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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세계' 통해 현실을 말하다
[문화계 앙팡테리블] (15) 소설가 염승숙
발랄한 문체·기발한 상상력으로 평범한 인간 군상에 포커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어깨를 톡톡, “여봇씨요”, “네?” 하고 나면 바로, 채플린이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어요.’ (단편 ‘채플린, 채플린’ 중에서)

27살 염승숙의 소설은 발랄하다. 동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작중 인물들은 환상의 세계를 유유히 헤엄친다. 염승숙 소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 옴짝달싹 못하는 채플린이 되거나(단편 ‘채플린 채플린’), 달력 속으로 들어가거나(단편 ‘춤추는 핀업걸’), 온 몸에 숫자를 새겨 태어나는(단편 ‘수의 세계’) 기구한 삶을 사는 자들이다. 심지어 입에서 선사시대의 공룡 뼈가 사랑니처럼 생기기도 한다(단편 ‘거인이 온다’).

2005년 현대문학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활동한 그는 이처럼 ‘환상의 세계’를 통해 오늘의 현실을 말한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부풀린 거대한 풍선이 그보다 힘센 못으로 현실에 정박해 있는 모습, 이것이 염승숙 소설의 모양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는 “염승숙의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는 기존의 규범적인 언어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개인 환상들의 세계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 기구한 운명을 달고 태어난 주인공의 주변에는 언제나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인물들이 북적인다. 발랄한 문체와 기발한 상상력을 통해 정작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인간 군상이다.

“환상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채플린 채플린’에서도 사람들이 채플린으로 변한다는 발상은 소설의 기법 중 하나로 활용했을 뿐이고요. 이 발상을 통해서 주인공 모철수씨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철수 주변에 어떤 인물이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생게망게한’, ‘상글방글’, ‘한드랑한드랑’ 등 작품에 등장하는 우리말은 읽는 맛을 더한다. ‘악다구니’에서 변형한 ‘엉멍구리’, ‘호락호락’을 변형시킨 ‘호랑호랑’등 전략적으로 배치한 우리말의 변형 꼴도 눈에 띈다.

다양한 언어적 시도에 대해 작가는 “습작 때부터 단어에 대한 집착이 컸다. 작가면 우리말을 보존하고 지키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다”고 말했다.

“대학시절부터 사전을 들고 다녔어요. 단순한 이유였는데, ‘소설을 쓸 때 알고 있는 단어가 많으면 얼마나 다채로울 수 있을까?’란 생각 때문이었어요. 초반에는 (단어 배열을) 잘 조절하지 못했죠. 소설집을 발표순으로 엮었는데, 뒤로 갈수록 ‘이 인물이 이런 단어를 사용할까?’를 생각하면서 (우리말 단어 배치를) 조절했어요.”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의 ‘작가의 말’에서 그는 ‘나는 이 세계에서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었고, 일 초 전에 숨 쉬던 나는 일 초 후에 어디로 가는 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작품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오롯이 나에 집중해 소소한 인물을 던져 놓았다면, 이제는 나와 그들의 관계, 신분과 계급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작품이 묶이는 1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또 한 세계가 열린 셈이다.

매끈하고 유기적인 서사를 이끄는 이야기꾼과 분열을 실험하는 급진적 서사를 시도하는 스타일리스트. 현재 한국 소설가의 특징은 이처럼 서사로 구분된다. 작가 염승숙의 좌표는 그 중간쯤에 있을 터다. 환상적 상상력과 현실성을 두루 갖춘 우리말 입담꾼. 젊은 작가가 쏟아지는 한국 문단에서 그가 주목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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