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때 목표 삼은 파슨스 디자인스쿨 장학생으로 입학해 넘치는 끼 발휘천재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미래의 대가 꿈 키워가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청춘을 찍는 뉴요커>의 저자 김수린(21)과 이메일, 메신저를 통해 이야기를 주고 받기 전, 필자는 그녀를 단지 ‘꿈을 이뤄가는 애송이 아티스트’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미국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한가운데 위치한 파슨스 디자인 스쿨 사진학과 3학년생의 학교생활과 당찬 꿈 이야기를 다룬 청춘 에세이는 깊이는 없고 포장만 화려한 다른 책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덜 성장한 듯한 소녀처럼 깡마르고 앳되어 보이는 그녀의 외모도 이런 생각에 한몫 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스물 한 살 여자아이’가 쓴 청춘 보고서라니!

김수린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자신의 다이어리에 꿈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파슨스 디자인 스쿨의 입학허가서를 받는 것’, ‘스무 살에 전시회 열기’, ‘잡지에 사진 싣기’, 그리고 ‘책 출간’. 15세 소녀는 만나는 사람에게 버릇처럼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그녀에게 꿈은 당장 이룰 수 있는 계획 같은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미국의 예술대학 여덟 군데에 도전했고 합격통지서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중 김수린이 선택한 학교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이었다. 그녀의 ‘롤 모델’인 패션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이 나온 학교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재능을 키워줄 수 있는 학교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김수린은 두 번째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기 3개월 전 서울로 돌아와 혼자 힘으로 스무 살 전시회 프로젝트 ‘Real Gem Project by Soorin Kim’을 실행시켰다. 전시회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의 세탁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모았던 것이다. 또한 패션지 <보그걸>에 그녀가 찍은 사진이 실리기도 했으니 세 개의 꿈을 동시에 이룬 셈이었다.

이후 그녀는 개성이 강한 모델을 발굴하며 인물사진으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시작했고, 뉴욕패션위크의 백스테이지 포토그래퍼로도 활동하며 꿈을 이뤄가는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다.

김수린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10대 때는 자신이 과연 사진가가 될 자질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사진작가 김중만 씨의 스튜디오를 무작정 찾아가 포트폴리오를 내민 당찬 소녀였고, 파슨스 디자인 스쿨 선배이자 휘트니 뮤지엄 사상 최연소로 개인전을 연 천재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에 매혹된 후 그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하는 등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능동적인 ‘꿈 개척자’였다. 지금 그녀는 라이언 맥긴리 스튜디오에서 일하고 있다.

필자가 아직 전문 사진가가 아닌 대학교 3학년 사진학과 학생 김수린을 인터뷰하기로 한 이유는 그녀가 발굴한 패션모델 이수혁 씨의 말처럼 ‘꿈과 행복을 전염시키는 사진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꿈을 꾸고 노력만 하면 모두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세계와 어떻게 해서든 꿈을 이루고야 마는 에너지 넘치는 어른의 세계, 그 중간에 놓인 ‘청춘’ 그 자체였던 것이다.

■ 10대 독자들의 '롤모델'로 급부상

류희(이하 류): <청춘을 찍는 뉴요커>는 10대들에게 유독 인기 있는 책이라고 들었다. 김수린을 롤모델로 삼는 팬들도 있다고 하는데 비결이라도 있는가?

김수린(이하 김): 하하. 난 아직 스물 한 살이다. 비결이나 노하우라는 말은 아직 낯설고 부끄럽다. 나는 결과가 어떻든 하고자 하는 일은 겁내지 않고 도전해 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때마다 나를 밀어주고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나타나곤 했다. 작은 위로의 말 한마디라도 말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소금 같이 꼭 필요한 존재로 쓰일 것이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간다. 이런 긍정적인 태도를 독자들이 알아봐주는 것 아닐까?

류: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는가?

김: 기숙사 생활하는 내게 춥지 말라고 미키 마우스 캐릭터가 그려진 양말을 보내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톱스타의 CD를 보내준 팬도 있었다.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내게 안부를 전해준 팬도 있다. 그 팬은 성적이 얼마나 올랐는지 또한 나를 통해 얼마나 자극을 받았는지 시시콜콜 메일을 통해 일상을 전해주었는데, 열심히 공부해 전교 1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보람을 느꼈다. 뭐랄까? 참 고맙고 기특했다. 나에겐 또 다른 자극이었다.

