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혁명가] 내일을 꿈꾸는 비주류들 (27)김노암 갤러리 상상마당 전시감독·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 대표신진작가 위주 기획전 호평 '갤러리 상상마당'은 대규모 전시 어울려'아트스페이스 휴'는 젊은 작가들 꿈 펼칠 최소한의 공간 제공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서교육십(2009)

"아! 저도 문화로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에서 만난 '갤러리 상상마당'의 전시감독 김노암(41)씨의 표정은 밝았다. 그가 최근 기획한 '서교육십(西橋六十)2009:인정게임'(이하, 서교육십) 전이 개막 직후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평일엔 20~30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젊은층부터 주말엔 40~50대 중장년층까지 이곳을 찾는 관람객은 다양하다.

'서교육십'전은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갤러리 상상마당'의 연례 기획전이다. 회화, 설치, 사진 등 젊은 작가 60명의 통통 튀는 신선한 작품들은 1, 2부로 나뉘어 두 달 동안 전시될 예정. 그 동안 소규모의 대안공간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지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그룹전인 것이다. 한마디로 '서교육십'전은 큰 맘 먹고 준비한 '현대미술 축제의 난장(亂場)'이라고 할 수 있다.

"작년에 '서교육십'전이 '취향의 전쟁'이란 타이틀로 문을 열었을 때는 갤러리 측에서 출품작가를 직접 선발했지요. 하지만 올해 '인정게임'에서는 미술현장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 60명으로부터 추천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이미 검증을 받은 젊은 작가들인 셈이지요.(웃음)"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이 개관한지 1년 7개월 만에 '갤러리 상상마당'은 미술인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았다. 이곳에서 열리는 신진작가 위주의 기획전은 상업화랑 관계자나 전시기획자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중이다.

"서울예대에서 강의하시는 분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장 하고 싶은 '가상 전시 기획'을 레포트로 제출하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학생 중 40%가 상상마당을 선택했다고 해요. 상상마당이 20대에서 30대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공간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지요."

이런 설문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전시기획자, 미술평론가, 갤러리스트, 교수 등 미술계 각 분야의 비전 있는 전문가들에게 작가 추천을 의뢰했을 때 '갤러리 상상마당'의 정체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대부분 흔쾌히 작가 추천에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올해 '서교육십'전은 전도유망한 현장비평가 60명과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 60명이 함께 참여한 전시인 셈이다.

"갤러리 상상마당은 '규모의 미학'이 있어요. 대안공간 '휴'나 '루프'가 각자 잘할 수 있는 것들이 있듯 갤러리 상상마당은 '서교육십'전처럼 큰 규모의 축제 성향을 띈 대대적인 기획전이 잘 어울리는 곳이죠. 서교동 일대의 작가 60명이라는 콘셉트와 공간의 성격이 잘 맞았던 거지요."

홍대 앞에서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실험적인 작품을 발표했던 쌈지스페이스가 폐관을 앞두고 있어서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상상마당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무명작가든 이름있는 기성작가든 이곳이 젊은 작가 등용문이라는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김노암 씨가 상상마당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6월부터다. 그는 복합문화공간 상상마당이 문을 열기 전부터 1층 아트스퀘어, 2층 갤러리 상상마당, 3층 아트마켓 등 전시 분야 자문위원을 맡았었다.

김씨가 갤러리 상상마당의 전시감독이 되면서 첫 번째 치렀던 전시는 바로 '현태준의 국산품'전이다. 현태준 씨는 한국 비주류 이미지 생산자의 대표적 작가였다.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수필가, 장난감 연구가 등 다양한 타이틀을 갖고 순수와 상업의 영역에서 꾸준히 입지를 다져온 현태준 작가의 개인전은 반응이 꽤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그는 '홍대 앞'이라는 대학가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작가 중 하나였기에 어느 날 홍익대 인근에 우뚝 선 상상마당과 꽤 어울려 보였다.

좋은 전시를 기획하려면 보통 1년 이상의 준비기간이 걸리지만 김노암 씨는 얼마 안 되는 시간을 두고 개관 전시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 후 김씨는 일본의 신예 팝아티스트 나카무라 데쓰야 씨의 한국 초청전을 열기도 했다. 나카무라 씨는 이미 상하이 비엔날레 등의 국제 전시에서 호평을 받은 작가였다. '스피드 파티'라는 주제로 세상에서 가장 빠른 차의 속도감을 내는 경주용 차 모형을 선보였는데 관객 입장에서 그의 전시는 신선함 이었다.

또한 홍성민 씨의 개인전 '리볼빙 사시미:먹어도 좋다는 신호'전은 전시장에 설치된 회전초밥 컨베이어나 영화 '인어공주'나 '사이코' 이야기를 풍자한 행위 등 재기발랄한 전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현태준, 나카무라 데쓰야, 홍성민 씨는 이미 김노암 씨와 국내외 전시를 통해 인연을 맺은 작가이기도 했다.


김노암 그는 누굴까? 그의 본명은 김기용이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나온 그는 세 차례 개인전을 연 팝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올해 6월엔 '코리안 올드팝'이란 타이틀로 런던에서 그룹전을 열 예정이다. 작가로 활동할 때 '김기용'이란 본명을 쓰지만 그 외 전시감독으로 살 때는 '김노암'이란 이름을 쓴다.

