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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두타는 날' 만끽하는 맛에 연극해요"
서재형 연출가와 한아름 작가
배우 극몰입 소름 돋는 순간… 부부 환상콤비 5번째 '청춘 18대 1' 재공연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피아노 의자에 앉은 이들이 한아름 작가와 서재형 연출가


연극계에서 서재형과 한아름이란 이름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스타 캐스팅도 아닌데, 포스터에 적힌 '서재형 연출, 한아름 작'을 보고 연극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들 작품에 대한 무한 신뢰가 그 출발점이다. 영화 <롤라런>에서 볼 수 있었던 쉼 없는 달리기, 영화 속 슬로우 모션 혹은 빨리 감기와 되감기 등 그들 연극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형식이 소극장 무대가 작은 줄 모르고 펼쳐진다. 이미지 연극으로, 이들 작품은 한국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같은 목표를 바라보던 동료의 인연을 삶의 동반자로 이어온 연극계의 유명한 연출가-작가 부부다. 재미있는 것은 서재형 연출가가 이전에는 극작을 했었고 한아름 작가는 프랑스에서 연출로 석사학위를 받은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덕분에 준비과정에선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토론이 이어지지만 서로의 작업에 '훈수'를 두는 일은 어설프거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 그들이 환상의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단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함께 산고의 고통을 견디며 낳은, 자식 같은 작품은 지금까지 다섯 편. 그 중 유독 애틋이 여기는 연극 <청춘 18대 1>이 이달 24일부터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지난해 여름 초연 되었던 이 작품은 주연배우의 부상으로 돌연 중단되었다가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배우 교체 없이 공연을 중단했다는 점이나 다시 재공연을 올리는 일은 연극계에서 좀처럼 드문 일. 그들에게 주어진 고마운 기회에 이들 커플도, 극단 배우들도 꽉 막힌 듯했던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신 그 사이 생긴 경사로 오히려 그들은 몸과 마음을 다잡고 있다. 경사는 다름 아닌, 연극 <호야>에 대한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이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이자 극본 속에 나오는 지문을 읽어주는 새로운 형식의 연극 <호야>가 지난 연말, 대학로 소극장에 올려지면서 전석 매진이란 '이변'을 일으켰던 것.

<청춘 18대 1>에도 그 여파가 미치고 있다. 공연 시작을 2주 앞두고 있는 시점에 사전 예매율이 5%를 훌쩍 넘겼다. 공연장 관계자들과 서재형, 한아름 콤비도 놀라는 눈치다. 그만큼 각오도 남다르다.

"초연은 저희가 조명 받았지만 <호야> 이후엔 배우들 보려고 찾아오는 관객이 많으신 것 같아요. 덕분에 배우들에게까지 전해진 부담감은 이제 책임감으로 전환되고 있어요. 보통 연극 연습을 한 달 반 정도 하지만 이번엔 세 달을 '죽을 듯이' 하고 있습니다." (서재형)

배우들에게 유독 엄한 서재형 연출가마저도 '죽을 듯이'라며 힘주어 말할 정도로 배우들의 열의가 대단하다. 오후 2시에 시작하는 연습에 오전 10시부터 와서 몸을 풀고 각자 연습에 들어가고 있을 정도. 이미 공연의 열기는 연습실에서부터 달아오르고 있었다.

<청춘 18대 1>의 초연 당시, 관객들의 환호와 더불어 평단은 대체로 좋은 평가를 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색깔이 변질됐다' 혹은 '퇴보했다'는 비판을 비수처럼 꽂기도 했다. 그로 인한 상처의 치료약은 계속해서 공연을 찾아주는 관객들이다.

"이외수 선생님이 언젠가 TV에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분해한 시계는 가지 않는다.' 이 말씀을 듣고 일부의 지독한 비판에 대한 위로를 받았어요.

작품은 유기적이죠. 모두 최상으로 끌고 가고 싶지만 어느 한 부분을 살리면 다른 부분은 아쉽고 포기해야만 하는... 관객들이 '감동적'이라는 말을 건넬 때, 7번이나 같은 공연을 보러 와서 제가 오히려 관객을 알아보게 될 때면 작가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한아름)

<청춘 18대 1>은 '독립투사'가 아닌, 어쩌다 독립운동을 하게 된 청춘들의 이야기다. 광복인 8월 15일을 불과 한 달 앞둔 시점. 한 달 후에 독립이 되는지 알 리 없는 젊은이들이 두려움도,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이 살다간 짧은 생애를 눈물겹도록 뜨겁게 담아냈다. 작품 속 청춘들의 내밀한 심경은 거친 호흡으로 뿜어내는 정열적인 '춤'장면에서 분출된다.

