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들(23)"인생의 쓴맛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패배자 정서 담은 '루저문화' 음악으로 풀어내며 마니아 층 확보최대 히트곡 방송금지로 한때 좌절했지만 3집 내며 부활 기지개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부터 헤비메탈을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공부를 잘했지만 글씨를 반듯하게 쓴다는 이유로 반장 한번 못해보고 3년 내내 서기만 맡았던 소년이 본조비나 메탈리카, 헬로윈을 들으며 일탈을 꿈꾸는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5등 안에 들면 기타를 사주겠다고 꼬신 엄마까지도.

'크면 밴드를 결성해야지! 나의 노래로 대중음악계에 잔잔한 혁명을 일으키겠어!' 소년은 먼 훗날 미래의 가상밴드까지 만들어 뮤지션이 된 자신을 상상하곤 했다. 밴드 이름은 '달빛요정'. 학교 앞 만화가게서 읽었던 박봉성 작가의 기업만화 속 비밀결사대 이름에 절로 끌렸던 것이다.

홍익대학교 독어독문과 92학번으로 입학한 소년은 괴테의 파우스트를 읽으며 독일문학의 어두운 정서가 훗날 음악활동에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노래 동아리 '뚜라미'에서 민중가요를 부르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는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김현식과 들국화, 동물원, 유재하로부터 영향을 받아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면 '노래를 너무 못한다', '민중가요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외면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고집도 만만찮았다. '말과 음악형식의 부조화'란 느낌 때문에 민중가요는 결코 부르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던 해,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라는 작사, 작곡, 편곡, 레코딩, 믹스까지 혼자 다하는 1인 밴드를 만들었다. 자체 제작한 1집 앨범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는 '패배자 정서의 결정체'라는 평을 받으며 1만 장이 넘는 판매를 기록,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화두를 던지기 시작했다.

당시 주요 일간지와 텔레비전에 소개되어 주목받던 그에게 "IMF의 설움, 음악으로 달래는 뮤지션"이라는 수식어가 절로 따라다니곤 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1-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 재킷 2-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상상마당 공연 포스터

"행복한 사람은 듣지 마세요"

필자는 어느날 길을 가다 포스터 한 장을 발견했다. 홍익대학교 인근 담벼락에 지저분하게 붙어있는 포스터에는 30대 중반, 아니 40대일지도 모르는 누가 봐도 참 안타까워 보이는 아저씨에게 젊은 청년이 목도리를 건네주는 사진이었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노란 바탕에 빨간 글씨의 경고문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한 사람은 오지 마세요"라고. 어이없게도!

콘서트의 주인공은 5년 전 혜성같이 등장한 1인 프로젝트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이다. 그가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3집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의 추억콘서트를 한다는 것이다. 작년 9월에 3집 앨범이 나왔는데 벌써 추억 콘서트라니! 혹시, 은퇴선언을 하나? 게다가 행복한 사람은 오지 말라는 협박에 가까운 경고 메시지까지 적어 놓은 달빛요정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싸구려 커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장기하와 얼굴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보다 앞서 골방미학의 정서를 끄집어내 '루저(loser)문화'(패배자의 정서를 담은 문화. 비주류 문화라고도 함)를 환기시킨 달빛요정의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이란 노래가 절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달빛요정은 루저문화의 '원조' 격이었다.

"현실에서 저는 이진원으로 살지만 음악을 할 때는 달빛요정으로 살아요. 콘서트를 앞둔 요즘 대부분 연습실에서 살기 때문에 달빛요정의 삶에 충실한 편이죠."

뮤지션 이진원(36) 씨를 서울 홍익대 인근 연습실에서 만났다. 그는 달빛요정이란 글자가 찍혀있는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무대에 오를 때 입는 단 한 벌뿐인 유니폼이라고 했다. 사실,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면 그가 달빛요정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달빛요정이란 이름 때문에 비난도 많이 받았어요. 왜 어울리지도 않는 이름을 쓰냐는 거죠. 노래를 듣고서 마르고 키가 큰 뮤지션이란 환상을 품었다는 여성도 계세요. 차라리 신비주의 전략으로 갔다면 음반이 더 많이 팔렸을지도 모르죠.(웃음)"

1집 앨범 성공으로 정점과 나락 맛봐

이진원 씨는 음악활동을 할 때만큼은 달빛요정에 충실하지만, 자신의 외모가 사실은 요정보다는 호빗족(톨킨의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난쟁이)에 가깝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달빛요정이란 아리따운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가 추구하는 음악철학이자 세계관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달빛요정으로 산 지 올해로 6년째. 소속 레이블 없이 1인 프로젝트 밴드로 시작해 1집 앨범이 모두 매진되는 쾌거를 이루고 정식 레코드사와 계약해 재발매 앨범이 나오는 등 2004년은 그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였다.

2집 앨범 <스코어링 포지션> 또한 시원시원한 펑크 지향의 사운드로 마니아 층을 거느리며 꾸준히 팔리는 앨범이다. 하지만 활활 타올랐던 데뷔 초 인기만큼은 아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곡들이 팡팡 터져 나오는 가요계에서 달빛요정의 독특한 노랫말에 관심을 가졌던 팬들조차 어느새 그의 존재를 서서히 잊기 시작했다.

