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앙팡테리블] (13) 피아니스트 김준희

노래 잘하는 가수는 청자를 노래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다.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들리게 하는 감정의 몰입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클래식에도 그런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니스트가 있다. 달콤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마음을 알아채고 귀가 아닌 마음을 두드리는 느낌이다.

“교감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관객과의 교감일수도 있고 나 자신과의 교감 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작곡가와의 교감일 수도 있구요. 내가 음악에 파고들수록 내면적인 연결고리를 느낄 수 있어요. 가슴으로 그 곡을 받아들이게 되고 또한 가슴으로 연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김준희(19). 아직 앳된 얼굴의 10대 소년이지만 피아노에 앞서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소년에 머물지 않는다. ‘집중력이 매우 뛰어나며, 아직 어리지만 그는 이미 대단한 음악가’(제49회 롱 티보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장 치콜리니), ‘음악세계가 뚜렷한 피아니스트로 벌써 자기만의 소리와 판타지 감각을 함께 지니고 있다.’(피아니스트 백건우). 대가들로부터 받아온 이 같은 평가는 피아니스트 김준희의 존재를 어느 정도 짐작케 한다.

대개의 클래식 유망주들이 그러하듯이 그 역시 화려한 콩쿠르 경력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2년 전, 2위에 입상하며 클래식계에 이름을 알렸다. 최연소로 그랑프리 2위를 비롯해 모차르트 특별상, 모나코 왕자 특별상, 일본 페이퍼 그룹 특별상 등 총 4개 부문을 석권했다. 2006년 에틀링겐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3위와 일찍이 국내 유수의 음악 콩쿠르를 휩쓸어 왔던 그다.

새로운 곡을 공부해야 하는 심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평균 3~4시간에 달하는 연주 곡을 암기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느낀다고 생각하면 다시금 즐거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콩쿠르가 없었다면 지금의 저 역시 없었을 거에요. 콩쿠르 수상 이후 생긴 많은 연주 기회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큰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그 중 하나가 지난해부터 화제를 모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공연이다. 거장이 선택한 세 명의 젊은 피아니스트 중 최연소 피아니스트가 김준희인 것. 그는 여전히 ‘기적 같은 일’이라며 얼굴을 꼬집어볼 듯 흥분하고 있었다.

“제가 처음으로 음반을 접한 게 백건우 선생님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이었거든요. 격렬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존경하던 분을 롱 티보 콩쿠르 동안 만나게 되었어요. 당시엔 꿈인 줄 알았는데 진짜라는 게 지금도 믿기 지가 않아요.”

5월의 공연 외에도 그는 올해 많은 연주를 해왔고 또 앞두고 있다. 일본, 중국, 프랑스에서의 연주회,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의 단원으로서 실내악 공연, 그리고 6월 중순경 호암 아트홀에서 열리는 독주회까지.

어떤 공연에도 중점을 두지 않지만 어느 한 공연만 ‘특별히’라는 것도 없다. 작은 살롱음악회조차 그에겐 몰입의 대상일 뿐이다. 다만 지나친 욕심만큼은 경계한다고 말했다. 그가 어른스럽다고 느껴진 것은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한 진지한 성찰 때문일 것이다.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진 길이었지만, 자신이 이 길 위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는 잠들지 않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연주자. 관객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고, 예술혼을 살라온 작곡가에 대한 경외심 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어떻게 한 곡 한 곡을 소홀히 대할 수 있겠어요.” 아직 만개하지 않은 젊은 연주자의 다부진 포부에 믿음이 실린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