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웰빙 시대의 리더 문화 CEO] 남궁요숙 알파색채 대표일제 대체위해 물감사업 시작… 남편은 연구 나는 품질관리 47년 외길 인생

(위쪽 좌) 알파색채 전영탁 회장, 남궁요숙 대표 부부, (아래) 알파색채 물감으로 재도색한 올림픽공원 '평화의 문'

문화 CEO 남궁요숙 ㈜알파색채 대표

박종진 기자 사진=임재범 기자

서울 올림픽공원 정문인 '평화의 문'.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천장 부분인 날개 하단에는 한국의 전통적 단청을 주조로 한 사신도가 그려져 있다. 서양화가 백금남 성균관대 교수의 작품이다.

그런데 이 걸작이 채색한 지 불과 4년 만에 박락현상이 나타나고 변색이 됐다. 다시 제작 의뢰를 받은 백 교수는 고사를 하다 조건을 걸었다. 반드시 알파 아크릴 칼라여야 한다는 것. 이후 평화의 문 날개의 사신도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방금 칠한 듯 색깔이 선명하다.

백 교수가 알파 아크릴 물감을 고집한 건 30여 년 알파 물감을 사용한 경험 때문이다. 외국의 유명 제품과 비교해 손색이 없고 오히려 더 낫다고 믿는다.

국내 1위 물감 제조업체인 알파색채㈜가 그런 위상을 갖기까지는 창업주인 전영탁(88) 회장과 남궁요숙(80) 대표 부부의 47년 외길 인생이 있다.

"60년 초 약방을 그만두고 새 사업을 위해 광고를 냈는데 물감 만드는 사람이 찾아왔어요. 처음엔 망설였는데 모두 일본제를 쓰는 것을 보고 우리 것을 만들자는 생각에 무턱대고 시작했어요."

지난 25일 종로구 평창동 사옥에서 남궁 대표를 만났다. 그는 물감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일제를 대체할, 그리고 남이 하지 않는 '한국 물건 만들기'였다고 말했다. 어릴 적 가까이서 지켜본 친척인 독립운동가 남궁억 선생의 의연한 모습도 은연 중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1962년 창업한 알파색채는 3년 만에 질 좋은 포스터칼라와 수채그림물감을 개발, 일본 제품의 반값에 내놓아 일제의 독주를 막았다.

그로부터 40여 년 알파색채는 '우리의 재료로 세계 명화를'이라는 목표를 내걸고 한눈 팔지 않은 채 연구에 전력해 창업 이래 알파색채가 만든 물감에는 모두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전문가용 포스터칼라 '알파 700' (1969년), 전문가용 수채화물감(1975년), 세계 6번째의 아크릴칼라(1981년), 마커 팬(1985년), 최전문가용 수채화물감(2000년), 최전문가용 동양화채색(2001년), 수채화 과슈(2004년), 전문가용 파스텔(2005년), 최근 개발한 엑스트라 화인(EF) 등등.

"한국 미술재료의 역사는 알파의 역사인 셈이죠. 69년에 개발한 포스터칼라 '알파 700'은 700번의 실험 끝에 개발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어요. 회장님(전영탁)이 고생을 많이 했죠."

전영탁 회장은 연구를 하고 남궁 대표는 품질관리사 역할을 했다. 신제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남궁 대표가 품질을 감별했다. 특히 색깔에 관한 한 남궁 대표는 천부적인 능력을 발휘해 그의 승락이 없으면 제품 출시가 불가능했다.

알파색채는 신제품이 나오면 물감이 필요한 화가들이나 미대생들에게 우선 제공했다. 원로ㆍ중견 화가들이나 서울대 미대 교수와 학생들이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알파 물감을 쓰는 것은 그러한 배경에서다.

알파색채는 물감 지원뿐 아니라 미술상을 제정해 미술 전반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창립 10주년인 1972년에 제정한 '청년작가상'이 그 예다.

이처럼 알파색채의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다양한 미술지원에도 불구하고 국내 물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매우 편향적이다.

"알파의 우수한 제품들이 국내에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요. 과학적인 데이터나 경험자들의 증언이 있는데도 말이죠. 무조건 외국 것이 좋다는 인식이 많아요."

일반 물감은 알파색채가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있지만 전문가용 물감은 외국 것이 낫다는 인식이 크다는 게 남궁 대표의 설명이다.

알파색채는 2월 19일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화가 및 미술계 관련 인사 1000명을 초청해 전문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세계 명품 물감과 알파물감을 비교, 전시하는 시연회를 가졌다. 물감에 대한 종래의 통념을 깨고 알파색채가 세계적 브랜드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다.

이날 시연회에선 변퇴색 시험기를 통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물감과 알파 물감의 차이를 분석한 결과와 20년 넘게 알파 물감을 사용해 온 미술계 원로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전문가용 물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색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변퇴색 시험기에 따라 강력한 자외선과 가시광선을 비롯한 각종 광선에 물감을 100시간 정도를 집중 노출시켜 약 45년 후의 변색 정도를 예측한 결과 알파재료들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리키텍스와 골덴, 프랑스의 루푸랑, 영국의 뉴턴, 일본 홀베인 등 세계 명품 물감 등과 비교해 월등하거나 최소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남궁 대표는 "알파 제품은 최고급 안료에다 독자적인 화학처리법을 사용해 변색이 적고 보존성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알파색채가 1981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전문가용 아크릴물감과 유화물감은 안료배합과 화학처리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돼 전 세계에서 8곳만이 생산할 정도다.

