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서울대 교수'한국 도시…' 출간 부산·대구·대전 등 6개 광역시 도시미학 관점서 분석

서울대 김민수 교수(미대 디자인학부)가 세간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해직교수' 라는 딱지가 붙으면서다. 90년대 후반, 그는 선배 교수의 친일행적을 지적한 부분을 논문에 인용했고 이것이 빌미가 돼 2000년 초 재임용에 탈락했다. 김민수 교수는 부당 재임용 탈락과 관련한 법적 소송을 지속했고 대법원에서 승소한 후 2005년 다시 대학으로 돌아왔다.

6년여의 해직기간은 유배지 생활과 같았지만 그는 오히려 연구에 전력,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재판을 하면서 <디자인문화비평>이란 잡지를 만들었고, 모 신문사 객원기자로 활동했으며, <멀티미디어 인간 이상은 이렇게 말했다><21세기 디자인탐사><김민수의 문화디자인><필로디자인>등 여러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그의 왕성한 활동은 '연구실적 부족'이란 해임 사유가 부당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드러내는 듯했다.

그는 해직 소송을 제기하고 대학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지난해까지 몇몇 신문과 방송에 도시디자인에 관한 칼럼과 기사를 썼다. 그리고 최근 이를 보완ㆍ수정해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라는 책을 펴냈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도시라는 삶의 터에 쏟은 그의 열정은 무엇일까.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민수 교수는 꼼꼼하게 적은 메모지를 들추며 그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 불연속의 키치화

"예전 썼던 칼럼이 각 연재물마다 단절되는 형식이라면 이 책은 순환 형식이에요. 제가 10년 동안 해온 작업을 전부 종합한다는 차원에서 책을 냈죠. 어떻게 보면 제 과거사 청산이에요."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에서 그는 부산, 대구, 대전, 울산, 광주, 인천 등 6개 광역도시의 역사와 현재를 도시미학 관점에서 분석했다. 각종문헌과 지도를 인용해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고, 도시경관, 건축, 공공디자인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탐사했다.

김민수 교수가 바라본 각 도시는 하나의 유기체와 같은 모습이다. 그는 도시를 "역사와 삶의 체취가 녹아있는 복합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유기체적 성격을 갖고 있는 도시 지층의 두께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도시 디자인'이란 전문영역을 통해 도시국가 한국의 사회 철학적 맥락을 짚은 셈이다.

"전 좋은 도시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자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한의학에서 보면 '체질의학'이란 말을 하잖아요. 사람에 따라 처방이 다른 것처럼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도 도시 정체성을 찾는데서 시작해야죠."

'생명체 도시'는 도시 디자인에 관한 그의 시각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삶과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도시 개발과 도시 디자인에 앞서 필요하다는 것. 서울시가 유럽 도시를 기준으로 도시 미관 사업을 하고, 대구시가 '밀라노 프로젝트'로 도시를 재구성하는 것 역시 체질의학적인 차원에서 보면 해법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는 일례로 부산의 해안 경관이 나폴리나 그리스 산토리노에 못지않지만, 어떻게 가꾸어 갔느냐를 들여다보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고 지적한다. 기원전 문명부터 현재까지 '시간의 켜'가 그대로 축적된 된 나폴리와 비교해 재개발로 새로운 볼거리를 만들어내는 부산은 도시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와 비교해 한국의 도시미학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 교수는 "불연속의 키치(Kitsch, 가짜 또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사이비)화"라고 답한다. "시간이 흐르는 과정으로서 어떤 모습이 유실된 거죠. 한국의 도시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데, 역사 문화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이지요. 또 한편으로 개발주의가 만든 산물이기도 하고요."

아쉬움 저편에 희망도 보인단다. 그는 가로수 심기로 도시 기온을 1.5도 낮춘 대구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공룡발자국과 같은 선사시대 흔적을 품은 울산의 사례를 소개하며 "사람들이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꾸는 것이 도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이 본성을 살리는 것이 도시 디자인의 역할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 디자인이여 철학을 가져라

'그들만의 리그'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나 건축가와 달리 그는 대중에게 비교적 친숙한 디자인 전문가다. 이는 '부당 해직 교수' 사건에 따른 인지 이외에 전공영역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도시 디자인을 비롯한 산업 미학과 인문학을 접목시키는 그는 저서와 칼럼에서 우석훈 씨의 <88만원 세대>를 비롯해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등 각종 인문, 사회과학서를 인용한다. 그의 글은 독자가 자신과 상관없는 디자인이란 개념을 자신의 삶터 안으로 끌어안게 만드는 가교 역할을 한다.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을 통해 그는 '디자이너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도시 디자인에 관한 이번 책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철학'이다. 개인의 철학과 비전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처럼 디자이너와 도시 행정전문가의 철학에 따라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디자인은 장식하고 미화하는 테크닉이 아니라 삶을 약속하는 하나의 의제라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이너를 '독특한 사람''남과 다른 사람'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만나본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남을 현혹하는 이미지로 무장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견해와 본성 대해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말은 김민수 교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다. 지난 몇 년간의 치밀한 연구와 방대한 저서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호응은 그의 이런 진정성이 받아들여진 때문이 아닐까.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