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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 박진신 "몸으로 하는 제 이야기 한번 들어볼래요"
[문화혁명가] 내일을 꿈꾸는 비주류들 (25)
마임에 모놀로그 접목한 창의적 방식으로 관객과의 소통 가능성 추구해
연극·미술·설치·음악 등 합친 다원예술 지향하는 극단 '푸른달' 운영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학교와 고시원을 오가며 틈만 나면 잠 속으로 빠져들던 고등학생에게 한 평짜리 고시원은 '왕국'이었다. 꿈도 열정도 없는 무기력한 17살, 그에게도 한가지 잘 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낭독'이었다. 그가 소리 내어 책을 읽으면 꾸벅꾸벅 졸던 친구들이 하나 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만 빼곤 그는 수업시간에 실컷 자고 쉬는 시간엔 앞자리에 앉은 친구랑 전쟁놀이를 하곤 했다. 꼭 늦된 아이처럼. 피융! 총탄이 날아오면 엎드려 몸을 피하고, 다시 총을 쏘고! 전쟁놀이를 할 땐 말이 필요 없었다.

고시원에서도 그는 자거나 꿈꾸거나 공상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소리를 내면 옆방에서 벽을 퉁퉁 치며 경고 메시지가 올 것이 틀림없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즈음 자신을 꽃이라 생각했던 그는 꽃 봉우리가 활짝 피는 장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서서히 몸을 움직이며 꽃을 표현하자 신기하게도 추운 방안이 온통 꽃이 만개한 봄처럼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혼자서 상상하는 걸 몸으로 표현하는 데 재미가 붙은 그는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비발디 사계'를 녹음한 테이프를 들고 무작정 명동으로 향한다.그리고 레코드 가게 주인에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혼자만의 몸짓 언어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선 자리가 무대였고 지나가는 행인이 관객이었다. 점점 극에 빠져들자 자신도 모르게 몸에 걸친 옷을 하나, 둘 벗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사계절을 몸으로 표현하는 순간의 희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깨어나니 알몸이었다.

그가 직접 기획, 연출, 연기한 인생의 첫 번째 쇼는 바로 마임극이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굴까? 바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마임 모놀로그를 하는 젊은 마임이스트 박진신 씨(31)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극단 '푸른달'의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예상과는 다르게 무척 낯을 가리는 사람이었다. 어눌한 말투에 부끄러워하며 겸손 떠는 태도에 놀란 건 바로 필자다. 1인극 마임 모놀로그를 하는 사람이 저럴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에게 따라붙는 '차세대 마임이스트'란 화려한 수식어가 무색해지는 순간.

1-박진신이 마임 모놀로그에서 '사계,그리고 인생'을 표현하고 있다
2-마임 '별 따러 가기'공연

배우, 연출, 비디오아티스트 등 다방면 재능

그는 마임 말고 다방면에 두루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배우, 연출가, 비디오 아티스트, 설치 예술가, 일러스트 작가 등 비교적 어린 나이에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끼를 발산해왔다.

지금은 연극, 미술, 설치, 음악, 조명 등을 합쳐 '다원예술'을 지향하는 극단 '푸른달'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박진신'이란 사람은 '전방위 예술가'이거나 '얼치기'(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 둘 중 하나임에 분명했다.

"아! 제가 원래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좀 그래요. 하하. 무대에서도 이러는 걸요. 관객이 직접 참여해 마임을 배우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죠.(웃음)"

어두운 조명 아래 어수룩해 보이는 배우가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무대 위에 서게 된 이유를 털어 놓는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무엇인가,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가' 골치 아픈 질문은 점점 가난한 예술가들의 현실로 바뀌고 슬슬 자신의 치부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부모님의 눈물 이야기에 관객은 울고 웃는다. 남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에서 어느새 우리들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배우의 인간적인 모습과 그의 고민에서 묻어나는 진정성은 팔짱을 끼고 오만하게 보던 관객조차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든다.

이것이 '박진신의 마임 모놀로그'다. 여기에 그가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은 마임이란 신체 언어극을 통해 표현된다. '별 따러 가기', '사냥꾼 이야기', '아버지', '학창시절', '사계, 그리고 인생'이란 마임은 그가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심혈을 기울여 진화시킨 마임이기도 하다.

마임은 뮤지컬이나 연극, 콘서트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는 분명 아니다. 아직 일반 대중에게 마임은 난해한 편이다. 대중의 공감을 얻고 마임을 친근한 장르로 만들고자 박 씨는 마임에 '모놀로그'란 장르를 합쳤다.

"현실의 패배자라 생각한 순간 모두 그만두자고 생각했어요. 고집스럽게 극단을 이끌어가는 게 더 이상 무리라 생각했죠. 저 하나만 믿고 다 포기하고 극단에 들어온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마침표 하나라도 찍자. 관객들 마음에 비수나 꽂고 그만두자. 이렇게 맘 먹었죠."

'박진신의 마임 모놀로그'는 마지막 공연이라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만든 작품이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작년 대학로 까망소극장에서 한달 동안 무대에 올려진 공연은 관객의 호응이 꽤 큰 편이었다. 한번 보러 온 관객은 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다시 관람하기도 했다. 총 관객수는 700여명이 넘었다. 물론 많은 수는 아니다. 하지만 극단 푸른달 단원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숫자였다.

