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혁명가] 내일을 꿈꾸는 비주류들 (28)신춘수 오디뮤지컬컴퍼니 대표한·미 합작 프로젝트 '드림걸즈' 제작자로 본토 무대 도전장'그리스', '지킬 앤 하이드' 등 작품으로 흥행 능력 검증받아

문화를 향유하는 안목이 다양해진 요즘 주류문화의 식상함에 반발하는 대중이 늘고 있다. 그 동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주류문화보다 비주류문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는 추세다. 문화를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기엔 이미 둘의 경계는 모호해졌다.

하여, 비주류는 이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아웃사이더나 이단아가 아니라 ‘비전’이 있고, 예술세계에 ‘비주얼’이 있으며, 무엇보다 앞으로 ‘비상’할 수 있는 재주를 지닌 미래가 밝은 문화인들이다. 뚜렷한 주관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나가는 ‘내일을 꿈꾸는 비(飛)주류’. 그들만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Mr. Shin’을 만났다. 서울 역삼동 화화빌 3층에서 본 그는 보랏빛 꽃무늬 남방에 베이지색 수트, 청바지에 컨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간 큰 프로듀서 Mr. Shin’으로 통한다는 그는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에 곱고 섬세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프로듀서’나 ‘대표’라는 직함보다는 ‘배우’나 ‘연출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Mr. Shin’.

“주말에 저를 위한 시간을 가졌어요. ‘드림걸즈’란 커다란 프로젝트가 제 어깨를 짓누른 지 2년 만이네요. 토요일은 삼청동을 걸으며 오랜 만에 봄 햇살을 만끽했고 일요일은 청담동 일대를 쇼핑하며 그 동안 고생한 저에게 몸에 맞는 수트와 구두를 선물했어요.”

뮤지컬 ‘드림걸즈’가 1981년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태어났다. 100억 원대의 제작비, 한국 프로덕션이 주체가 되어 미국 브로드웨이의 제작자, 스태프들이 참여하는 한ㆍ미 합작 프로젝트인 ‘드림걸즈’가 세계 최초로 닻을 올린 곳은 다름아닌 한국이다.

거기에 역대 토니상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해외 스태프까지 참여해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서울에서 브로드웨이로 뻗어나간다는 꿈으로 만든 ‘드림걸즈’는 2월 27일 오프닝 이후 관객과 언론의 호평으로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했다.

오디뮤지컬컴퍼니(이하 오디)의 신춘수(42) 대표는 막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이야기했다. 그의 인생은 아마도 ‘드림걸즈’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 분명했다. 글로벌한 제작진과 그보다 더 글로벌한 스케줄을 감당하느라 ‘드림걸즈’프리뷰가 끝난 직후 실신해 ‘링거투혼’을 발휘했다는 소식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다.

“‘아폴로씨어터’에서 11월부터 시작되는 투어공연 최종 오디션 때문에 미국 일정이 잡혔어요. 올해는 어느 때보다 해외 출장이 많을 거예요. 저 또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프로듀서로 거듭나도록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지요. 오디가 세계적 뮤지컬 컴퍼니로 도약하려는 첫 노크가 될 겁니다.”

‘월드 프리미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뮤지컬 ‘드림걸즈’를 만들고자 지난 2년 그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할 대목이다. ‘드림걸즈’는 공연제작자로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게 그를 이끈 견인차라 할 수 있다.

“‘드림걸즈’라이선스 계약을 위해 미국 측 프로듀서인 존 브릴리오를 처음 만났을 때 일이죠. 뮤지컬 ‘코러스 라인’프로듀서인 그는 뮤지컬 ‘드림걸즈’원작 연출가 마이클 베넷의 담당 변호사이기도 하죠. 그를 보자마자 브로드웨이 진출에 대한 저의 구체적인 꿈 이야기를 했어요. 이미 많은 나라에서 라이선스 계약 문제로 그를 찾아왔지만 꿈 이야기로 자신을 설득한 사람은 미스터 신이 유일하다고 하더군요. 저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받아들인 거죠.”(웃음)

뮤지컬 ‘드림걸즈’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화려함’이라 할 수 있다. 무대는 황홀함을 넘어 ‘쇼 뮤지컬이란 이런 것’이라는 듯 관객의 눈을 압도한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LED(발광다이오드) 패널 5개가 상하좌우 360도로 회전하며 무대를 자유자재로 변형시킨다.

