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정경' 시작으로 2010년까지 3차례 걸쳐 작품세계 집중 조명다큐멘터리·한국의 미 탐구·풍경사진으로 카메라 시선 변화'도시''장미' 등연작… 2009년초부터 본지에 사진에세이 게재 예정

사람과 자본, 첨단의 기술과 문화, 시간의 속도까지도 빨아들이는 가공할 블랙홀.

그러나 사람의 온기만은 사막의 태양처럼 바짝 말려버리는 거대하고 공허한 유기체. 이것은 ‘도시’의 또 다른 표현이다. 편리하고 안락하지만 동시에 잃어가는 우리의 삶의 터전 ‘도시’, 그 양면성에 렌즈의 초점을 맞춰온 이가 있다.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1세대이자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주명덕.

스물 셋에 사진을 시작한 그는 4년 만에 가진 첫 개인전 <홀트씨 고아원>으로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했다. 3년 간의 역작 ‘전쟁 혼혈고아’의 사진이 전시되면서 살롱사진 일색이던 사진계에 다큐멘터리 사진의 포문을 열었고 주요 일간지에서는 이를 ‘사진사에 처음으로 기록될만한 전람회’로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후 ‘인천 차이나타운’ ‘잃어버린 풍경’ ‘한국의 가족’ ‘도시’ 등의 연작을 해왔고 지금도 일부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도시’에 대한 이미지화 작업이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대림미술관에서 세 차례에 걸쳐 주명덕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기획한 <주명덕 사진전>의 첫 번째 주제도 바로 ‘도시’이다.

“도시의 부분 부분을 내 마음 속에서 끄집어 내는 작업이지. 버스 정류장에서 보이는 명품의 광고 사진이라던가, 차를 타고 가면서 보이는 느낌, 걸어가면서 보이는 느낌이 다 다르거든요. 직선의 건물이나 고속도로가 차를 타고 갈 때도 그렇게 보이는 건 아니죠. 차가 흔들리면 피사체도 흔들리게 마련이거든. 그 자체를 기록하고 싶었어요.”

그가 처음 도시를 촬영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강홍빈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이동 전 서울시립대 총장과 함께 ‘도시로서의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이 시초가 됐다. 당시 가까운 일본의 도쿄가 단지 일본 속의 도쿄가 아닌, 세계 속의 ‘도시, 도쿄’로 한창 부각되던 시절이었다. “런던, 뉴욕, 도쿄에 대해 찬사를 보내지만 정작 서울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한 게 아닌가. 우리가 사는 공간, 서울을 그 자체로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였지.”

그렇게 시작된 도시 사진작업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1994년 ‘한국 정도 600주년’을 기념해 국내 사진작가 50명을 모아 서울의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풍경을 담아내기도 했고(한국일보사 발행), 서울시와 공동으로 사진 촬영 포인트까지 지정해가며 ‘서울’을 주제로 ‘도시형태와 경관’에 관한 사진집을 5년 마다 작업해 2005년 세 번째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동네마다 간판도 다르고 네온사인 불빛도 달라요. 인사동의 간판은 여느 동네랑은 또 다른 느낌이거든요. 도시의 느낌을 ‘파인 아트’처럼 담아낸 거지.” 이들 작업 외에 2000년대부터 그가 독자적으로 작업하는 도시프로젝트의 공동작업 멤버는 5명으로 내후년쯤 그 동안의 작업을 한데 모아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그의 사진 속에선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향수어린 센티멘틀리즘은 찾아볼 수 없지만 내심 가지고 있는 안타까움은 끝내 감추지 못한다. “상업주의 이외에는 모두 사라져가는 것 같아요. 1981년에 한 오지마을에 갔었는데, 마을 전체가 너와집이었어요. 그 다음에 몇 해 걸러 한번씩 가면서 보면 하나 둘 사라지더니 이젠 그 자리에 온갖 펜션뿐이야. 하회마을도 많이 변했고.. 또 난 경주사진을 많이 찍었는데, 예전에 보물이라고 지정해 놓은 집이 있었어요. 보물 지정되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찾아가니까 집주인이 집을 두고 나갔지 뭐야. 주인 없는 집은 한달 만 지나면 폐가가 되고 말지. 안타까워요. 그런 모습 볼 때마다.”

인위적으로 조정하거나 의미를 더해내려 할 때마다 존재는 본질은 색이 바래기 마련이다. 사회학자 이효제와 공동작업 했던 ‘한국의 가족’도 그런 경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의 나이 30대 초반까지 ‘월간중앙’의 창간동인으로 활동했던 그는 ‘한국의 이방’ ‘명시의 고향’ ‘명작의 현장’등의 연작을 선보이며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존재들에 대한 정체성을 탐구해왔는데, 그 중 가장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꼽히는 것은 ‘한국의 가족’. 한국인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계층적으로 접근한 작업이다.

3년을 기획해 이효제 교수는 글을 쓰고, 주 작가는 사진을 찍었지만 중앙정보부의 제지로 1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혹자들은 찍어두고 나중에 규제가 완화되면 발표하는 것도 좋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나는 그런 사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기사든 사진이든 그 당시에 찍어서 보여주지 못하면 생명력을 잃고 말지.”

이후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손을 뗀 그는 한동안 자연사진에 몰두했다. 한국의 산과 땅이 어두운 톤으로 보여 ‘검은 풍경’이라 불리는 ‘잃어버린 풍경’ 연작도 그때 탄생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06년은 그가 사진작가로 이름을 알린 지 40주년이 되는 해였다. 경주 아트선재미술관에서는 사진사의 산증인을 위해 6월부터 10월까지 대규모 회고전을 기획했고 ‘다큐멘터리 시기’ ‘한국 미의 탐구’ ‘풍경사진’ 등 크게 세 번에 걸쳐 변화한 그의 ‘카메라 시선’이 한 자리에서 펼쳐졌다.