게다가 공연 후기에 그의 모놀로그와 마임을 '가슴으로 받아들였다'는 공통된 의견이 많았다. 앵콜 공연 요청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후원자도 나타났다. 작년 7월 박 씨와 푸른달 단원들은 웃으며 앵콜 공연을 올릴 수가 있었다.

젊은 예술가의 삶 이야기에 공감

"나이든 사람의 통달한 모놀로그는 많아요. 하지만 젊은 사람의 모놀로그는 많지 않죠. 제 이야기는 젊은 예술가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모두의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마임과 모놀로그가 어우러지니까 관객도 어린아이부터 노부부까지 다양하죠. 공연 내내 함께 웃고 함께 생각하다가 극장을 나가시죠. 아마 관객은 연극을 보는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저의 인생을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박 씨는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후 같은 학교 디지털아트과에 다시 입학한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감히 배우가 되겠냐'고 생각해 연극이론학자를 꿈꾸며 들어갔지만 결국 그는 연출가와 배우, 설치예술, 비디오 아티스트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마임은 여전히 독학으로 공부했다.

책을 찾아보거나 공연을 보러 다니며 공부한 것이 아니다. '새'가 되기 위해 3년 동안 새의 움직임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 새의 뼈 구조를 익히고 어떻게 나는지 관찰했다. 날개를 접었다 올리는 새의 움직임을 그처럼 리얼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는 무대 위에서 완벽한 새였다.

박 씨는 자신의 마임이 쉬워 보여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관객이 참여할 때는 누구나 같이 놀 수 있는 생활 속 마임을 보여주기 때문에 마임은 아무나 하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력을 연마하지 않으면 테크닉은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믿고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는 걷기만 7년 동안 연습했다. 상상하며 걷다가, 결국 진짜 마임을 하듯 걷기를 반복한 후 '이게 걷기구나' 깨달았다.

"협회요? 일부러 안 들었어요. 마임에서 정석은 필요하지만 강요는 싫었어요.저만의 브랜드, 독자적 마임을 만들었는걸요. 지금은 제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얼마든지 몸으로 표현할 수가 있어요. 저 마임 잘해요.(웃음)"

박진신 씨는 서울예대 학창시절부터 유명한 '괴짜'였나 보다. 요즘 유행하는'돌아이'나 '4차원' 캐릭터에 가까웠다. 학교에선 '박진신'이란 이름만 들어도 '아! 마임하는 사람'으로 통할 정도였다. 그가 8년 동안 맨발로 학교를 다닌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신발이 답답하다는 이유였지만 사실은, 마임을 연습하기 위해서기도 했다. 게다가 4년 동안은 목과 팔, 다리에 구멍이 뚫린 하얀색 원피스 형식의 무대 의상만 입고 다녔다. 일명 '거지 옷'이었다.

그의 오른 손엔 그의 반려동물 코카 스파니엘 강아지가 늘 동행했다. 맨발에 개를 끌고 다니며 학교 중앙 계단 앞에서 그는 늘 마임을 연습했다. 그를 따라 맨발로 다니는 후배들이 하나, 둘 늘어났다. 신기한 건, 박 씨를 이상하게 보기는커녕 오히려 '행위 예술가'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그는 총학생회장이란 직책을 맡기도 했다. '미친 총학'이 당시 총학생회의 이름이라니 알 만했다. 박 씨가 학교에 머물러있는 동안 학교는 무척 유쾌했었다.

'맨발의 청춘' 함께 보낸 후배들과 극단 만들어

"푸른달 극단은 저랑 함께 맨발로 학창시절을 보냈던 후배들과 공연을 하며 알게 된 지인들이 만든 극단이죠. 비공식 회원은 40명 정도 되고 극단에 '올인'한 멤버는 8명이에요. 마임 모놀로그를 보고 극단 배우로 활동하는 일반인들도 계십니다.(웃음)"

해맑게 웃는 박 씨의 얼굴에는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는 아이가 아직 살아있었다. 그래서일까. 박 씨가 '푸른달'의 이름으로 기획하고 연출, 연기하는 공연은 대개가 따뜻하다. 특히, '보물상자'는 푸른달 단원이 함께 무대에 오른 마임극으로 관객에게 입장료 500원만 받은 공연이다.

비록 '보물상자' 덕에 단원들은 1년 동안 배고픔과 싸워야 했지만 각종 페스티벌에 참가해 우수상을 거머쥐는 등 푸른달이란 극단의 정체성을 관객에게 심어준 첫 번째 공연이라 뿌듯했다. 진정한 보물상자는 각자의 마음속에서 이미 찾은 셈이었다.

"마임의 도시 춘천에 가서 작은 꽃집을 운영하고 싶어요. 먼지 폴폴 날리는 버스 정류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무거운 책가방을 든 초등학생에게 꽃을 무료로 나눠주며 버스가 올 때까지 마임을 공연할 거예요. 마당에 네잎 클로버를 심어놓고 아이들에게 손가락 인형으로 마임을 하는 할아버지로 사는 게 저의 꿈이죠."

아직 나이도 어리고 철학도 예술도 더군다나 지혜도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는 그보다 더 위대한 사랑과 행복, 진실이란 단어를 알고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예술가 박진신의 마임 모놀로그는 어쩌면 순수함을 잃지 않은 서른이 넘은 배우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깊고 향이 진한 묵은지보다 싱싱한 갓김치가 그립다면 말이다!

<박진신의 마임 모놀로그> 2009년 3월 26일~4월 26일. 평일 8시. 주말 4시/7시. 장소: 대학로 청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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