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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깅이'출간 소설가 현기영 "전쟁중 아이의 성장에 초점 맞췄죠"
원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서 제주 4·3 사건 묘사 빼고 청소년 문고로 개정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문학사를 살펴보면, 전쟁의 트라우마가 문학적 자산이 된 작가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 그의 문학을 관통하는 것은 단연 홀로코스트다. 10대 시절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던 그는 1975년 수용소 체험과 관련된 <비운>을 발표하며 등단했고, 이후 <좌절>(1988),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1990) 등 ‘아우슈비츠 3부작’을 내놓았다.

헤밍웨이 역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썼고 다시 1940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체험을 밑천삼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썼다. 이 작품은 피카소의 그림 ‘게르니카’, 로버트 카파의 사진 ‘병사의 죽음’과 함께 스페인 내전을 다룬 3대 작품으로 손꼽힌다.

소설가 현기영에게 문학적 자산은 제주 4.3사건이다. 제주출생의 현 작가는 유년시절 겪은 4.3 사건을 토대로 1978년 단편 ‘순이 삼촌’을 발표했고, 곧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고문을 당하는 등 곤혹을 치렀다.

독자들의 호응과 의무감으로 그는 이후 20년간 제주도와 4.3사건에 관한 문학작품을 써왔다. 1999년 자전 소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마지막으로 “4.3과 이별”했지만, 지난 해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올라 다시 본의 아니게 다시 뉴스 중심에 서게 됐다.

최근 그의 이력에 작품 한 권이 더해졌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를 청소년 문고로 개정한 <똥깅이>를 출간한 것. 원작 <지상에 숟가락 하나>에 다수 실려 있는 4.3사건 묘사 부분을 과감하게 덜어내고, 어린아이의 성장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 4.3 덜고 성장과정에 초점

“출판사에서 청소년 문고를 내는 게 어떻겠냐고 제의가 왔어요. 중학교 선생님들이 4.3사건을 쓴 부분을 순화해 달라고 출판사 쪽으로 요구를 많이 한 모양이더라고요. 아이들이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라고요. 4.3사건은 요즘 아이들이 보면 엽기 소설처럼 참혹한 것이기 때문에 저도 수긍이 돼서 ‘그렇게 하자’, 그래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겁니다.”

작품은 4.3사건 묘사를 덜어내는 대신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 에피소드의 순서를 다시 구성하는 한편, 박재동 화백의 삽화를 삽입해 보는 맛도 더했다.

<똥깅이>는 1940년대 제주도에서 태어난 아이가 중학교 3학년 사춘기 소년이 될 때까지 모습을 그린 성장 소설. 소설의 제목 ‘똥깅이’는 주인공의 별명이자 작가의 어린 시절 별명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 머리가 찢어져 흉터가 생긴 것, 맥베드 공연에서 단역을 맡았던 것 등 작품 속 일화는 모두 내 경험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늘 부재중이었지만 투쟁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무한대로 펼쳐진 수평선에 오히려 갑갑증을 느꼈던 섬 소년 똥깅이에게 문학과 독서는 유일한 출구가 된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의 이 작품은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동무들과의 추억 등 그 시대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전쟁 중 아이의 성장이란 무엇인가, 다시 말해 인간이라면 무엇을 먹고 성장하며 몸과 마음은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원천적인 질문을 던진 작품이에요. 우리 세대 유년시절이란 전쟁 속에서도 자연을 벗으로 순진무구하게 티 없이 자랄 수 있었거든요. 요즘 아이들이 이 책을 보면서 자본주의 정신을 순화시키는 것이 바람이죠.”

편집과 삽화작업이 예상외로 더뎌져 3년 전 기획된 이 책은 이제야 빛을 보았다. 4.3 사건을 일부분 덜어낸 것에 대해 “원고는 1년 전쯤 마무리 됐는데 오비이락(烏飛梨落)으로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에 <지상에>가 올라 마음이 좋지 않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 신작은 386 지식인의 비애

그의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4.3사건을 두고 현기영 작가는 아쉬운 부분이 있는 듯했다. 등단 당시 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선호했던 그는 4.3 사건에 관한 단편 3편만 발표한 후 인간의 내면을 그린 심리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지난 가을 김애란 작가와 문학 대담을 나눈 자리에서 그는 “딱 3편만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을 쓰는 데 20년이 걸렸다”고 말한 적이 있다.

“10년 전부터 난 (4.3에서) 자유로워졌어요.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무엇에 몰입하게 되면 헤어 나오기가 어려울 때가 있잖아요. 이 책 원작이 된 <지상에 숟가락 하나>. 난 성장소설로 썼는데 4.3 소설이라는 사람도 있어요.”

대화는 최근 집필중인 장편 <누란>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4.3에서 50여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2000년대 한국의 단상을 드러낸다.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40대 지식인의 시선으로 오늘날의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현실에 대한 비판과 주인공의 자의식이 교차하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될 거라고.

“지금 시민들은 단순한 소비자라고 봐요. 신념이나 이데올로기, 사상이 배제된 소비사회의 허구성을 비판하는 내용이죠. ‘부자되세요’란 광고랄지, 돈을 숭배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잖아요.”

386세대의 지적 담론이 중심이 될 이 작품은 현재 1000매 가량 써둔 상태다. 장편 소설을 쓰면서 처음으로 육필원고가 아닌 컴퓨터로 쓴 작품이기도 하다고. 작가는 인터뷰 도중 “요즘 젊은이들은 외래어를 많이 쓰는 데 40대 교수가 ‘예식장’과 ‘웨딩홀’ 중 어떤 말을 쓸 것 같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한 세대 아래의 주인공을 표현하면서 단어부터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신작은 소비사회에 대한 비판과 주인공의 촘촘한 자의식 표현, 80년대 고문 수사 장면의 참혹한 묘사 등 ‘불편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듯하다. 현기영 작가는 “이 작품은 형식이 새로울 뿐더러 불편한 작품이라 평단이나 독자 반응이 별로 좋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지옥 같은 현실이 작가에게는 천당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억압받는 현실에는 도전할 게 많죠. 내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고. 지금은 선배작가와 같은 조건이 아니에요. 용기를 낼 대상이 없어졌죠. 그래서 이 작품을 쓰면서도 절망하죠. 사상이나 이념이 없는 아노미 상태니까요.”

억압의 시대, 펜과 몸으로 역사의 진실을 말했던 소설가 현기영. “작가도 벤츠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한 소설가의 말보다, 억 대 연봉을 받는 몇몇 작가들보다 그의 모습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문학에 대한 진정성에 있을 터다. 우리가 꿈꾸는 지식인이란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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