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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만든 티셔츠와 찾잔 구경하세요"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 전문 매장 '그루' 이미영 대표
인도·네팔의 여성 노동자들이 만든 옷과 소품에 정당한 대가 지불
빈곤 국가에 희망을





황수현 기자 sooh@hk.co.kr
사진=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패션에도 윤리가 존재할까? 패션은 그 사회적 본성 상 매몰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수단으로서의 패션은 타인과 나 사이에 명확한 선을 긋는데 자주 사용되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도도하다.

그렇다면 패션의 태생적 측면에서는 어떨까?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옷에 적게는 2%, 많게는 100% 함유되어 있을 폴리에스테르의 제조 과정에서는 면역 체계를 파괴하는 질소와 탄화 수소, 유황산화물 등이 배출된다.

패션이 착해지기 위해서는 불우 이웃 돕기 자선 의류 행사 외에는 정녕 방법이 없는 것일까? 하지만 경복궁 근처 안국동 골목에는 좀더 근본적이고 범지구적인 착한 패션이 존재한다.

“이 머플러는 네팔에서 만들어졌어요. 히말라야에서 자생하는 알로라는 식물에서 섬유를 채취해 실을 만들고 직조하는 과정까지 전부 원주민의 손으로 이루어진 제품입니다.”

안국동에 자리 잡은 국내 유일의 공정무역 패션 매장 ‘그루’의 이미영 대표가 말했다. 그녀가 두르고 있는 머플러는 따로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한 눈에 다름이 느껴진다. 입에서 살살 녹는 패스트 푸드를 먹다가 약선 음식을 대할 때처럼, 착 감기는 맛은 부족해도 살아 숨쉬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머플러뿐만 아니라 그루에 있는 옷들 대부분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조직이 성글고 디자인이 단순해, 마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디자이너의 쇼룸을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옷들을 디자인한 주인공들은 네팔과 방글라데시, 라오스, 인도 곳곳에 퍼져있다.

빈곤에 시달리는 제 3세계 국가의 여성들이 만든 옷을 수입해 그들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나가서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절망에 빠진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하는 것, 이것이 요즘 그루 이미영 대표의 최대 고민 거리다.

“어떻게 하면 더 비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자그마한 몸집에 눈빛이 당찬 그녀는 애초에 패션과는 거리가 먼 유형이었다. 오히려 남들이 패션에 눈뜰 시기인 대학교 시절, 그녀는 민족과 계급이라는 이슈를 가지고 학생 운동에 투신했다. 졸업 후 우연한 기회로 들어가게 된 환경 운동 단체에서 그녀는 민족을 초월하는 좀더 넓은 세상을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주제로, 92년도에는 전 세계가 이 주제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미영 대표는 여성과 환경은 무관하지 않다는 주의인 에코 페미니즘을 접하고 여성환경연대에서 활동을 시작하는데 이때 처음으로 목격한 네팔, 방글라데시 등 제 3세계 여성들의 생활은 그녀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루에 두 끼를 해결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그들 앞에서는 그 외의 것들에 대한 고민 자체가 사치였다. 어떻게 하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그들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중 공정무역이라는 단어에 눈을 뜨게 되었다.

“세상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 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여성이더군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정무역이 실제로 큰 역할을 하고 있더라구요. 돈을 벌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무기력하게 있는 그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유일한 빛이에요.”

그루의 옷은 수십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진다.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된 식물에서 섬유를 채취하고, 섬유로 실을 만들고, 그것을 염색하고 다시 베틀로 직조해 워싱과 다림질 과정을 거친 후 재단해 봉제하기까지 모든 과정이 각각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제반 과정을 한 곳에서 해결하려는 요즘의 패션 사업 구조를 생각한다면 퇴보도 이런 퇴보가 없다.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을 일자리로 불러 들이기 위한 것이다. 레이스 하나, 단추 하나를 달 때도 디자인과 함께 몇 개의 일자리가 더 만들어질까 하는 고민이 뒤따른다. 모든 제작 공정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들은 일절 배제된다.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사용하려고만 한다면 네팔이나 인도에서도 중국산 부자재는 얼마든지 쓸 수 있다. 면화 농업에서도 농약을 쓰는 것이 더 편하다. 그러나 공정무역에서는 원단부터 부자재까지 친환경을 표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블라우스는 한 벌에 6만8000원선. 3세계 국가에서 만들어진 옷 치고 비싸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블라우스가 거친 수많은 손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이들의 삶의 질이 껑충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하루에 2끼를 먹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 딱 거기까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밝다.

“직접 보지 않고는 그 절망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남자들이 농사를 짓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해요. 게다가 걸핏하면 홍수가 나서 이뤄 놓은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리죠. 넋 놓고 있던 그들이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이나마 저축을 하게 되고 비로소 미래를 생각하게 돼요.”

뜻 깊은 일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이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공정무역은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닌 생산자에 대한 철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한다. 생산자들도 주어진 기회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가끔은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에는 네팔에서 건너 온 옷 120점 전부를 수선해야 했다.

생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깨가 틀어져서 왔기 때문이다. 패션 기업의 사장으로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이미영 대표의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수선집 주인도 국내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수선 의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정을 듣고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선을 해줬다. 도움은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종종 이어졌다.

베틀은 돌릴 수 있지만 디자인에는 취약한 그들을 위해 디자이너 홍승완은 그곳에서 보내온 원단을 가지고 직접 디자인을 해줬다. 한 탤런트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드라마에서 아토피를 가진 아기의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 친환경 의류를 입고 촬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남들 다 한다는 드라마 협찬도 하게 되었다.

“계속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부터 아예 소액 주주가 되는 고객들까지, 다양한 지원들이 이어질 때 제일 힘이 나요. 최근에는 한 패션센터에서 운영하는 패션 MD 과정을 이수했어요. 패션도 시장도 제대로 알아야 공정무역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투박한 그루의 디자인은 손으로 만졌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섬유 사이사이에 함유된 공기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사람의 손을 거쳐야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이다. 때문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사실 옷은 원래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달리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그루의 옷은 무언가를 말해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루 매장 : 02-739-7944, www.ecofairtrad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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