당시 전시를 한달 여 앞두고 심장수술을 받는 곡절이 있었지만 다행히 경과가 좋아 관람객들은 그가 선정한 40여년간의 역작 700여 편을 만날 수 있었다. 당시 회고전을 앞두고 했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회고전이라고 하지만 난 이제 시작”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진정성을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 이후 새로운 작업은 끊김 없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는 물론이고 내년 봄, 한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촬영 중인 흑백의 ‘장미’ 연작도 그 중 하나다. “절에 자주 다니는데(이를 통해 수많은 사찰사진과 성철스님, 법정스님의 인물사진을 찍어오기도 했다.), 비구니 절에 갈 때는 매번 백장미 백송이를 사다 드려요. 아주 좋아하시지. 항상 선물만 했던 장미를 내가 찍어보자 했던 거죠.”

창문 앞 화병에 꽂힌 꽃이 만개하고 시들어 마를 때까지를 찍어오고 있다. 인화한 사진을 꽂아놓은 사진집의 첫 장에서 만개한 장미의 자태를 본 후배나 동료들은 ‘돈이 궁하신가’하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꽃의 피고 짐에 ‘인생’이 투영되기 때문일까? 한 장 한 장 뒤로 넘기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볼수록 눈물 난다’고.

사진으로 시대를 풍미한 거장이자 사진 앞에서 순수함을 지켜낸 예술가 주명덕. ‘사진을 위한 사진’, ‘자기 만족을 위한 사진’을 해온 적 없는 그는 여전히 카메라를 손에 들기 전에,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함인가?’를 떠올린다.

그리고 현재 그는, 앞으로의 10년을 좌우하는 또 한번의 ‘치열한 시작’을 바라고 있다. “작품 세계가 한 번만 더 변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내가 맹렬히 찾아왔다면 이제는 하늘에서 내려주셨으면 하고 기다리고 있어.” 때론 차분하게 때론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하던 그의 웃는 눈에서, 순간 기도하는 아이의 모습이 스친다.

그 동안 개인적인 사진집뿐 아니라 <한국의 장승>(1976년)을 시작으로 <강릉선교장>(1980년), <서울 에세이>(2002년), 최근에는 <마당이야기>(2008년)까지 다양한 필자와 공동작업 해온 그는 내년 초부터 ‘주명덕의 얼굴(가제)’라는 사진 에세이를 주간한국에 개제할 예정이다.

사진작가가 바라보는 화제의 인물의 새로운 시선이라는 컨셉으로, 그의 사진 인생에서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길 수 있는 기획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 주명덕의 사진 I '도시정경'
최근작 75점 전시·사진집 출판 세미나 개최


경복궁 부근에 위치한 사진전문전시공간인 대림미술관은 사진작가 주명덕의 작품세계를 집중 조명하기 위한 세 편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차례에 걸쳐 진행되며, 기획의 첫 번째 <주명덕 사진 I-도시정경>은 이 달 26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일상적 삶의 공간으로서 도시의 이미지를 기록한 그의 최근 작 75점이 전시되며 이와 함께 주명덕의 45년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사진집 <주명덕 사진집>(대림미술관 발행)을 출판, 그에 대한 학술 세미나도 개최된다.

현대의 사진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찍히는 피사체는 다름아닌, ‘도시’이다.

따라서 사진작가에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적’ 시각은 작가의 색깔을 드러내는 기준이 되곤 하는데, 1960년대 한국적 리얼리즘을 탄생을 알린 주명덕에게는 어떤 모습의 ‘도시’가 비춰질 것인가. 대림미술관의 큐레이터는 주 작가의 ‘도시’ 사진에 대해 ‘근래에 많이 접하는 도시 사진과는 궤를 달리한다’고 말한다.

주 작가 자신에게 반세기 이상 이어져 온 삶의 근거지이기도 한 도시는 사진 속에서 ‘전통적 삶의 배반자’이자 ‘익숙한 삶의 공간’이라는 인식에서 파생된 ‘애증의 그림자’로 표현되어 진다는 해석을 덧붙인다. 이번 전시에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촬영한 사진들로 젤라틴 실버 흑백사진과 도시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는 c-print 컬러 사진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주 작가의 작품세계와 도시 사진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다면 11월 29일과 12월 6일 각각 90분씩 마련된 네 차례의 강연을 들어볼 수 있다. 강연자로 이번 전시의 기획을 맡은 박주석 교수(명지대학교), 사진평론가 신수진과 최봉림, 그리고 환경조형연구소 그륀바우의 김인수 소장이 나선다.

한편, 대림미술관에서 이어지는 세 번의 전시는 현대에서부터 거꾸로 뿌리를 찾아 올라가는 형식으로 진행되며 <도시정경>(2008년), <대지>(2009년), <전통공간>(2010년)의 순서를 갖는다.

◇ 사진작가 주명덕은…

1940년 생. 한국의 대표 사진작가이자 기록사진의 선구자. 경희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1960년대 초, 현대사진연구회에서 사진을 시작했다. 1966년 4월 <포토에세이-홀트씨 고아원>으로 사회적 이슈 속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월간중앙>에서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명작의 현장' '한국의 가족' '한국의 이방' 등의 연작을 남겨 사진에세이의 모범적 사례를 남겼다. 1980년대 말부터 선보인 '잃어버린 풍경'은 언어적 한계 너머의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경지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인생 45년간 수십 권의 개인 사진책 혹은 다양한 필자와 공저를 해온 그는 최근 꾸준히 '도시'에 대한 기록을 해오고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