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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평론가는 '되어가는' 겁니다"
[한국초대석] 장석용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 신임회장
음악·건축 등 여러분야 경험·감상하고 예술적 심미안 쌓아야
영화평론 근거로 연극·미술·문학 등 다른 분야 넘나들어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한 가지 재주를 갈고 닦기에도 만만치 않은 세상, 여러 가지 재주를 능수능란하게 발휘하는 이들은 범인(凡人)의 부러움을 산다. 하지만 소위 이 팔방미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다반사다. 그래서 예부터 어른들은 '재주 많은 놈이 밥 굶는다'는 말을 들어 '한 우물만 파라'고 채근하곤 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여러 우물을 파면서도 각각의 우물에서 양질의 물을 퍼올리는 '능력자'도 분명히 있다. 한국 영화평론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장석용 평론가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태리 생 빙생에서 개최되는 프레미오 그롤레 드 오로(황금금배상) 영화제에 한국인 최초로 심사위원으로 참가하는 등 국제영화제에서도 한국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평론가. '영화평론'이라는 우물을 근거지로 하는 그는, 연극, 춤, 미술, 문학 등 다른 우물을 넘나들며 비평과 창작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보다 나은 영화평 위한 '우물 탐색'의 여정

물론 통섭과 다원예술이 트렌드가 되는 시대, 경계를 넘나들며 현장과 이론에서 분주한 사람들은 이미 적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서 의미 있는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가의 여부. 그래서 그가 춤 공연의 뒷풀이 현장을 자주 찾거나 문신미술연구소 연구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것은 '다른 우물 파기' 작업이 그저 단순한 호기심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처음엔 시나리오를 써서 감독으로 데뷔를 하려고 했는데, 조감독 생활을 하다 나중에 평론으로 넘어오게 됐어요. 그러다 춤 공연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추사 김정희나 솔거의 작품을 모티프로 했던 제 시나리오를 춤 대본으로 바꿔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죠."

하지만 그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분야는 역시 영화계다. 올해는 그가 영화계에 몸 담은 지 40년이 되는 해. 그래서 그는 얼마 전 지난 1998년부터 11년간의 평론을 담은 두 번째 평론집 '가슴으로 보는 영화이야기'를 내기도 했다.

예민하고 날이 선 영화평이 읽히고 주목받는 세상에 '가슴으로 보는'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는 이에 대해 '인생을 알아야 비평을 할 수 있다'며 설명을 시작한다. "영화에서 우리의 토착 이론이라는 게 드물잖아요? 외국의 이론을 번역한 것만으로는 비평을 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보다 나은 비평을 위해서는 역사나 문학, 철학과 같은 인문학에 대한 심오한 공부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해요. 테크닉만으로 쓰는 글은 공허하거든요. 문장 한 줄, 단어 하나에도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담아 '가슴으로 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가슴으로 쓴다'는 말은 언뜻 전문성이 배제된 인상비평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렇지 않다. 이는 영화를 갈가리 찢고 해부하며 자신의 존재를 맹렬히 드러내는 요즈음의 비평 양상과 대비되어 사용되는 말이다. 그의 평론은 우선 한국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기저에 깔려 있다. 범 예술계를 아우르는 넓은 인간관계와 밑바닥 생활부터 경험해온 한국영화계에 대한 애정이 모든 글마다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평은 영화에 '칼'을 대지 않는다. 손으로 가볍게 어루만지며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고 잘된 점을 칭찬한다. 영화평론계의 '맏형'이라는 별명이 비단 그의 경력이나 연배 때문만은 아닌 이유다.

"최근 '워낭소리' 붐도 그래서 좀 염려가 되는 부분이 있어요. 독립영화라는 장르가 관객 200만 명을 동원해버렸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이 장르를 상업영화의 시선으로 재단할 수가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의 새 평론집의 첫 번째 평에는 독립영화로서의 '워낭소리'에 대한 풍부한 성찰이 담겨 있다. 대중에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좋은 영화'의 매력을 꼼꼼하게 살펴 그 장단점을 잔잔히 얘기하는 그의 글에선 여전히 평론가의 '머리'와 영화애호가로서의 '가슴'이 부드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한국 대표 평론가의 책무

예술성과 상업성을 무 자르듯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화평은 분명 현재의 (대중적) 비평 양상과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점점 더 가벼워지고 대중의 입맛에 맞는 글쓰기가 난무하는 지금, 그래서 그의 영화평은 예술비평에 가까워보인다. 때문에 종합예술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다방면의 예술을 경험하고 섭렵할 때, 보다 심도있는 영화 읽기가 가능해진다. 이렇게 보면 열정적으로 다른 분야에의 관심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활동도 이해가 된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영화평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관되게 예술비평으로서의 영화평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관객의 눈은 이미 많이 높아졌고 더 높아질 거에요. 많은 영화제나 디지털 매체를 통해서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대거든요. 그래서 평론가들이 글을 웬만큼 써도 시시하게 보일 수밖에 없어요. 이제 평론가들은 다른 스타일과 다른 방법론으로 글쓰기를 해야 할 때에요."

영화평론이 유독 빛을 내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영화평론은 대중이 '좋은 영화'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혹은 유일한 척도를 제공하는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 영화평론가는 많은 대학생들이 동경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영화기자들의 최종 목적지도 결국 평론가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름의 전문성과 필력을 가지고 인터넷에 리뷰를 쓰는 네티즌의 등장은 평론가의 입지를 점점 좁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좋은 영화'에 대한 평론가와 대중의 인식 차이가 큰 것도 영화평론의 위상을 변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현장의 창작자들이 평론을 외면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덧 위기를 넘어 '사망'을 선고받은 영화평론을 어떻게 되살리느냐의 문제는 모든 평론가들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되어버렸다.

장석용 평론가는 현재 영화평론의 대안에 대해 무엇보다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영화평론에 정답이란 없어요. 그래서 정답을 강요하는 자세도 틀린 거죠. 외국의 유명한 평론가들은 좋은 에세이스트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이즘(ism)'만 가득한 아카데믹한 글쓰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영화평론가를 꿈꾸는 예비 평론가들에게 그는 '평론가가 되려고 하지 마라'는 충고를 한다. "평론가는 되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느 순간 되는 겁니다. 평론가 그 자체가 목표여선 경직된 글밖에 쓸 수 없을 거에요. 음악, 춤, 미술, 건축 등 여러 분야를 많이 경험하고 감상하면서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쌓고 그러면서 평론가가 '되어가는' 겁니다."

그동안 제19대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해온 장석용 평론가는 얼마 전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한국본부(FIPRESCI Korea)의 제6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장석용 평론가는 신임회장으로서 앞으로 매년 크고 작은 국제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직접 참여하거나 다른 평론가들을 보내 한국영화와 세계영화인들과의 교류를 도모하게 된다.

"어떤 평론가가 어떤 영화제에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나가든 가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고 한국문화를 알리고, 나아가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는 데 일조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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