"저의 최대 히트곡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이 방송금지만 당하지 않았어도 지금보다는 더 잘 나가지 않았을까요? 아니, 차라리 1집 앨범이 대박만 나지 않았어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면서 주말에는 직장인 밴드로 활동하며 평생 음악을 취미로 했을 수도 있죠. 그런데 한번 주목받고 나니까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무대 위에 오를 때의 짜릿한 전율을 즐기며 음악활동을 하는 내내 행복했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탈이지.(웃음)"

자신의 콘서트에 "행복한 사람은 오지 마세요"란 타이틀을 붙이고 '추억 콘서트'라고 명명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3집 앨범 <굿바이 알루미늄>은 연봉 1,200만 원, 월 수입 100만 원이 되지 않으면 음악활동을 접겠다는 '독한'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다. 세상에는 100만 원을 하루아침에 쓰는 사람도 있지만 꿈의 월 수입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번 3집은 달빛요정이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 패배자이며 낙오자라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앨범이죠. 동료 뮤지션들은 제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려요. 뮤지션들이 품는 판타지를 지켜달라며, 왜 그렇게 적나라하게 절절한 속내를 다 비치냐고 핀잔을 주죠. 물론 적당한 픽션도 넣었지만 2년 동안 수도 없이 좌절하며, 엎어버리고, 다시 추스르며 만든 자화상 같은 앨범이죠. 저 또한 울면서 만든 곡이기도 하고요."

달빛요정의 자조적이며 비아냥거리는 듯한 패배주의 정서가 짙게 깔린 노래는 마니아 층이 명확히 갈린다. 왠지 '루저'들이 그의 노래를 좋아할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자발적 패배자'들에게 위안 주는 음악

"루저들은 제 노래 듣지 않아요. 아니, 못 듣죠. 그럴 만한 여유가 없으니까요. 자발적인 패배자들,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 제 노래를 찾죠. 3집 앨범의 마지막 스토리에 해당하는 '칩거'는 골방 속에서 자신을 다독이는 내용이에요. 또 보너스트랙 '사나이'는 제 노래를 끝까지 다 들어준 대한민국 '수컷'들에게 바치는 노래이기도 하고요.(웃음)"

달빛요정의 노래가 가장 잘 팔리는 시기는 바로 1월과 2월이다. 입시에서 실패한 수험생, 재수생, 고시생, 취업 준비생들에게 그의 노래는 특히 인기라고. 달빛요정의 노래는 정확하게 귀에 쏙쏙 들어와 박히는 가사, 비아냥거리는 듯하지만 결국 자기위안으로 끝나는 노랫말, 체념하고 자학하지만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시원하게 내지르는 창법 등이 매력으로 꼽힌다.

그는 함부로 희망을 말하지도 또한 권하지도 않는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아니 더욱 처절한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따라 부르다 보면 '나는 패배자야. 그게 뭐 어때서?'라며 되레 따져 묻는 자신을 발견한다. 왜냐? 우린 아직 패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한 인생에서 진짜 패배자를 가를 수가 있겠는가. 달빛요정의 음악을 듣는 동안 어느새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패배자의 기분을 만끽했다가 빠져 나오는 순간 느끼는 카타르시스 또한 만만치 않다. 그 또한 중독인 것이다.

"노래 연습할 때를 빼곤 나머지 시간은 자취방에 '칩거'해 글도 쓰고 책도 읽죠. 필이 꽂히면 작사, 작곡을 하는 편이에요. 공연이 있지 않고선 뮤지션들의 일상은 '히끼꼬모리'(은둔형 외톨이)에 가까워요. 저는 <음지식물의 그림일기>(가제)로 출판사와 계약도 맺었어요."

문학을 전공한 그의 글 솜씨는 독특한 가사만큼이나 톡톡 튄다. 전업 뮤지션의 삶을 가볍게 스케치하는 에세이를 쓰며 그는 3집 앨범을 기점으로 당분간 '안식년'을 가질 생각이다. 또한 러브송을 만들어 우울한 노래만 했던 달빛요정의 이미지를 변신시킬 계획도 가지고 있다. 10대 후반의 감성을 담은 산뜻한 러브송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대박보다는 하루하루 역전홈런을

"루저들이 이젠 골방 이야기는 그만하고 '혁명'을 일으켰으면 좋겠어요. 각자의 다양한 캐릭터가 모이면 식상한 문화가 좀 더 활기를 띠지 않을까요.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을 꾸준히 실험하는 뮤지션이어야 끝까지 살아 남는 법이죠."

앞으로 마음이 잘 맞는 뮤지션 두 팀 정도를 키우며 인디레이블을 운영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는 이 씨는 인생에 역전만루홈런이 언제 올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의 역전만루홈런이요? 마흔이 되기 전 빚을 청산하고 본전을 뽑아야 오겠죠.(웃음) 풍족하게 대박을 치는 꿈보다는 하루하루를 역전만루홈런이란 기분으로 살아요. 저에게 음악은 일기와도 같으니까요."

"행복한 사람은 오지 마세요"란 콘서트에는 '행복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 같다. 청년실업에 불황, 무한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지친 영혼들이 잠깐 투정을 부리기 좋은 곳이 바로 달빛요정의 공연장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노래조차 시원하고 경쾌하게 부를 줄 아는 달빛요정은 그런 사람들에게 "우울한가! 좌절했는가!"라고 묻는다. 그리고 "덤벼라, 세상아!"라며 크게 내지른다. 그의 노래에서 '위안'을 찾는 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몫이다. 인생의 9회말 역전만루홈런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상 우리는 '자발적인 패배자'다. 하지만 괜히 움츠리지 말고 까짓 거, 그냥 덤벼보는 거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