20여 년간 주로 알파물감을 사용해온 원로화가들은 알파재료의 우수성을 경험으로 입증했다. 원로 서양화가 김흥수 화백은 "외국 명품브랜드를 써도 변색을 피하기가 어려웠는데 20년 전 알파제품으로 그린 작품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미술관장을 지낸 이종상 예술원 회원은 "알파 물감으로 그린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 대법원, 행정 관청 등 사방에 있는데 어제 그린 것과 같이 변질이 없다"고 증언했다. 윤명로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알파제품을 써왔고 서울대생들이 지금도 쓰고 있다"고 했다.

이렇듯 유명 원로화가들이 알파제품의 우수성을 증언하고 나선 것은 일종의 '용기'이고 '책임감'이기도 하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알파제품을 지원받거나 사용하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숨겨왔다. 국내 물감을 폄하하는 일반의 인식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알파제품으로 작업을 하고도 이것이 알려지면 컬렉터가 구매를 하지 않거나 반품할까봐 숨긴 거죠. '국산 물감은 변색된다'는 잘못된 인식 때문입니다." 실제 대가의 그림을 수천만 원에 구입한 뒤 국산 물감으로 그렸다는 것을 알고 반환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김흥수 화백은 "국산물감으로 그리면 작품까지 낮은 평가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국내 화가들이 그동안 국산을 외면했는데 이제는 그러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전영탁 회장은 "물감에 관한 한 알파색채가 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다"며 "일본 회사들과 기술 교류를 하고 있고 고이즈미기여시(小泉喜代次), 구라다사브로(食田三郞) 같은 일본의 대가들도 우리 물감을 쓰고는 아주 만족해 했다"고 전했다.

전 회장은 외제물감과 알파물감을 비교실험한 종이를 양복 안주머니에서 꺼내 보여주었다. 변색 퇴색한 외제와 달리 알파는 거의 그대로였다. 좋은 안료를 쓰는 데다 배합 뒤 숙성 과정을 거치고 그만의 노하우를 가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파색채는 자체 연구소를 두고 첨단 물감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고 있다. 연구소를 운영하는 장남 전창림 홍익대 교수는 한양대 화학공학과와 동대학원을 나와 파리 국립대학교에서 고분자화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회장님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큰 아이를 화학과에 보냈어요. 큰 아이도 프랑스에서 회사에 필요한 공부를 했고요."

지난 2월 시연회에서 선보인 변퇴색 시험기를 활용한 비교 시험은 바로 전창림 교수의 아이디어이다.

알파색채는 1974년 국내 최초로 싱가포르에 그림물감을 수출한 이래 현재 일본 및 미국, 캐나다, 유럽, 동남아, 중동 등 세계 50여개 국에 미술재료를 수출하고 있다. 또한 세계 최정상급의 기술을 잇따라 개발하고 수출로 연계하는 화구계의 국가대표 기업으로 2001년 전영탁 회장이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남궁 대표는 요즘'국내 최초'의 미술재료를 개발할 때와 1975년 상공부를 매일 찾아가 '외제추방'운동을 벌여 성과를 거두었을 때를 상기한다.

"전문가용 물감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여전히 외제를 선호하고 일반용 물감은 국내 유통구조의 문제 때문에 어려움이 많아요."

남궁 대표는 장사를 하다보면 '특별한 서비스'를 잘 해야 하는데 자신은 그렇게는 못한다고 한다. 거래를 하면서 세금고지서를 적당히 조작해 매출액을 줄여 그만큼 세금을 포탈하는 걸 말한다. 그가 거래 원칙을 고수하려고 하면 "알파만 무슨 통뼈냐"며 고개를 돌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그는 원칙을 지키면 손해를 보는 현실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래 현실을 감안해 과세율을 5%로 낮추고 불법거래를 하면 엄벌에 처해 정상적인 거래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남궁 대표는 47년간 알파색채를 운영해 오면서 사업이 '양심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고 한다. 어린이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도 하지만 좋은 예술이 나라를 업그레이드시키고 문화예술이 앞서가는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알파색채의 제품이 세계 명품 대열에 들어선 만큼 대대적으로 알려 국내 작가들이 널리 애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알파색채가 명실상부한 국내외 미술재료의 대표주자로 서게 되면 '청년작가상'도 부활하는 등 보다 많은 미술지원 사업도 펼칠 생각이다.

남궁요숙 대표는…



수도사대 가정과를 졸업(1951년)하고 인천 양정여자 중고등학교와 수원 매향 여자중고등 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62년 남편인 전영탁 회장과 알파 색채를 설립해 1977년 사장으로 취임, 1988년 대표이사가 돼 지금까지 경영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법무부장관 공로상, 사단법인 은퇴자협회 감사패를 수상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