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확신과 인내심으로 자신만의 색깔 확립, 못생긴 발로 입증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이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위해 얼마 전 한국을 찾았습니다.

이번 공연은 강수진이 1994년 내한공연 이후 두 번째 줄리엣이자,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 때문에 사실상 마지막 줄리엣이 되기에 일찌감치 전석매진이 되었습니다(네, 저도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연기는 과연 명불허전, 평단과 관객의 기대를 여지없이 충족시켰다고 전해집니다. 당연합니다. 바로 그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캄머탄처린(Kammertanzerin) 강수진이니까요.

MBC <황금어장>의 ‘무릎팍 도사’ 코너에 나온 강수진은 남편과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풀어냈지만 결국 모든 이야기의 끝에는 발레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지독한 연습과 치밀한 자기관리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었지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종일 연습실에서 자신의 한계와 싸운다는 그녀의 일과는 발레에 대한 ‘투쟁’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인터뷰 때마다 하는 말이지만 그녀의 관심은 발레, 발레, 또 발레뿐입니다.

너무 단조롭기에 반대로 외로운 삶이 아니냐는 반문도 “발레가 너무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요”라는 그녀의 답 앞에서는 속수무책입니다.

발레에 대한 강수진의 남다른 애정을 가까이서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2006년 서울국제무용콩쿠르의 발레 부문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그녀는 콩쿠르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15~18세의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약 2시간 동안 실기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발레스타의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린 학생들의 클래스 지원은 몰려들었고, 나이가 많은 탓에(?) 입장하지 못한 20살 이상의 ‘언니’들도 강의실 밖을 계속 서성거리며 그녀의 동작 하나 하나에 집중하는 모습이 이채로웠습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후배들을 지도하는 강수진의 태도였습니다.

좋은 발레리나지만 교사로서는 초보였던 그녀는 월드스타로서의 권위 대신 발레 동료로서의 친근함으로 학생들과 웃고 대화하며 수업을 이끌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관객에게 손짓으로 말을 걸 듯, 그렇게 그녀는 후배 발레리나들에게도 몸으로 느끼게 하며 자신의 발레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발레리나 강수진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이 17일,18일 이틀 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하기에 앞서, 14일 오후 태평로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학생들의 질문에 강수진은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라고 답했던 것 같습니다.

‘자신만의 색깔’이라는 표현이 잘 와닿지 않는 어린 학생들을 위해 그녀가 추가한 설명은 역시 ‘노력’입니다. 오늘날 그녀를 만들어낸 바로 그것입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하게 노력할 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질 수 있다’는 그녀의 조언은 바로 앞에 보이는 그녀의 못생긴 발로 입증되며 어린 학생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강수진은 테크닉이 뛰어난 발레리나라기보다는 표현력이 뛰어난 발레리나로 더 평가받고 있습니다. ‘최초’, ‘최고’가 난무하는 그녀의 화려한 이력들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보완하려 노력한 지독함의 역사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강수진이 보여주는 춤과 연기는 초보 발레관객도 감동시킬 수 있는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발레를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과 노력이 손끝 하나, 눈빛 하나에 온전히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차원의 예술을 보여준 강수진은 희망을 잃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노력해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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