류: 김수린 씨를 보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고들 말한다. ‘떡잎시절’ 김수린 씨는 남들과 무엇이 달랐나?

김: 나는 한마디로 엉뚱한 말괄량이였다. 만들고 발명하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 한 장에 400원이었던 하드보드지를 용돈을 모아 20장 넘게 산 적이 있었다. 그걸로 무얼 했냐면, 친구들과 함께 산 속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지었다. 결국 비바람이 몰아쳐 집은 모두 날아가버렸지만 집을 짓고 난 뒤의 성취감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번은 엄마 화장대에 있는 가루파우더로 빵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조그만 박스에 파우더를 붓고 우유를 섞어 책상 속에서 발효를 시킨 적도 있다. 일주일이 지난 뒤 파우더가 썩는 냄새가 나는 바람에 엄마에게 들켜 집에서 쫓겨나기도 했다.(웃음) 나는 장미 꽃잎을 물에 넣고 비닐로 덮어두면 향수가 될 거라 믿었던 아이였다. 사촌동생 문병 가는 길에 그렇게 해서 만든 장미 향수를 선물로 준 적도 있었다.

뉴욕 거리에서(위)
학과 동료들과 함께. 가운데 줄 왼쪽서 세번째 안경쓴 여학생이 김수린(아래)

■ 어릴 적 사촌들 모델로 사진 찍고 패션쇼도

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재기발랄했던 수린 씨 모습이 떠오른다. 처음 카메라를 잡은 것이 여섯 살 때였다고 들었다. 그때부터 사진가의 꿈을 키웠다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웃음)

김: 하하하. 여섯 살의 나는 사실 ‘사진작가가 될 거야’ 혹은 ‘좋은 사진을 찍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사진은 그저 내게 가장 신나고 재미있는 놀이였다. 당시 나의 가장 즐거운 놀이는 옷 만드는 일이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촌동생들을 모델 삼아 드레스를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만든 드레스는 한번 벗으면 다시 입을 수 없는 일회용이었다. 이를 어쩌면 좋을까 고민하다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서 ‘카메라’라는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그 후 사촌동생들에게 옷을 입히고 화장을 시킨 후 노래를 틀어놓고 가족들 앞에서 패션쇼를 했다. 그리고 카메라 작동법을 익혀(작동법이라고는 끄고 켜고 셔터를 누르는 것이 전부였지만) 사진을 찍어서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이다. 필름을 빼고 끼우는 법이나 플래시라는 흥미진진한 옵션을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사진은 나에게 자연스런 일상이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류: 미국에서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는데 사춘기 시절 방황하지는 않았나?

김: 한국에서 중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 미국 뉴저지로 유학을 갔다. 내가 다닌 학교엔 한국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쩌면 나는 미국 아이들 속에서 미운 오리새끼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도 끼일 수 없었다. 반 아이 중 한 명이 나만 빼고 모두 생일 파티에 초대를 한 적도 있었고 스쿨 버스에서 흑인 아이들이 이유없이 나를 비웃은 적도 많았다. 울고 싶은 적도 참 많았는데 나는 ‘그럴 테면 그러라지’라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다. 그런 내가 학교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미술시간이었다. ‘미술’은 나를 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5년 내내 나는 학교가 끝나면 혼자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거나 집에서 내 몸집만큼 큰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류: 파슨스 디자인 스쿨 3학년에 재학 중인데 학교 생활은 어떤가? 요즘 가장 들뜨게 하는 일이 있나?

김: 학교 생활은 내 인생의 7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 매일 밤 숙제를 하면서 밤을 새야 할 정도다. 사실, 공부보다 나와 같이 아티스트를 꿈꾸며 함께 생활하는 친구들에게 배우는 것들이 참 많다. 뭐랄까, 이곳에선 ‘성공’이란 잣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참 재미있는 점은 이성친구와 진지한 교제를 하는 친구들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곳의 친구들은 4년 동안 공부를 하는 것이 훗날 멋진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벌어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년 동안 우리가 얻어야 할 답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물론 정답을 100% 명확하게 얻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며 나 자신이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되었다.

■ 사진작가 김중만과의 특별한 인연

류: 10대 때 사진작가 김중만 씨를 만났다고 들었다. 그에게 ‘사진 잘 찍는 애’라는 말을 들었다는데?