거기에 400개의 조명기와 600여벌의 의상, 112개의 가발, 무대는 스크린의 역할까지 겸한다. 007가방을 주고 받고 드러누운 채 춤추는 명장면을 위해 3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녹화했다.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다차원적인 무대 메커니즘은 경이로움에 가깝다.

제작진 또한 환상의 ‘드림팀’이다. ‘드림걸즈’의 브로드웨이 초연 작곡가 헨리 크리거, 연출과 안무에 ‘사이드쇼’의 로버트 롱버톰, ‘프로듀서스’무대 디자이너 로빈 와그너, ‘헤어스프레이’의상 디자이너 윌리엄 어비 롱, ‘애니’의 조명 디자이너 켄 빌링턴 등 제작진이 화려해 ‘티파니 그룹’이란 별명이 붙었다.

“‘드림걸즈’로 브로드웨이에서 인정받는 것이 제 꿈이죠. 그들만의 리그에 뛰어드는 건 만만찮은 일이겠지만 해외에서 인지도를 쌓아나갈 자신도 있어요. 이제 시작인 거예요.”

‘드림걸즈’는 가수가 꿈인 디나, 에피, 로렐이란 세 소녀의 꿈 이야기다. 신 대표의 인생 또한 뮤지컬만큼이나 꿈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설앤컴퍼니’에서 ‘사랑은 비를 타고’를 기획하며 뮤지컬계에 입문한 그는 2001년에 그 작품을 들고 독립했다. ‘세계 공연예술의 문을 연다’는 의미의 ‘Open Door’에서 이름을 딴 오디뮤지컬컴퍼니를 차린 것도 꿈을 향한 첫 발걸음이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회사를 차려 ‘작품에 꽂혀있는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그에게도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확신이 들면 밀어붙이는 추진력은 아무도 말리지 못해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바로 ‘돈키호테’다.

‘맨오브라만차’도 초연 흥행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흥행 성적표를 거머쥐었고 조승우가 빠진 ‘지킬앤하이드’의 장기공연을 기획해 대박을 터트린 인물도 바로 그다. ‘그리스’, ‘맨오브라만차’, ‘지킬앤하이드’, ‘올슉업’등 오디의 4대 흥행카드는 신 대표의 돈키호테 정신이 없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서울예대 영화과 시절부터 작은 프로덕션에서 광고 제작, 편집, 카피 등 안 해본 일이 없단다. 배우지도 않은 일을 척척 잘 해내 처음엔 자신이 천재라고 믿었다. 또한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이 조감독에서 물러나자 ‘어이없게’ 고속 승진해 처음 사회생활을 조감독부터 시작했다고. 그 작품이 ‘비오는 날의 수채화’다.

“얼마 전 2001년에 쓴 ‘꿈 일기장’을 봤어요. 브로드웨이 진출과 영화감독이란 미래의 꿈이 적혀 있더라고요. 브로드웨이 진출은 이제 시작했으니 신춘수 개인의 꿈인 영화감독을 이뤄야지요.(웃음)”

유독 꿈이란 단어를 많이 쓰는 그의 이야기는 허황되기보다 오히려 구체적이었다. 이탈리아 감독 비토리오 데시카의 ‘자전거 도둑’같은 작품성과 감동 두 가지에서 인정받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그는 또 자신에게 어쩌면 배우의 피가 흐르는지도 모르겠다고 심각하게 고백한다.

세계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 ‘드림걸즈’오리지널 프로듀서 신춘수의 행보는 어쩌면 모두가 이루고 싶은 또 다른 꿈의 변형일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난다면, 댄스가수로 살고 싶어요. 월드스타 비 같은 댄스스타!” 다음 생의 꿈을 벌써부터 이야기하는 신춘수, 그는 뮤지컬계의 ‘드림보이’가 틀림없었다.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