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앤뎁 김석원 디자이너론칭 10년만에 뉴욕 진출… 한국의 로맨틱 미니멀리즘 선보일 것

지난 2월10일, 뉴욕은 평소와 다른 설렘과 분주함으로 끊임없이 술렁거렸다. 거리에는 주먹만한 얼굴과 1미터가 넘는 긴 다리를 가진 여자들이 갑자기 늘어나면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 그리고 3일 후 브라이언 파크에는 거대한 텐트가 쳐졌다. 2009년 F/W 뉴욕 패션 위크의 시작이다.

쇼의 두 번째 날 14일 오후 1시에는 런웨이에 나비가 등장했다. 활짝 펼쳐져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나비 날개를 형상화한 원피스와 코트가 선보여졌고, 스커트에는 나비 날개를 확대했을 때 볼 수 있는 섬세한 세포 조직이 프린트 되었다.

한국인 부부 디자이너 앤디앤뎁의 두 번째 뉴욕 진출작의 이름은 나비(Le Papilionidae)였다. 앤디앤뎁의 앤디, 김석원 디자이너가 컬렉션을 마치고 지난 3월1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채 숨을 돌리기도 전에 물어봤다. 뉴욕에서의 반응은 어땠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미국도 워낙 불경기라 패션 비즈니스에 대한 예산이 많이 줄어서 전체 세일즈 양이 크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이번에는 가방 라인을 추가했는데 여기에 대한 바잉도 기대하고 있어요"

작년 뉴욕에 처음 데뷔한 그가 보여준 작품은 '컵 케이크 플리츠'였다. 컵 케이크를 감싸고 있는 섬세한 주름을 드레스와 블라우스에 적용해 달콤한 봄 아가씨를 만들었다. 그의 의상은 현지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어 현재 맨하탄 블루밍 데일 백화점에서 '봄 신상'으로 판매되고 있다.

"앤디앤뎁 스타일인데?"

지난 99년 앤디앤뎁으로 한국에 '로맨틱 미니멀리즘'이라는 깃발을 꽂은 디자이너 김석원과 그의 아내 윤원정은 야심만만하게 외쳤다.

"뉴욕 브라이언 파크에서 컬렉션을 여는 것이 꿈이에요"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앤디앤뎁 앞에 놓인 일 중에는 쉬운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예쁜 옷과 유명한 옷 중 고르라면 후자를 선택했고, 디자이너는 디자인뿐 아니라 영업에도 능한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시장에서 강산이 한번 바뀔 동안 한 가지 콘셉트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성공 사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해냈다.

그것도 디자이너의 감성을 양보하지 않고 대중에게 어필할 때까지. 이제는 칼라가 달리지 않고 직선적인 실루엣을 가진 미니멀한 코트 안에 여성스럽고 섬세한 드레스를 살짝 비치도록 입은 여성을 보면서 비로소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앤디앤뎁 스타일인데?"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의 시니컬한 멘토

최근 김석원 디자이너는 잠시 런웨이를 떠나 다른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 케이블 TV의 신진 디자이너 발굴 프로그램의 심사 위원을 맡은 것.

미국에서 '프로젝트 런웨이'라는 이름으로 히트를 치며 시즌 6까지 진행된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국판이다. 사전 제작 방식이라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지난 11월에 일어난 일들이지만 지금 인터넷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 대한 이야기로 뜨겁다.

미국판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번역체 대사가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참가자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진땀을 빼며 만든 옷을 두고 이렇다 저렇다 평하는 재미가 쏠쏠하기도 하고, 또 무엇보다 문제점을 콕 집어 조근조근 설명하는 김석원 디자이너의 심사평이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아티스트와 분석은 좀처럼 공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웃음을 터뜨린다.

"처음에 제의가 들어왔을 때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원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일을 벌리는 스타일인데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죠. 자신의 열정을 모조리 쏟아내는 어린 친구들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누구 한 명을 꼽아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모두 잘 되기를 프로그램 내내 진심으로 바랐어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는… 글쎄요. 제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지난 10년, 그리고 앞으로의 10년

앤디앤뎁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뉴욕 진출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그 다음은 무엇일까?

"당시에는 뉴욕 무대에 오르는 것이 꿈이었지만 막상 이루어지고 보니 그건 꿈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알았어요. 저희의 목표는 한국에서 출발한 글로벌 브랜드가 되는 거예요."

뉴욕은 그가 제대로 실력을 펼쳐 보일 수 있는 무대다. 패션을 배운 곳도, 패션 디자이너로서 첫 발을 디딘 곳도, 지금의 파트너인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 곳도 모두 뉴욕이다. 그리고 아무런 연고나 인지도 없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일즈에는 신경 쓰지 않고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뉴욕 패션계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는 벌써 올해 9월에 있을 뉴욕 S/S 컬렉션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연이은 해외 컬렉션 진출에 이번 서울 컬렉션에서도 빠지자 일각에서는 아예 뉴욕으로 나가 버리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근심할 필요가 없다. 최근 부산에 문을 연 신세계 센텀시티 점에서 앤디앤뎁의 새로운 숍을 만날 수 있다.

"제 뿌리는 한국이잖아요. 신기하게도 해외에 나가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적인 것에 대한 아름다움이 더 크게 다가와요. 저와 와이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한국적 감성을 어떻게 세계에 맞게 풀어내느냐가 저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해요. 이제 시작인 셈이죠"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