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혁명가] (31) 연출가 이성원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 시즌2 성공적 출발로 주목받아조연출 경력 10년 동안 기량 갈고닦은 '준비된 연출가'

작년 한국뮤지컬대상에서 6관왕의 영광을 차지했던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이 다시 화려한 막을 올렸다. 4월4일 호암아트홀에서 프리뷰 공연을 시작으로 ‘내 마음의 풍금’은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잘 만든 창작뮤지컬”이란 찬사를 받으며 순항 중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해요. 연습 내내 과연 관객을 모시고 공연을 할 수 있을까 늘 조마조마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무대에 오르니 배우들이 실수 한 번 하지 않고 곧잘 해내는 거예요.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 소리에 휴~ 내가 해냈구나! 요즘 커튼콜 때마다 눈물이 맺히곤 해요.”

앙코르 ‘내 마음의 풍금’을 연출한 이성원 씨(35)에게 이 뮤지컬은 넘어야 할 큰 산이나 다름없었다. ‘내 마음의 풍금’은 작년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역대 최다 노미네이트’란 기록에 연출상, 최우수작품상을 포함해 6관왕이란 영광의 훈장을 받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시즌2를 맡은 연출가가 부담을 갖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다행인건 그는 ‘내 마음의 풍금’시즌1 때 조연출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이 뮤지컬은 이성원 씨가 처음 도전하는 상업 뮤지컬 데뷔작인 셈이다.

“조광화 연출가가 워낙 잘 만들어 놓은 작품이어서 제가 바통을 잘 이어받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일단 관객들이 작년 작품과 비교할 때 실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만들었지요. 새롭게 만들기보다는 그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재발견하고 다듬고 고치는 데 신경을 많이 쓴 편이죠.”

그 결과 ‘내 마음의 풍금’시즌2는 새로운 배우와 주요 스태프 교체라는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조광화 연출에서 이성원 연출로, 홍연 역의 배우 이정미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배우가 교체됐다. 특히 총각 선생님 강동수 역을 맡았던 배우 오만석, 조정석 대신 뮤지컬계에서 떠오르는 샛별 성두섭, 이창용, 이지훈 등으로 교체해 풋풋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러닝타임이 지난해보다 6~7분 정도 줄어든 것도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초연 작품이 아무리 호평을 받았어도 ‘절대 완성도 공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철학 아래 체중감량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런 다이어트 과정은 극의 긴밀함과 관객이 극에 집중할 수 있는 효과까지 발휘했다. 장면(scene)과 장면의 이음새가 매끄러운 것도 시즌2의 특징이다. 멜로디를 부분 수정하고 뮤지컬 넘버를 재배치하는 등 드라마와 뮤지컬 넘버의 기능과 복선이 좀 더 치밀하게 엮어질 수 있도록 주안점을 둔 것이다.

“창작뮤지컬은 당시 공연했던 배우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어요. 연습과정에서 배우의 연기성향에 따라 대본이 수정, 보완되기도 하거든요. 시즌1의 배우들이 워낙 연기를 잘했는데 그런 장점들을 가져와 이번 배우들의 성향에 맞게 옮기는 과정이 급선무라 생각했어요.”

‘내 마음의 풍금’은 ‘홍연의 홍연에 의한 홍연을 위한 공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총각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홍연의 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관객은 마치 자신이 홍연이 된 듯한 동일시 과정을 체험하게 된다. 홍연의 첫사랑과 성장통이 더욱 애틋해지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시즌1이 강동수의 시점이었다면 시즌2는 홍연으로 시점이 바뀐 셈이다.

이성원 씨는 연극 ‘미친 키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소리 도둑’등 주로 연극과 뮤지컬 등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어디까지나 조연출이었다. “전 조연출을 ‘직업’으로 생각했어요. 연출이 되기 전의 어쩔 수 없는 과정, 경험을 쌓기 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뜻이에요. ‘난 전문 조연출이야’라고 자부심을 갖고 말하고 다녔죠.”

하지만 그가 남들과 달랐던 점은 연출로 데뷔하기 위해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성원 씨의 조연출 경력은 만 10년. 그가 조연출이란 직업을 즐겼던 흔적이 역력한 셈이다.

“연출, 조연출 같은 포지션이나 연극, 뮤지컬 같은 장르를 따지기보다 제가 어떤 걸 잘하는지 경험을 쌓고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내 마음의 풍금’은 그런 점에서 저를 성장시킨 작품이지요. 게다가 초연작품에서 조연출을 했다가 연출로 ‘입봉’(데뷔)하니 작품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답니다.(웃음)”

이 씨가 말하는 ‘전문 조연출’의 역할은 연출이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배우나 스태프 스케줄 관리부터 뮤지컬 전반의 일을 자신이 담당하는 것이었다. 앙상블부터 주연 배우까지 챙기는 건 언제나 그의 몫. 배우들은 연출에게 하기 힘든 이야기를 조연출이었던 그에게 스스럼없이 토로하곤 했다. 집안 살림꾼처럼 세세한 일들을 담당해왔기에 그는 연출에 대한 간접경험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내 마음의 풍금’은 같이 참여했던 작품이었기에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순전히 자만이라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연출과 조연출은 천양지차였다. 최종 결정권자라는 직책이 조연출 시절에는 얼마나 막중한 책임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오디션 때 ‘연출 이성원’이라는 팻말을 보고 현기증과 울렁증을 느낀 게 바로 엊그제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배우, 스태프들이 자신의 말에 경청하고 따라줄 때야말로 짜릿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캬! 이런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내 마음의 풍금' 공연 장면, '강동수 역의 이지훈'

‘내 마음의 풍금’은 7주간의 연습을 통해 무대에 올려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강동수 역의 세 배우를 연습시킬 때였다. “남자 배우 세 명과 각각 맨투맨으로 만나 밥도 같이 먹고 볼링도 치면서 개인적으로 친해졌죠. 세 명의 개성이 너무 달라 각각의 장점을 살리다 보니 의도치 않게도 각기 다른 세 명의 강동수가 탄생했더라고요.(웃음)”

실제 ‘내 마음의 풍금’의 남자 배우 세 명은 ‘삼인 삼색’을 자랑한다. 이창용이란 배우가 귀엽고 풋풋한 남동생 같은 강동수라면, 성두섭은 설레는 총각 선생님 강동수 그 자체다. 진지하면서 동시에 어설퍼 보이는 것이 그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그렇다면 가수 겸 연기자 이지훈은? 그는 마치 스폰지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본에서 요구하는 교과서 같은 강동수가 바로 이지훈이다.

이성원 씨는 공연이 무대에 오르기 전 불면증에 시달리고 응급실에 가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내 마음의 풍금’이야말로 그의 연출 인생의 성장통을 안겨준 작품인 셈이다. 이 씨는 말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죠. 10년 동안 조연출이란 경험이 연출 생활에 어떤 빛을 발휘할지 모르지만 나비가 알을 깨고 번데기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되는 것처럼 저 또한 이제 갓 날갯짓을 한 나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어쩌죠? 관객들의 사랑 때문에 달콤한 봄의 매력을 이미 맛본 나비인걸요.(웃음)”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