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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처럼 느껴지는 국악 기대하세요"
박일훈 신임 국립국악원장
시대변화와 관객 눈높이 맞춘 교육, 참신한 공연으로 대중화 청사진 제시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매년 크리스마스 시즌마다 ‘호두까기 인형’으로 ‘한 철 장사’를 다 했던 발레는 최근엔 공연에 앞서 해설 서비스와 같은 눈높이 접근법으로 발레 대중화에 있어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고전의 진중한 선율을 전파하는 클래식 음악도 화려한 공연장을 벗어나 ‘찾아가는 음악회’로 대중 속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서양 예술들이 이처럼 ‘헌 부대’를 버리며 ‘새 술’을 따르고 있는 지금, 전통예술을 대표하는 국악의 현재는 어떨까. 최근 간간이 등장하는 퓨전국악 그룹들의 활동을 제외하면 우리 춤, 우리 가락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설이나 단오에 봤던 씨름 시합의 막간 공연 정도가 대부분이다.

타 장르에 비해 대중화 작업이 소극적이고 장르 간 크로스오버도 그리 활발하지 못한 현실에서 국악계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국립국악원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한 박일훈(63) 신임 원장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으며 ‘국악의 대변신’을 선언하고 있다.

교육 통한 ‘접촉’ 늘려 친숙해져야

박일훈 원장이 말하는 국악의 대중화 해법이란 그간 국악계가 보여줬던 고색창연한 대안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삿갓을 쓰고 수염이나 쓰다듬고 있는 한 국악의 미래는 없다’고 일갈하는 듯하다. “결국 이 문제는 모든 이가 국악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들으러 오지 않는다는 것 아닙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국악의 대중화란 한마디로 국악을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국악의 저변 확대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가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교육 문제다. “우리가 태어나서 ‘아빠, 엄마’를 수천 번 반복하며 말을 익히게 되듯이, 국악도 자주 듣고 접해야 하는데 그것이 이제까지 등한시되어 왔다는 것이죠.” 특히 그가 지적하는 교육체계의 문제점은 교과 과정에서 국악의 누락이다.

국악 관련 과목이 미흡하거나 아예 없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있는데 이들에게 국악 대중화를 외쳐봤자 공허한 외침일 될 뿐이라는 것. “국악이 뭔지도 모르고 접해보지도 않았는데 당연한 반응인 거죠. 그래서 이 문제를 풀려면 다시 교육의 문제, 적극적인 홍보의 문제, 관련 프로그램의 개발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박 원장이 대중화와 관련해 중점을 두고 있는 연령층은 기성세대가 아니라 청소년층, 청년층이다. 국악원에서도 이런 차원에서 각종 악기를 외부에 비치해두고 만져보며 ‘가지고 놀게’ 하고 있다.

물론 국악계 일각에서는 이런 시도를 두고 ‘우리 악기를 너무 함부로 대하게 하는 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박 원장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 “클래식 예술들이 대중에 멀게 느껴지는 이유도 결국 ‘낯설기’ 때문이거든요. 자주 접해보고 직접 만져본다면 그 예술이 훨씬 가깝게 느껴질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교육용 악기’와 공연 비디오 등 영상 콘텐츠를 보급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접하게 하는 것도 좋은 대중화 방안의 한 방법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국악 관련 영상 콘텐츠 제작도 그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국악원을 잠시 떠나 대학 강의를 다니던 시절, 거문고와 가야금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 선이 각각 몇 개인지도 모르는 대학생들의 모습에 그는 충격을 받았다. 또 영상세대에게 말로만 악기를 설명한다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판단해 자신이 재직 중 만들었던 공연 영상물을 가져와 틀었는데, 이 또한 질이 현저히 떨어져 자신이 보기에도 민망할 수준이었다는 것.

“속으로 정말 많이 반성했습니다. 옛것만을 고수했던 그 옛날의 공연 양상도 문제였지만 그것을 영상물에 담는 기술 또한 너무 뒤처져 있더라구요. 이제는 시대에 맞는 첨단의 국악 공연과 함께 그것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기술자들과 함께 국악 영상물을 제작해야 할 때입니다.”





기존 모습 고수보다는 시대 변화 발 맞춰야

하지만 이런 변화에의 노력은 전통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보수적 시각과 종종 충돌을 일으킨다. 실제로 최근 일련의 ‘퓨전국악’들에 대해서도 이를 국악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전문가들마다 입장이 분분하다. 국립단체의 수장으로서 박 원장이 바라보는 퓨전국악은 어떨까. 그는 뜻밖에도 그것을 ‘희망의 시작’이라고 표현한다.

