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관 한국예술경영연구소 소장CEO따라 달라지는 리더십보다 '시즌제' 도입 등 제도 정비가 해법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문제다.”

이용관(52) 한국예술경영연구소장이 내놓은 불황기 공연예술계의 위기 탈출법이다.

그의 해법에는 역사적 예증이 있다. 10여년 전 IMF 외환위기 때 시스템이 허약한 우리 공연시장 규모는 40~5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반면, 미국은 1990년을 전후해 극심한 경기침체를 겪으면서도 전국 비영리 극단(극장)의 티켓 판매수입이 평균 5% 하락하는데 그쳤다.

얼마나 충격에 강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느냐가 이런 차이의 원인이라는 게 이 소장의 주장이다. 8일 서울 종로에서 이 소장을 만나 경제불황에 더한 리더십의 위기로 휘청거리는 공연예술계의 해법을 물었다.

찻집에서는 말을 아끼던 이 소장은 술자리에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관점을 털어놓았다. 이 소장은 안양문화예술회관 관장, 호암아트홀 문화사업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성균관대에서 공연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예술경영 전문가다.

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 공연예술계의 살 길을 묻자 이 소장은 “CEO가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리더십은 언제든지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며 “공연예술 경영을 시스템 중심으로 정비하고 지역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한 예술생태계의 저변을 확보해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위기도 기회로 바뀔 수 있다”고 요약했다.

“우리 공연장, 스케줄이 없다”

‘스케줄’을 살려야 공연예술이 산다고 이 소장은 강조한다. 관장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는 주먹구구식 공연장 운영은 경영 선진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 공연장이 위기에 취약한 원인이다.

그의 지적과 우리의 현실은 정확히 반대다. 대부분의 공연장이 짜여진 공연스케줄에 맞춘 계획적 공연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이 개관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도 첫 작품 외에 어떤 콘텐츠로 공연장을 채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 소장이 공연장 ‘시즌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 등 공연예술 선진국에서는 예술감독이 미리 선택한 프로그램(20여 개~100여 개 가량)이 9월 시즌 시작과 동시에 공개된다. 이 스케줄에는 다음해 6월분까지가 포함돼 있다. 선진국 공연장은 대부분 콘텐츠 계획이 공연장 설립준비 과정에 이뤄져 건물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개관 이전에 완성된다.

‘시즌’이 개막하면, 이미 티켓의 절반 이상은 팔린 상태다. 시즌 개막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소비자 만족을 고려한 ‘백 스테이지 투어’등 각종 관객만족 프로그램까지 개발할 여유가 생기는 이유다.

이 소장은 “시즌제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50여 년 이상 지난 정착된 제도”라며 “이는 경제위기에 강할 뿐 아니라 계획 경영을 가능하게 해 공연예술의 진흥을 영구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지역 문예회관 살려야”

‘기획’ 없는 공연장은 그렇고 그런 공연을 올리게 하는 원인이라는 점 역시 이 소장이 꼬집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문화예술회관 160여 개의 70% 이상이 아예 기획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전문가가 운영하며 기획예산이 있는 문화예술회관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해마다 전국문예회관연합회에서 주관하는 문예회관경진대회에서 자발적으로 나서 운영사례를 발표하는 문예회관은 전국 100여 개 가입회관 중 30%가 되지 않는다.

“수시로 교체되는 비전문가들이 변변한 예산도 없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질적 양적으로 영세한 예술이나 일반행사에 대관이나 해주는 식으로 버티고 있다”는 게 이 관장의 지적이다.

“넓게 보면 우리나라 공연예술 유통의 중심이 돼야 할 공연장들이 대부분 만성 동맥경화증에 걸려 있어 예술의 피가 골고루 통하지 않고 극히 일부지역에만 한정되는 원인”이라는 게 이 소장의 분석이다.

문화예술회관의 70% 이상은 순환보직을 하는 공무원이 경영을 맡고 있다. 사명감으로 뭉쳐 지역 여기저기를 다니며 공연자금을 끌어모으고 유명공연을 유치하거나 창작공연을 기획하는 일부 공무원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번번이 ‘시스템의 벽’에 부딪히고 좌절한다.

지역 문화예술회관의 기획과 운영시스템의 미비는 이런 공무원이 떠나면 언제든 위기를 맞는 것이다.

“사람 탓 그만하고 시스템을 살리자”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인정하고 일관된 태도로 밀고나가면 사람이 바뀌어도 공연예술의 진흥을 통한 문화향유권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 소장은 “아무리 저명한 리더가 와도 기획 마인드.예산이 없으면 대관위주의 운영밖에 불가능하다”며 “인프라에 맞는 기획만이 예술생태계의 작동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우리 공연예술은 사람이 바뀌면 확 바뀌는 경향이 있다”며 “지속성, 연속성, 일관성 있는 합의된 시스템에 의한 공연예술 경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이 와서 마이너(minor; 소수의, 2류의)한 선택을 할 수 있지만 머저리티(majority; 다수의)를 바꾸지는 못한다”는 게 이 소장의 말이다.

이 소장이 말하는 위기의 공연예술 해법은 일관되게 ‘사람’ 보다는 ‘시스템’이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