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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기증으로 미술의 감동 나눠요"
[한국 초대석/신옥진 부산 공간화랑 대표]
한국미술의 산증인 생사의 기로겪은후 시작
부산시립미술관 등 수백점 헤아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





(아래) 왼쪽부터 박명자 현대화랑회장, 김창열 화백, 조일상 부산시립미술관장, 신옥진 부산공간화랑대표


부산 시립미술관 입구 한편에는 한 남자의 두상이 자리하고 있다.

작가의 얼굴일까 싶지만 부산 시립미술관에 3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한 이를 담은 동상이다. 이 기념상의 주인공은 63년 생애의 반 이상을 한국 미술과 함께 살아온 부산 공간화랑의 신옥진 대표. 부산에서 34년간 화랑을 운영하며 유수의 작가들과 교류해온 그는 살아있는 한국 화랑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난 2월, 허남식 부산시장이 직접 제막식을 한 이 기념상은 미술계에 ‘작품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한다.

화랑미술제가 한창이던 부산의 3월의 셋째 주,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바쳐온 공간화랑에서 신 대표를 만났다. 3월 19일 한국화랑협회로부터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제1회 자랑스러운 회원 상’을 받기도 했던 그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상금도 없고 조촐하게 치러졌지만 제게는 가장 의미 있는 상입니다. 서울에서 오신 많은 미술관계자 분들이 미술관 로비에 모여 축하해주셨어요. 존경한다는 말씀을 하기도 하시고 이번 일을 무척 크게 생각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사회가 참 각박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기도 했습니다.”

‘기증의 생활화’, 그의 모습을 대변하는 말이다. 사회를 ‘커다란 열매’로 비유하던 그는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 먹어온 열매를 언젠가는 다시 채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10여 년 전,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는 마음과 몸을 일치시키며 ‘작품 기증’을 시작했다. 생(生)과 사(死)의 기로를 몇 차례 넘나든 후였다.

“죽음은 가장 거짓말 같은 진실입니다. 뉴스의 사건사고를 보면서 죽음과 나는 별개라고 생각하거나 회피하죠. 주변에서 갑자기 세상 뜨는 분들을 보니,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삶의 흔적이 있더군요. 그들을 보면서 인생은 자신이 가장 잘 정리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렇게 그의 ‘정리하는 삶’은 시작되었다. 집이며 화랑에 보관하고 있던 수많은 작품을 자신이 아닌 다수를 위해서 내어놓았다.

부산 시립미술관에 313점, 경남 도립미술관에 200점, 밀양박물관에 100점, 통영에 있는 전혁림 미술관에 12점, 부산박물관에 30점, 박수근 미술관에 스케치 한 점과 오리지널 판화 한 점 등 500여 점을 헤아린다. 피카소, 모리스 유트릴로 등 해외 유명 작가와 박수근, 김창열 등 국내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니 가격으로 환산하면 수십억을 헤아린다.

경제의 논리가 빠질 수 없는 화랑과 작품의 관계. 하지만 이 작품은 돈의 가치를 뛰어넘어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는 이들에게 감동을 나누어 주고 있다. 미술계에도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음은 물론이다.

미술계에서 ‘작품 기증’은 낯설다. 그동안 가나아트센터가 서울 시립미술관에 민중미술 수백 점을 기증하거나 현대화랑이 이중섭 미술관과 박수근 미술관에 몇 점씩을 기증한 사례가 있었지만 ‘기증 문화’는 형성될 시간이 없었다.



(위) 일본 히로시마 시마네현 '물의 박물관' 앞에서 이우환 화백과 함께 (1992년), (아래) 장욱진 화백과 함께 (1977년)


당연히 주는 이나 받는 이가 모두 서툴기 마련. 신 대표가 직접 기증 작품을 차로 실어 나르는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이들이 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감사해 하던 밀양박물관의 직원들과 밀양시장이었다.

“부산화랑협회 회장일 당시, 회원들과 야유회를 밀양으로 갔어요. 지금은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에는 국내 3대 누각 중 하나인 영남루 옆에 박물관이 있었거든요. 소박한 느낌이 좋아서 들어갔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전시내용이 빈약하더라고요.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 13점을 기증했지요.”

그 소식을 들은 당시 이상조 밀양시장은 그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가치를 아는 그들에게 신 대표는 50점의 작품을 더 기증했다. 그러자 밀양시는 아예 그를 명예시민으로 위촉했다. 밀양시의 네 번째 명예시민이 된 신 대표는 37점을 더해 100점을 채워 넣었다. 부산시 역시 이번 기념상 제작으로, 기증자에 대한 예우의 전례를 남기게 되었다.

상하이 아트페어의 참여 작가이기도 한 신 대표가 화랑을 시작한 인연이 재미있다. 폐 수술 후 요양 중이던 그는 화가 김종식, 서상환에게서 서양화를 배웠는데, 70년대 초 화랑을 해볼 것을 그들이 권유했던 것. 화랑만으로 운영이 어렵다고 여긴 그는 요즘의 갤러리 카페 형식의 다방을 열었다.

그림을 전시하고 찻값으로 적자를 면해보고자 했지만 꿈에 불과했다. 음악, 연극, 무용 등 예술인들의 아지트가 되면서 30여 석은 일찌감치 가득 찼지만 온종일 자리를 지키는 탓에 회전되지 않아 돈이 벌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외상장부는 하루하루 늘어만 갔다.