"광복절이 역사책에 나오는 먼 일로 느껴지지만 사실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거든요. 독립이 언제일줄 몰랐던 그들이 한 달만 기다렸더라면 지금쯤 노년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평범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영웅이 많을 거예요.

대의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참여하니까', '내 형제가 하니까'처럼 작은 동기 속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을 떠올렸습니다." (한아름) 일본의 무정부주의자로, 한국의 독립 운동가인 박열의 연인이었던 여인 '가네코후미코'에 대한 책이 이 작품의 모티프가 되어주었다.

조선, 고려 통사를 꿰고 있는 서재형 연출가와 근대사를 좋아하는 한아름 작가의 작품은 <릴-레-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시대극이다. 권력 유지를 위한 권모술수, 음모와 배신이 역사 속에서 돌고 돈다는 데에 이들은 시대극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고증의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지만 그들은 과정마저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준비하는 데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려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죠. <왕세자 실종사건>을 준비하는 데만도 역사책 50권을 읽었어요. 그림, 문자 안에서 상상 되는 것이 많습니다. 이젠 좀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서재형)

역사를 해석하는 그들의 안목이 시대를 앞섰던 걸까. <왕세자 실종사건>이 무대에 올랐을 당시 '내시의 사랑'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정작 2년 후 배우 오만석이 출연한 드라마 <왕과 나>에서 내시의 연정은 오히려 시청자들의 감수성을 자극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이런 반응에 의연해졌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도, 혼자만은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창작자의 특권이자 안목의 깊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아침 운동부터 연습을 마치고 들어가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하는 서재형, 한아름 콤비의 아이템회의는 시시때때로 일어난다. 둘이 함께 눈길을 모은 존재라면 소재가 된다.

"운전하면서 가장 많은 아이디어가 나와요. 지나가다 카메라 숍을 보고 카메라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카메라 연극은 어떨까 하고 살을 붙여보죠. 영화를 볼 때도 그렇구요. 그러곤 잊어버려요. 하지만 이후에 작품 하면서 그때 했던 얘기를 떠올리고 쓸 만한 것을 가져 다 쓰지요." (서재형)

뭔가 떠오르면 서 연출가는 공간을 구성한다. 무대 디자인을 하기도 했던 그는 아주 작은 세트를 만들어 이야기를 건네면 한 작가는 그 공간에 상상력을 더해 이미지와 언어로 변환한다. 재미있겠다 싶은 내용은 메모해두었다가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을 찾곤 한다. 이렇게 해서 작업을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총 1년 정도.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한 후에는 3-4개월이 소요된다.

그들 작품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이 높아지면서 뮤지컬로 공연을 올려보자는 제의, 해외에 소개해보자며 비행기 티켓까지 내미는 곳도 있지만 온전히 준비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그들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 각자(올해 서재형 연출가는 서울예술단과 댄스컬 <15분 23초>를 재공연하고, 한아름 작가는 에이콤과 뮤지컬 <영웅>을 작업 중이다.) 실전에서 뮤지컬 어법을 익히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이 이보다 먼저 이루고 싶은 꿈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배우들을 '월급쟁이'로 만들어주는 것. 불규칙한 수입으로 한 달의 삶, 일 년의 삶을 계획할 수 없는 배우들을 위한 기초를 닦는 해가 올해였으면 하는 바람을 서재형 연출가는 가지고 있다.

"연극계가 어렵다, 우울하다 얘기하면 더 외면당하게 되지 않나 싶어요. 우리도 한 달 5만원 세대였지만 이런 사슬을 우리가 끊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재형)

매일의 연습을 하나의 '기원의식'처럼 대한다는 서재형 연출가와 한아름 작가. 배우들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온전히 극에 몰입하는 소름 돋는 순간-그들의 용어로 '작두 타는 날'이라 부르는-을 만끽하는 맛에 연극을 한다는 그들은 달리 표현할 수 없는 천생 연극인이다.


서재형 연출가&한아름 작가는…

<호야 好夜> <죽도록 달린다> <왕세자실종사건> <릴-레-이> <청춘, 18대1> 등 다섯 작품의 연출자인 서재형은 '극단 죽도록 달린다'의 대표이기도 하다. 제 41회 동아연극상 새개념상, 제 2회 올해의 예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2005 동아일보 주최 <프로가 뽑은 프로> 차세대 연출 2위, 2006 경향신문 주최 <한국을 이끌 60인>에 선정되었다.

서재형 연출가와 위의 다섯 작품을 탄생시킨 한아름 작가는 프랑스 파리 제 8대학 연극과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이들은 현재 가장 감각적인 연극으로 주목 받고 있는 젊은 연출-작가 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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