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특구 조성·미술품 양도세 법안 철회"15대 회장 취임… 제대로 된 미술장터 형성 좋은 작품으로 승부"화랑미술제·한국국제아트페어 활성화에도 앞장"

한국화랑협회가 새로운 수장 체제를 가동했다. 협회는 지난 2일 정기총회를 열고 제 15대 신임회장으로 표화랑의 표미선 대표를 선출했다. 국내 144개 화랑들의 모임인 한국화랑협회는 1976년 설립이래 지금까지 건전한 미술시장을 형성하는데 힘써온 것으로 유명하다.

표미선 신임회장은 화랑협회의 주요 사업인 화랑미술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미술품 감정, 국제미술전 참가 지원사업을 더욱 충실히 전개해 나갈 것을 다짐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기에 앞서 중장기적인 계획으로 협회의 기반 다지기에 나섰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국내 미술시장은 경제불황과 위작시비, 미술품 비자금 논란, 양도세 부과 등 악재들이 겹치면서 지난해부터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표 신임회장은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마인드로 위기 극복에 앞장서고 있다.

15대 신임회장으로서 표 대표에게 주어진 첫번째 임무는 화랑미술제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일이다.

"화랑미술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화랑협회가 주력해온 사업인 만큼 기대가 커요. 3월 18일 부산에서 열리는 이번 미술제에는 특별한 '아트열차'가 운영됩니다. 부산까지 가는 KTX 안에서 미술제 고객들과 관계자들을 위해 미술 강의를 비롯한 이벤트들을 제공할 예정이에요. 또 행사 동안에 미술대학 학생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했습니다."

서울지역에서도 80여 곳의 화랑이 부산 화랑미술제에 참가할 예정이고, 이를 위해 벌써 부산시와 부산 벡스코로부터 4,000만원의 예산까지 확보해 놓은 상태다.

표 신임회장은 "미술제가 아트마켓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여주는 전시장의 기능만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며 "좋은 작품을 국내외 컬렉터들에게 소개함과 동시에 거래로까지 이어주는 제대로 된 미술장터로 화랑미술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화랑제에 참여한 각각의 화랑들이 적어도 소개한 작품 가운데 한 점 정도는 팔 수 있는 왕성한 마켓이 형성돼야 한다며 표 신임회장은 이는 비단 화랑제뿐만 아니라 한국국제아트페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화랑협회에서 주최하는 가장 큰 행사가 바로 KIAF잖아요. 경기침체로 2008 KIAF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해 올해는 어깨가 더 무겁습니다. 이번 KIAF에는 120~130여 개 화랑이 참가하는데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페어의 경쟁력을 높이는 게 급선무인만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한 거죠."

지금까지 화랑협회 회원 화랑들 중에는 수준 미달의 작품을 가지고 KIAF에 참가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아트페어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다. 화랑의 규모와 역량을 불문하고 화랑이라면 작품성을 갖춘 작품들 위주로 출품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표 신임회장은 수준미달의 작가들로부터 KIAF 부스 대관 비용을 받아 출전하는 화랑은 애초에 참가를 엄격히 제한하겠다는 대안을 마련했다.

"화랑들이 경영에 성공하고 유명해지는 이유가 탄탄한 경제적 기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작품으로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화랑들을 평가할 때 작품과 전시 성향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훌륭한 작품이 주가 돼야 한다는 게 표 신임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눈 앞에 보이는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선별해 소개하는 것이 화랑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리려는 의도도 담고있다고 설명했다.

표 신임회장은 대표적으로 광주의 소규모 화랑인 '나인 갤러리'를 예로 들며 "나인 갤러리는 지방의 여느 화랑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화랑이지만 이이남 작가를 발굴하면서 스타급 화랑으로 거듭났다"면서 "이렇게 되면 작가는 물론 화랑까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3년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트 빌리지 개념의 '예술 특구 조성 사업'과 '미술품 양도세 법안 철회'를 제시했다.

"2011년부터 시행될 계획인 개인간 미술품 거래에 대한 양도세 부과는 가뜩이나 어려워진 미술시장을 완전히 주저앉게 하고 있습니다."표 신임회장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에서 왜 미술만 예외냐는 비판에 대해 "화랑은 부가세, 소득세, 종합소득세를 내고, 작가들도 원천징수부터 소득세까지 내고 있다"며 "이 같은 선입견들을 깨면서 양도세 폐지 운동을 계속적으로 전개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올 가을쯤이면 미술품 양도세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고 이와 관련한 세미나를 여는 등 대국민 홍보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양도세 부과는 대중의 인식이 개선되고 미술 시장이 안정된 이후 시행해도 늦지 않다는 게 표 신임회장의 설명이다.

한편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미술계 분위기는 나아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그는 "최근 '학동마을' 그림이 국세청 그림 로비에 연루됐다는 논란이 불거지면서 미술계의 부정적 인식을 가중시키고 있다"면서 "선물도 뇌물로 여겨지고, 벽에 걸어둔 200~300만원짜리 그림도 오해 받기 싫어 내려버리는 상황이다"고 미술시장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비록 국내 미술계가 전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표 신임회장은 적극적인 사업을 통해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각오를 다짐하기도 했다.

"한국형 798단지, 소호 같은 예술특구를 조성할 계획입니다. 베이징 다산쯔의 798단지도 본래는 군수 공장터였는데 가난한 작가들이 몰리면서 점차 갤러리와 작가 스튜디오, 레스토랑, 아트숍 등이 밀집해 중국을 대표하는 예술단지가 된 거예요. 게다가 지금은 관광 명소로까지 자리매김했죠. 뉴욕의 소호, 뉴멕시코의 산타페이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나라에서도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매개로 관광객 유치효과까지 얻을 수 있는 예술특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표 신임회장은 인천국제공항 인근지역인 인천 남동지역에 798단지처럼 미술과 관련된 모든 문화가 공존하는 예술특구를 조성해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뿐 아니라, 관광의 메카로까지 이어나가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이미 정부는 물론 미술애호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과의 논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은 모두 힘들고 어렵다고 웅크려있어요. 하지만 이럴 때 일수록 앞으로 올 호황과 번성을 준비해야 합니다."표 신임회장은 그 동안 화랑들이 제 살 깎아내리는 일을 많인 한 것도 사실이고, 이에 화랑 스스로가 책임의식을 느끼며 원칙을 지키기 위해 내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화랑협회가 신임회장체제를 중심으로 결속을 다지고 고유의 기능에 내실을 기하고 있는 양상이다.

"국내 미술계의 제2의 전성기를 고대하며 첫 걸음마를 떼는 듯한 마음으로 미술 시장에 봄이 찾아 오기를 기대해봅니다."표미선 신임회장의 다부진 희망에서 안개속 미술시장에 봄이 더 일찍 찾아올 수 있다는 전망을 해본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