김: 아아!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도 떨린다. 내가 김중만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는 사진을 아는 누군가에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돌멩이 같은 내게 재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터무니없는 꿈을 꾸며 시간을 낭비하는 몽상가로 남고 싶지는 않았다. 청담동 스튜디오에 들렀을 때 김중만 선생님은 차근차근 내 포트폴리오를 보시더니 “이야 사진 좋네! 벌써 모델이랑 커뮤니케이션을 할 줄 아는구나. 너, 앞으로 사진 계속 찍어도 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2년 뒤 동강사진축제 때 대학생만 들을 수 있는 사진 강의에 신분을 숨기고 참가했다. 그런데 풋내 나는 내 모습에 금세 들통나버렸다. 김중만 선생님은 신기하게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진 괜찮게 찍는 아이! 미국에서 공부 잘하고 있니?”라고 물어보셨으니까.

류: 수린 씨는 주로 인물 사진을 찍는다. 인물 사진은 김중만 씨의 말처럼 모델과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할 텐데 모델 섭외를 하고 사진을 찍을 때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는가?

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들을 통해 마치 내 자신에게 수수께끼를 내는 것처럼 내가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하는 것인지 아주 조금씩 알아간다. 내 머릿속에 무언가를 그려보고 그것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통해 표현한다는 것이 내게는 참 매력적이다.

나는 길거리 캐스팅도 많이 하는 편이다.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거나 어디를 가도 꼭 나의 관심을 끄는 얼굴들이 눈에 띈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내 소개를 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바로 묻는다. 그 순간들이 참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또 작은 인연의 끈이 이어지는 것이다.

■ 신예 패션모델 이수혁 직접 발굴하기도

류: 요즘 패션잡지에서 한창 잘 나가는 모델 이수혁 씨를 발굴한 사진작가로 알고 있다.

김: 혁수(이수혁의 본명)는 첫인상이 참 강렬한 친구였다. 내가 늘 카메라 앞에 서줄 모델에 목말라 한다는 점에서 혁수는 내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혁수가 남다른 것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닌데도 혁수는 그것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 혁수는 매우 똑똑하고 당차고 자신감 넘치는 멋진 이 시대의 젊은이다. 나는 앞으로 혁수가 분명 무엇을 하든 대성할 거라는 확신이 있다.

류: 라이언 맥긴리 스튜디오에서 일한다고 들었다. 현대사진의 전설과도 같은 애니 레이보비츠 스튜디오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뒤로 하고 라이언 맥긴리를 선택한 이유가 무언가?

김: 그를 알게 된 건 젊은이들이 발가벗은 채로 숲속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고서였다. 어떤 사진보다 자유롭고 절제되지 않은 인간의 심연을 절실하게 표현해낸 그의 작품에 난 전율을 느꼈다.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망을 만드는 라이언 맥긴리의 사진에 흠뻑 빠져들면서 그의 곁에서 작품을 더 가까이 느끼고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그의 스튜디오를 무작정 찾아갔고 지금은 이 시대 가장 ‘젊은 사진’을 잘 찍어내는 미남 포토그래퍼 라이언 맥긴리 곁에서 많은 것들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그는 자신이 듣는 음악 중에 내 이름과 비슷한 ‘슈린슈린’이라는 가사가 들어가는 노래가 있다며 아침부터 신나게 들려주는 재미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류: 스물 한 살 수린 씨의 꿈은 무엇인가?

김: 지금 나의 꿈은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나는 참 꿈이 많다. 튼튼한 뿌리를 가진 한 명의 아티스트로 건강하게 뿌리내리는 것, 가난하든 어리든 나이가 많든 상관없이 이 세상의 꿈을 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류: <청춘을 찍는 뉴요커>를 읽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김: 나보다 훨씬 인생 경험이 많은 분들이 이 책을 보면 아마도 나를 겁없고 철없는 무모한 젊은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다. 나 역시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본다면 웃음이 날 것 같다. ‘대체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났던 걸까?’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시대의 한 젊은이가 조금은 무모하게 그리고 당차게 세계의 중심에서 자랑스런 아티스트로 뿌리내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내가 ‘세계 최고의 포토그래퍼가 될 것이다’라고 확신하기 보단 그저 내가 하루하루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청춘을 찍는 뉴요커 수린’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는 중이니까 말이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