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춤 풍요 속 예술춤 빈곤을 진단·대안책 담은 책 출간7,000여편 촬영기록 바탕 IPTV 개국 추진 중

한국에서 ‘춤’은 이율배반적인 어감을 주는 단어다. 막 걸음을 뗀 아이가 음악이 나올 때 가장 먼저 배우는게 ‘춤’이지만 정작 무대 위의 ‘춤’은 높고도 멀기만 하다.

더욱이 댄스스포츠, 비보잉, 건강춤의 향유자가 300만명을 넘기며 춤은 생활 속 깊숙하게 자리했지만 정작 예술로서의 춤을 보는 관객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2006 문화향수 실태조사)으로 뚝 떨어졌다. 춤의 ‘위기’를 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기.

창작자들이 지속적으로 관객들과 소통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무력함과 방향성 상실로 고뇌하고 있을 때, 명쾌한 책 한권이 시선을 잡아끈다.

지난 20여 년간 쉴사이없이 정력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 무용평론가 김채현(한국예술종합합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의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의 출간이다.

“평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인이 태양을 보고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면 태양을 바라보는 사고의 여지를 넓혀주는 것처럼 말이죠. 마찬가지로 무용가들에게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판단할 수 있게 정리해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역할이 제 몫이라고 판단한거죠. 비평은 부차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 목표를 수정하게끔 끌어 올려주는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인터뷰가 이루어진 그의 교수연구실엔 문을 여닫을 공간을 제외한 네 벽면이 책과 DVD 자료로 빽빽하다.

누렇게 색이 바랜 서적부터 표지가 빳빳한 신간까지 수 백권은 족히 되어 보인다. 검정색 팬으로 제목이 적힌 DVD 케이스도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섰다. 지난 20여년간 직접 캠코더를 들고 촬영해온 한국의 춤 공연과 국내외 축제현장의 기록물 7,000여 편 중 1/5가량이다. 상아탑 학자가 아닌 땀냄새 진동하는 현장에 누구보다 가까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책에도 있지만 학생 공연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올해 4월, 11월에 베스트안무가쟁탈전이란 것을 했는데, 인디춤의 일단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 작은 움직임이 새로운 춤 착상의 원동력이 될 겁니다.”

고작 몇 백만원의 연봉으로 살아가고 마흔이 넘어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수많은 무용인들을 보면 그는 가슴이 아려온다. 도대체 춤의 위기는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묻기 시작하면 교육, 정책, 공연장의 경영행태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이다. 여기에 디지털 시대라는 사회적인 변화는 복병과 같다.

김 교수는 그 실마리를 부실한 교육에서부터 풀어낸다.

“해방 50년 동안 잠복해있던 교육 문제가 표면화되었다고 봅니다. 공교육에서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 중요한데, 일반 초중교에서 공교육은 이미 실종되었거든요. 예술을 만들어내고 다른 장르와 버무려낼 수 있는 창의적 기반이 부실하다는 겁니다. 기반만 잘 다져져 있으면 사회적 이슈와의 혼합이라던지, 디지털 공학과의 교배도 가능해지는 거죠.” “어떻게 보면 한 명의 천재가 예술계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 것 같기도 한데요.”(기자) “예술에서 천재의 힘은 크죠.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천재보다는 스타인 것 같은데, 대중적이면서도 진솔한 작품을 내는 스타라면 좋습니다. 인문학적 토양은 천재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어요. 한국을 알리는 예술가들, 백남준이나 사라장을 존경하지만 이젠 국내에서 길러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더불어 작가들 역시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방의 작품이 아닌,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무용인의 창작마인드 혁신을 위해서다.

그는 작가가 한발짝 물러나고 관객이 재생산하는, 즉 ‘작품’이 아닌 ‘텍스트’(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작품’은 작가가 단일한 의미로 관객에게 제시하는 것인 반면에 ‘텍스트’는 독자가 작품을 매개로 만들어내는 의미이다. 텍스트는 존재하는 독자 혹은 관객의 수만큼, 보는 횟수만큼 존재할 수 있다-<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中)로서의 예술을 강조했다.

무용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과 해외공연 수입에만 열을 올리는 기획자들을 향해서도 날 선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그는 항상 비판과 명확한 대안책을 함께 제시했다.

“중앙문예진흥기금이나 서울문화재단에서 현재 개인 예술가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인프라 구축에 초점 맞출 때가 됐어요. 문예진흥기금이 한해 15억을 무용에 지원하는데, 가령 3천만원을 지원받는다면 관객 500명이 들었을 경우 1인당 6만원을 지원 받는 꼴이거든요. 일본의 삿포로 눈축제를 볼까요. 일주일동안 20억원을 지원하는데, 150만명이 그곳을 찾아요. 1인당 1300원이 나옵니다. 현 정책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 비용을 극장에 대관비로 지원하면 리허설할 공간까지 확보가 됩니다. 리허설 공간이 없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의 말은 계속됐다.

“무차별한 해외공연 수입은 해외공연과 우리공연의 수준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일면 예술의 위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닌가. 해외공연과 국내 공연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국내 예술가들이 피어나지도 못하고 열등의식을 갖게 하거든요. 해외공연과 우리공연의 7:3의 비율로 한국 작품을 발굴하는 것이 긴 안목에서는 더 의미가 있지요.”

국내에서 6년간 석사를 마친 그는 박사를 밟기 위해 파리행을 준비했었다. 오랜 준비기간으로 파리가 한눈에 잡힐 것 같던 그를 잡아끈 것은 그즈음 조금씩 활성화되는 국내 공연계였다. 지금 공연계를 보는 그의 심정은 마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자식을 바라보는, 만감이 교차하는 부모의 심정인 것처럼 보였다.

‘4시간’이란 물리적인 인터뷰 시간, ‘아직도 할일이 많다’라는 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꺼내드는 수첩, 그리고 7천 편의 촬영기록으로 열정의 크기를 가늠해볼 수 있을까.

여전히 20대처럼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그는 그간의 촬영기록을 바탕으로 IPTV의 개국도 추진 중이다. 무용뿐 아니라 클래식, 영화, 미술, 문학을 아우르는 그의 인문학적 토양을 기반으로 문화예술을 담는 시대적 그릇을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문화의 기본 취지는 흔들리면 안되죠. 항상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그 이후에 부가가치를 생각해야지요.”

■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는…

김채현 교수의 <춤, 새로 말하다 새로 만든다>는 경기문화재단의 펴내고 있는 ‘새로운 예술’ 시리즈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됐다. 대중춤의 풍요 속에서 빈곤해져가는 예술춤의 위기를 진단한 서적으로, 춤의 현재를 바라봄으로써 미래를 조망한다. 우리 무용계에 위기가 오기까지의 원인을 분석하고 세계적인 흐름을 통해 우리 무용계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준다.

발레부터 삼바와 탱고, 현대무용, 동성애춤과 장애인춤, 그리고 힙합과 인디춤까지 시공을 넘나드는 통찰력으로 입체적으로 구성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단지 춤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춤을 통해 역사적 흐름과 사회적 의식과의 내밀한 관계까지도 포착해내고 있어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철학자의 깊이와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비단 무용의 현실뿐 아니라 공연예술 전반에 걸친 이해와 통찰력이 담겨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교양서적으로서 일반독자는 물론 현장에 있는 공연기획자들과 극장 경영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전해주는 책이다.

◇ 김채현 교수는..

무용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대학원 미학과 졸업. 춤.예술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 그리고 <우리 무용 100년>의 공저와 <춤>, <미적 체험의 현상학>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최근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출판. 지난 20여년간 한국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이 7천 편에 이른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