오히려 그는 퓨전국악에서 시작해서 전통음악으로 저변을 넓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전통음악의 모양을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기존의 전통음악을 원형 그대로 가져와 보여주면서 ‘어때, 좋지 않냐’라고 하는 태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이 시대’의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야금, 거문고, 해금 등 우리 악기를 통해 기법만을 변주하는 새로운 음악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어쨌든 그것도 ‘국악’이니까요. 오늘날 우리가 한옥에 안 살고 아파트에 살지만 우리의 정체성엔 변함이 없듯이 말입니다.”

이렇듯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정신이다. 새롭게 변화된 국악에도 여전히 우리 음악의 정신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변화의 희망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 원장은 퓨전국악을 비롯한 모든 실험적 음악들과 시도들을 더욱 지원하고 육성시켜야 한다고까지 말한다.

“모두 흰옷만 입으면 재미없지 않아요? 이제는 국악도 다양성이 있어야 합니다. 전통이 중요한 건 오랜 세월 갈고 닦은 예술로부터 현재의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일 오래된 음악은 동시에 현대음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의 말대로 조성이 없고, 선율이 불분명하며, 형식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점 등은 한국의 고전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고 동시에 퓨전국악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기도 하다. 박 원장은 현대의 국악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국립국악원이 가진 임무라고 말한다.

“이런 시도를 통해 차츰 국악에 친숙해지고 직접 공연을 접하면서 국악이 친숙하게 느껴지게 되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국악이 애인처럼 느껴질 때, 국악 대중화는 이루어지게 될 겁니다. 이런 모습이 제가 생각하는 국악 대중화의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새로운 국악의 시대, ‘작품’으로 승부한다

박일훈 신임 원장이 하는 ‘선언’들은 언뜻 당연해보이는 말인데도 보다 혁신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것은 국악이 그간 보여준 보수적 태도이기도 하고, 박 원장이 오랜 시간동안 국악원에서 근무하며 국악원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침체에 빠진 국악계와 변화의 기로에 선 국립국악원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을 지게 될 박 원장의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 때문에 박 원장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다.

“정보화 시대를 맞이해서 관객의 수준은 하루하루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이런 시대에 맞는 국악을 보급하고 그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동력 엔진을 재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국악 공연은 지금보다 융통성을 발휘해서 무대전환과 첨단 영상의 결합이 이루어지는 등의 시도를 통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통음악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새로운 국악의 모습은 뭔가 늘 새롭고 볼거리가 있는 공연이다. 관객의 기대와 수준을 뛰어넘어 입을 벌리고 감탄하게 만드는 공연이다. 그는 자신의 소임이 이처럼 관객의 의식과 눈높이에 맞춰 국악의 모습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국악도 역시 콘텐츠 육성과 개발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국악은 예술 분야에서 ‘꼴찌’여서 늘 지원의 대상이었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습니다. 이제 국악은 ‘돌봐줘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이제 ‘1등’을 지향해야죠.”

박 원장과 국립국악원이 만드는 ‘당당한 국악’, ‘1등 국악’의 첫 걸음은 우선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공연이다. 바로 내실 있는 ‘작품’의 준비다. 그는 서울을 비롯해 전국 4개의 국악원을 이용해 지역별로 특성화된 국악 작품을 만들고, 특히 3년 후 공연까지 생각하고 만드는 장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다.

“매년 그때 상황 봐서 만드는 단발성 공연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더 오랫동안 생각해서 진정성 있는 공연으로 다가가야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가 있는 겁니다. 현재도 관현악 공연들은 많은데, 제가 보기엔 실상 재미있는 공연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작품’을 만들어서 저작권을 강화시켜 국악을 가지고도 ‘먹고 살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 원장은 그간의 풍부한 실무와 행정 경험으로 이런 의욕과 계획들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인정한다. 냉정하게 보면 단기간 내에 국악 저변의 확대나 국악 관객의 육성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생각하는 본격적인 국악 대중화의 결실은 앞으로 20~30년 후에 맺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허황되지 않고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자는 그의 목소리엔 유독 믿음이 간다. 국립단체장이라는 공인의 입장보다는 ‘국악인’으로서의 국악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전통은 한 번 끊어지면 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 재해석의 노력이 필요한 겁니다.”

박일훈 신임 국립국악원장은…




1962년 국악사양성소(現 국립국악중고등학교 전신)에서 가야금 전공. 서울대 음대와 단국대 음대 대학원에서 작곡 전공. 1974년 국립국악원에 들어와 연구원, 전속연주단 연주원으로 재직, 여민락·종묘제례악·수제천·경풍년 등의 전곡 연주, 장악과장, 악사장 재직시 각종 공연을 기획·제작, 국악연구실장 및 국악 FM방송 기획실장 역임, 국악연구 및 교육과 국악 방송을 통한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애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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