛰쳐나가자 모두들 긴장했다. 완벽주의자 연출가와 고집 센 음악감독과의 싸움에 배우나 스태프들은 공연이 중도에 엎어지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다음날이면 둘은 아무렇지도 않게 연습실에 나타나곤 했다.

감동적인 일도 있었다. 친구이자 동료 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다. 김병화 씨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세세한 구석도 있었다. “연습을 끝내고 인사하고 집에 가려는데 병화가 뒤에서 ‘가방 열어봐!’라고 소리치는 거예요. ‘알았어’라고 대답하고 가방을 열어봤더니 봉투가 들어 있더라고요.”

김 씨는 노란 꽃무늬 편지지에 직접 펜으로 쓴 우정 어린 편지로 서 씨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약간의 돈’도 한몫 했다. 처음 개런티 없이 시작한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때 김 씨는 ‘싸나이의 약속’을 해버렸다. 공연이 잘 되면 서 씨에게 근사한 차를 한 대 사주겠다고 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좋았고 창작뮤지컬로서 인정도 받았지만, 수익은 크지 않았어요. 그래선지 이젠 ‘그 차가 아니라 다른 차’라며 변명을 하네요.(웃음) 그래도 세심하게 신경 써 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죠.”

서 씨는 자동차 대신 커피나 녹차 등을 ‘무한 리필’로 제공 받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공연 때 이를 악물었어요. 울지 않으려고요. 하지만 기립박수를 받는 순간 ‘다신 얘랑은 공연 같이 안 해’하던 다짐이 와르르 무너지며 ‘우리 앞으로 좋은 파트너가 돼보자’고 말해버렸어요(웃음). 그때 병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싸우기도 했지만 너랑은 마치 한 몸처럼 재미있게 일했다. 다음에 또 같이 하자’라며 씨익 웃더라고요. 그때 눈물이 왈칵 쏟아져버렸어요.”

서 씨는 “언젠가 둘이 함께 하는 작품이 정말로 대박 나서 병화가 멋진 차 한 대 뽑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서 둘도 없는 친구이자 같은 배를 탄 동료로서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갈 탄탄한 미래가 눈앞에 선연히 떠오르는 듯했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