“외상은 곧 ‘받을 수 없는 돈’이란 것을 한참 뒤에나 알았어요. 외상값까진 괜찮은데, 축의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찻값으로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 그것으로 망하게 된 거죠. (웃음)”

그러나 2년 만의 장렬한 순직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다방을 드나들던 시인과 소설가들이 친구들의 그림을 가지고 하나 둘 신 대표를 찾아왔다. 그러면서 당시의 블루칩 작가로 불리던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천경자 등 쟁쟁한 화가들의 작품을 만지게 되었다. 한국화랑협회의 초대 감정위원장이자 현재도 다수의 옥션에서 위작 감정을 하는 그의 모습은 당시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

최근 박수근 작품에서 불거진 위작 시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는 이 같은 비유로 갈음했다. “전문가가 가장 이기기 어려운 사람이 아마추어예요. 다시 말하면, 아마추어가 의견을 내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이미 전문성 있는 일이 아니란 거죠. 대학교 논문을 유치원 아이들한테 평가해달라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추어의 설익은 의견과 성가심은 결국 전문가들을 몸져눕게 하죠.” ‘마녀사냥 식’의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날 선 비판은 이어졌다. 그러나 풀어가는 과정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일지언정, 계속하다 보면 ‘바위가 깨지지는 않아도 노랗게 물들지는 않겠느냐’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작가들과의 교류에서 초반은 장욱진 화백과 후반은 이우환 선생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신 대표. 그래서 종종 두 작가에 대한 강의를 하는 그와의 인터뷰 말미. 마침 일본에 머무는 이우환 선생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화랑미술제와 관련해 경기 한파에 따른 한국 미술시장을 염려하면서 소규모 아트페어가 대세인 외국의 예를 권유하기도 했다.

“이우환 선생의 존재는 한국미술에 큰 위안이 됩니다.”백남준과 함께 세계에 한국미술의 위상을 알린 몇 안되는 작가라는 게 신 대표의 설명이다.

신 대표는 김춘수 시인등 문인과의 교류도 깊어 10여년 전부터 시작(詩作) 활동을 해왔다. 3월말에는 30여년 전통의 시 전문지 <심상(心象)>에 14편의 시 중 3편이 당선돼 신인 시인상을 수상, 정식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에게서 한국 미술의 획을 그어온 작가들의 비사를 들으면서 국내 미술 기증의 모범으로, 한국미술의 산증인으로 외길을 걸어온 신옥진 대표가 앞으로 우리 미술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지 자못 궁금해졌다.

신옥진이 말하는 '나의 컬렉팅 철학'




작품을 대할 때 예술성을 가장 우선시한다. 작가 선별은 물론이고 그 작가의 가장 예술적인 작품을 수집한다는 기준을 지금껏 고수하고 있다. 요즘 미술이 상품화되어 예술의 본질보다는 장식성을 쫓는 경향이 있다.

그만큼 예술품을 보는 안목도 얕아졌다. 순간적으로 어필하는 작품을 좋아하고 작가들 역시 팔고자 그런 경향을 따라가는데, 결국 살아남는 것은 예술의 무게와 가치다.

"예술성이라 함은 작가의 철학을 말하는 것인가?"(기자)

작가라면 얕던 깊던 모두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깊이의 문제다. 궁극적으로 예술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져주어야 한다. 이 예술가는 어떻게 태어나고 자랐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품을 형상화 시켰으며 왜 이 작품이 위대한가를 더듬는 과정은 곧 인생의 철학과 의미를 찾는 것과 일치한다.

예술의 감상은 인생의 성숙도와 상통한다. 처음 발을 디딜 때는 깊지 못하더라도 차츰 깊이를 찾아가면 된다.

"젊은 작가들에게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다."(기자)

이우환 선생이 하신 말씀을 단적으로 인용해보겠다. 과거와 현재의 예술가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 있다. '예전 예술가들이 빵모자를 쓰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다방에서 낭만을 이야기해 왔다면 오늘날의 예술가는 반드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 그 지식을 활용해 문화가 아닌, 문명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문명을 예견할 정도로 세상을 앞서 읽어내야만 현대미술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가령 미래에는 '어머니'와 '대지'라는 단어가 사라질 거라고 한다. 모성의 부재의 시대에 '어머니'가 아닌 양육 로봇이 생길 것이며, 거리에 깔린 아스팔트는 흙을 덮고 있다. 곧 예술가는 지식인이 됨과 동시에 자연인으로 회귀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공간화랑 신옥진 대표는…




1947년 부산 출생. 서울신문사 기자를 거쳐 1975년부터 부산에서 공간화랑을 운영해왔다. 현재 해운대 본점과 서면, 두 지점에 공간화랑이 있다. 한국화랑협회 초대 감정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부산청년미술상 제정을 통해 20여 년간 부산 신진작가들의 등용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해운대포럼 회장, 부산 시립미술관 자문위원, 다수의 옥션에서 작품 진위를 감정하고 있다. 1998년부터 부산 시립미술관, 부산박물관, 경남 도립미술관, 밀양박물관, 통영의 전혁림 미술관, 박수근 미술관 등에 총 500여 점의 작품을 기증해왔다.

이에 부산시는 부산시립미술관에 무쇠로 만든 신 대표의 기념상을 세웠고 밀양시는 그를 밀양 명예시민으로 위촉했다. 올 3월에는 시 전문지 <심상>의 신인상을 수상, 시인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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