"2004년 '국제퍼포먼스 아트 콩그레' 공동 대표로 활동할 때 언어학자이자 대표적 아나키스트인 '노암 촘스키'의 책을 읽으며 그를 동경하게 되었지요." 어느새 '노암'은 6년째 그와 동거하는 이름이 되었다. 현재 그는 '갤러리 상상마당'의 전시감독이지만 2003년 개관한 이래 지금까지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휴(烋)'의 대표기도 하다. 또한 홍대 거리를 대변하는 독립예술가들을 위한 종합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을 진화시킨 주요 인물 중 하나다.

"사비나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99년도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모태였던 독립예술제에서 미술 전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어요. 프린지 페스티벌은 비주류 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종합예술문화 축제죠. 미술전시 타이틀이 '내부공사'였는데 그 당시 '프린지 정신'과 잘 어울리는 독특한 전시였어요."

프린지(fringe)는 변방이나 주변부를 뜻한다. 그는 젊은 예술가들의 자발적인 축제공동체이기도 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8년 동안 일했다.

그가 현장에서 프로그래머와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은 신진작가나 비주류 예술가들을 지원할 공간이었다. 말 그대로 그들을 위한 대안공간이 바로 '아트스페이스 휴'인 것이다.

당시 아트스페이스 휴는 쌈지스페이스와 루프 사이에 위치해 대안공간 '삼형제'의 위용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울마당 길 상상마당 건너편으로 이전해 갤러리 상상마당과 삼촌과 조카 사이로 프렌드 십을 유지하고 있다.

"휴는 비영리 공간으로 매년 '작가 공모전'을 통해 선발한 작가들의 개인전과 기획전 등을 열고 있어요. 젊은 작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제공하는 거죠. 한마디로 그들이 머물다 가는 버스 정류장 같은 곳이지요. 여기서 전시기획자와 평론가들의 눈에 들어 더 넓은 세계를 향해 떠날 채비를 하라는 거예요. 해외에서 이름을 떨친 작가들도 몇몇 배출한 곳이기도 합니다.(웃음)"

가끔 이 '버스 정류장'에 머물렀던 작가들이 넓은 세상에서 '인정' 받고 돌아와 김씨와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바로 예술가들이 자신의 끼와 열정을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트스페이스 휴는 김노암 씨가 전시기획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창(窓)'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하지만 '휴'에서 하지 못하는 전시를 그는 '갤러리 상상마당'을 통해 실현시키기도 한다. '서교육십'전은 김 씨의 또 다른 꿈의 표현이기도 하다.

"갤러리 상상마당은 작가들이 자신을 PR하고 프로모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예요. 미술계에서 젊은 작가들이 맥락을 잡는데 '서교육십'전이 일정 부분 공헌하고 있지요. 미술시장이 죽었다고 하지만 어려울 때 일수록 젊은 작가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전시를 많이 기획할 생각입니다."

1년에 15~20개 정도의 전시를 기획하는 그는 전시감독으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파트너 십을 꼽는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소통과 조화는 필수다. 갤러리 상상마당과 아트스페이스 휴에도 각각 3명의 큐레이터가 있다. 그는 '원맨쇼'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제가 작가 출신 전시감독이어서 연출부분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써요. 깐깐한 시어머니 역할이 제 담당이죠. 전시 개관 바로 전에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미리 예상하고 있어야 해요. 백 프로 만족하는 행사는 없어요. 애초 주제나 목표, 의미를 얼마나 잘 구현해냈느냐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죠."

건축과를 지원했던 말수가 적고 자기 세계가 강해 스스로 왕따를 자청했던 조숙했던 고등학생. 재수를 할 때 처음 '홍대 문화'를 체험하면서 그토록 하고 싶던 그림을 원없이 그렸다던 김노암, 아니 김기용 씨.

12시간 그림 그리는 것도 모자라 새벽엔 홍콩 무협드라마를 보며 하늘을 날고 기는 배우를 통해 대리 만족했다는 그. 인터뷰를 하는 내내 고우영 화백의 만화에 매료되어 "저를 제자로 받아주세요!"라고 수줍게 고백하는 중학교 2학년 소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견습생을 받지 않았던 고우영 화백에게 거절 당하고 끼를 발산할 곳을 찾아 초상화 학원에서 '오드리 햅번'이나 '007의 제임스본드'를 그리던 소년은 훗날 '만화방 프로젝트'전을 열고 '서울 와우북페스티벌' 추진위원 때 '고우영 유작 특별전' 아이디어를 내는 전시감독으로 성장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아니 현실에서 꼭 구현하고 싶은 세상을 전시를 통해 보여주겠다는 김노암.

"예술도 사람이 하는 것이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예술의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전시감독인 제가 할 일이죠. 전시감독으로 사는 방법이요? 간단해요.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전시를 하는 거죠. 최대한 즐겁게 말이죠."

김노암 씨의 최근 롤모델은 헤겔 연구가로 유명한 '알렉상드로 코제브'다. 그가 주장하는 '인정투쟁'이란 개념처럼 세상을 향한 김노암 씨의 '인정게임'은 오늘도 열렬히 진행중이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