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학 만남으로 동화의 새 장"명화를 스토리 라인 맞춰 재창작 아이들에 예술·시대상 이해에 도움

지난 12월 명화와 명작 동화를 묶은 <소리봄 명화명작> 58권을 펴낸 중견 동화작가 김진락(50. 필명 서봉) 씨와 서양화가 유해미(28.여) 씨를 23일 서울 대치동 소리봄 출판사에서 만나 공동작업 과정의 소회와 기획의 계기 등을 들었다.

김진락 씨는 동화작가이자 출판인으로 지난 2006년 철학동화인 <작은 철학자>를 펴내 교육방송(EBS)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방영되기도 했다.

그는 안데르센, 이솝, 그림형제 등의 원작동화를 재해석한 동화 원문을 직접 썼으며, 유해미 씨를 비롯한 41명의 서양화가를 초청해 이집트 미술, 고흐, 고갱, 마티스, 마네, 모네, 샤갈에서부터 앤디 워홀, 바스키아에 이르는 명작 그림을 재창조하고, 이를 엮어 <명화명작>을 만들어냈다.

그는 재창조한 명화와 재해석한 동화가 한데 어우러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동질계수의 만남으로만은 창의가 이뤄질 수 없다”며 “미술과 문학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창출이 가능하다”고 요약했다.

“창의력에 주안을 두는 엠 아이 티(M.I.T.)의 교육목표는 아트, 철학, 기술입니다. 기술만 갖고 하는 것보다는 아트적 접목을 해야 새로운 기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동화작가로서 아이들의 창의성을 북돋는 동화전집을 고민하다 이런 기획을 하게됐어요.”

김 작가는 대부분의 우리 문화동화가 문화에 얽힌 스토리의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쳐 아쉬움을 느껴왔으며 명화를 그린 화가들의 그림을 동화의 스토리라인에 맞춰 재창작해 아이들의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시대상을 이해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 만만치 않았던 공동작업

같은 목적으로 모인 문학가와 화가지만 공동작업 과정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번 전집에서 폴 고갱과 마르크 샤갈의 작품을 재창조한 서양화가 유해미 씨는 “그림을 많이 익혀서 내용과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고민했다”며 “화가의 경우 대형 조소작품 외에는 공동작업을 할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누군가와 상의해 기획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고 작품을 재창조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말했다.

기획자의 고충 역시 컸다. 김진락 작가는 58권의 <명화명작>을 목표로 80여편의 동화원작을 재해석한 글을 썼고, 80여명에 이르는 명작가의 명화와 맞추는 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잘 맞지 않는 22개의 조합을 버리고 남긴 것을 이번 전집으로 완성한 것이다. 김 작가는 “그냥 명작을 베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명작화가의 작품세계와 시대상을 제대로 읽고 재창조할만한 능력 있는 화가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동화의 맥락을 이해하고 작품을 재해석해야 한다는 기획의도를 화가와 공유하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 그럼에도 하는 이유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도 김 작가는 왜 이런 작업을 하는 것일까. 김 작가는 시골 출신으로 정서적으로 풍부한 시절을 살아온 자신에 비해 메마른 요즘 아이들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아이는 우리의 미래”라고 말한다. 김 작가는 “주입식으로 명화나 명작을 가르치기 보다는 문화적 대세인 이미지와 이야기의 결합으로 아이들이 그 가치를 이해하고 흡수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며 “이집트 미술부터 팝 아트에 이르기까지 아이들이 예술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문화적 접근을 하고 심미감을 키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출판사에 일하던 그는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등 좀더 잘 된 어린이 책을 만들기 위한 공부를 하며 저술 활동을 했다. 그는 아동 도서계에서는 눈에 띄는 7만질(전집 54권)의 판매고를 올린 <작은 철학자>를 비롯해 <불타는 오두막>, <상자의 비밀> 등의 동화를 썼다.

그림과 동화의 결합을 시도한 <명화명작>의 중점은 미술과 시대의 인식에 뒀다.

김 작가는 “시대별 미술사조를 동화와 엮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시대를 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며 “변화를 읽는 것은 미래의 가치 창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양한 모습의 미술사를 동화와 함께 읽어가게 함으로써 미래를 열어가야 할 아이들에게 문화적, 예술적 능력을 길러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 더 많은 순수예술 융합으로 인문학 살려야

힘든 공동작업을 마친 두 작가는 오히려 더 많은 융합이 있어야 학문과 예술의 성숙이 일어날 것으로 봤다. 김 작가는 “순수학문 없는 응용학문의 발전은 있을 수 없다”며 “순수예술간의 융합으로 창의력을 높이고 인문학을 살려야 응용학문의 발전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명화 중에도 이런 시도는 있어왔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칸딘스키는 음악을 좋아해 캔버스에 음악을 표현했다. 클레를 비롯한 입체파 화가는 화면에 입체적인 8면을 그대로 그려 넣어 창의적인 사유의 방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유해미 화가는 “혼자 작품을 할 때와 달리 협업을 하니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돌아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서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두 부류의 완성을 향한 공동작업 과정에서 배운 것이 독자적인 작품활동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동양미술사를 중심으로 한 동화집도 낼 계획이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