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컬렉터를 찾아서] (2)세계 각지 돌며 20년간 모은 칼과 시계 위한 박물관 건립 중


지금 경기도 헤이리 마을엔 '칼과 시계(The Museum of Time & blade)' 박물관이 건립 중이다. 오는 5월 오픈 예정인 이 박물관의 주인은 20년 동안 세계 각지를 돌며 칼과 시계를 수집한 이동진 (공업용 세라믹 제조사 히테크 대표) 씨다.

세계를 제패한 이슬람 칼…칼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본다

"여행을 좋아해서 세계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죠 아마. 중동지역도 많이 다녔는데, 거기서 칼의 매력을 발견하게 됐어요. 칼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보게 되거든요."

이 씨는 이슬람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칼 공법을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이슬람 권 가운데서도 시리아가 세계 최고의 칼을 제조하는데,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 가면 칼 만드는 공방이 수백 군데나 있을 정도라고.

BC330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페르시아의 휜 칼이 마케도니아의 직선 칼보다 싸움에 유리했기 때문이에요. 특히, 당시처럼 말을 타고 싸우는 전쟁에서는 휜 칼이 더 유리하죠. 게다가 이슬람에서는 칼을 만들 때 얇은 철판을 수백 번 접어 두드려 만듭니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 아주 강력한 칼이죠."

이슬람의 칼은 십자군 전쟁 때도 그 위력을 과시했다. 이슬람 군을 지휘했던 살라딘(Saladin) 장군 역시 휜 검을 가지고 적군을 격파해 예루살렘 성지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세력이 인도에 무굴제국을 세워 번창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뛰어난 칼의 힘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 씨의 지론이다.

"저는 원래 기독교인이지만 칼을 수집하면서 저절로 이슬람 문화에도 심취하게 됐어요. 고대 이슬람은 금속공학이 발달했고, 중력의 법칙을 뉴턴보다 훨씬 이전에 발견했으며, 기하학이 발달해 피타고라스 정리도 먼저 나왔죠. 인류 최초의 법전을 만든 것도 이슬람이었고요. 이처럼 이슬람세계가 우수한 문화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칼을 잘 만들어 정치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슬람의 칼은 훌륭한 공법으로 인해 견고할 뿐 아니라 예술적 가치도 높다. 칼의 손잡이가 금과 루비로 장식돼 있기도 하고, 닭 머리나 물고기 등의 모양으로 정교하게 조각돼 있기도 하다. 이처럼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칼 손잡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슬람국가에서 칼과 칼집은 가문의 위상을 나타냈다. 이 씨는 이슬람 왕가에서 사용하던 칼도 여러 점 소유하고 있다. 그 중엔 다리우스 왕의 후예들이 사용하던 칼과 시리아 왕가에서 사용하던 칼도 있다.

시계는 시간정복을 향한 인류의 노력이 담긴 예술

공학도 출신으로 공업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시계에도 관심이 많았다. 시계는 정밀 공업의 기초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시계수집에 열정을 쏟게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계는 시간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노력을 엿보게 해줘요. 페루의 '마추 픽추'라는 높은 산에 있는 공중도시에 가면 해시계가 있어요. 영국 솔즈베리 평야에 위치한 고인돌 '스톤헨지'도 5000년 전 일종의 해시계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있고요.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해시계며 달시계, 물시계, 새시계 등을 발명해 썼지요. 그리고 공업기술이 발전하면서 1초 이하의 시간간격까지 측정해주는 크로노그래프까지 등장했고요. 다 보다 정확한 시간을 알고, 주어진 시간을 아껴 쓰려는 노력 아니겠어요?"

그가 이집트 투탕카멘의 묘를 찾아 갔을 때, 문에는 "나는 과거를 알고 미래를 예측한다"라는 문구가 씌어 있었다. 투탕카멘은 시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막강했던 이집트 왕의 이 한마디는 그에게 시계 수집의 동기를 불어넣어준 하나의 사건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에게 주어진 표준시간은 없다"고 한 아인슈타인이나 "나에게 꿈이 있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고 말한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도 그에게 시간을 정복하려는 인류의 집념을 탐구하도록 영감을 고취시켰다.

새가 우는 것으로 시간을 짐작하게 했던 새시계, 기압의 차이에 따라 움직이는 시계, 해시계 등 옛날 사람들이 사용하던 시계들이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채 그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의 교과서라 불리는 브레게, 파텍 필립, 오메가, 바쉐론 콘스탄틴, 까르띠에 등 세계 유명 시계 브랜드의 역사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즐겨 착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론진 시계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어렵사리 프랑스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의 자금성에 전시돼 있는 시계와 똑같은 탁상시계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수많은 시계 중에서 손목시계는 없고, 모두 회중시계 벽시계 탁상시계 등이다. 그리고 멈춰서 더 이상 가지 않는 시계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를 모으면서 두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나는 물리적이며 절대적인 시간,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면적이며 상대적인 시간입니다. 그 중 내면적인 시간에 의해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지요."

20년 동안 모은 방대한 컬렉션에는 그의 열정과 함께 고단함과 인내심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슬람국가를 여행할 땐 돈을 아끼기 위해 아랍의 시장인 '수크(Souq)'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수크에선 누구든지 양탄자를 깔고 잘 수 있는데, 다음날 아침이면 셰이크가 노숙자들에게 아랍의 빵인 '짜파티'도 나눠준다. 그래서 그는 "이슬람 국가는 돈 한푼 없이도 여행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의 책장에는 칼과 시계에 관한 외국 서적이 가득 꽂혀 있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는 "좋아하는 물건을 모은다는 건 부단한 인내심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글·사진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