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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예술혼으로 세상에 희망을
[문화혁명가] (32) 조수연 갤러리 빔 관장
회원제 방식의 독특한 갤러리 운영으로 가난한 예술가 후원
최근엔 독립영화 제작뿐 아니라 대체의학 공부에도 큰 관심





류희 문화전문라이터 chironyou@paran.com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묶고 덥수룩한 수염에 구제 스타일의 점퍼, 청바지에 등산화를 신은 그는 언제라도 떠날 채비를 갖춘 사람 같았다. 외모를 보면 영락없는 예술가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에 위치한 갤러리 빔(biim) 관장 조수연(48) 씨. 그를 예술가로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엉뚱한 것이 아니다. 조 씨는 미디어아트 작가이자 포토그래퍼이고, 최근엔 독립영화 제작과 시나리오 쓰기에도 몰두 중이다.

또한 그는 대체의학을 틈틈이 공부해 제2의 인생을 기획하는 중이기도 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전방위 예술가 조수연 씨를 만났다.

갤러리 빔은 ‘트렌드의 거리’라 불리는 삼청동 거리 문화를 바꾼 1세대 주자에 해당한다. 조 씨가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1999년이다. 마치 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거리 분위기가 그에겐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지금 삼청동은 ‘강북 속 강남’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릴 만큼 화려하게 변신 중이다.

청담동의 고급스런 와인바나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다. 게다가 갤러리, 아트숍, 디자인숍 등이 즐비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으며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한마디로 트렌드의 대명사인 셈이다. 하지만 조 씨가 삼청동에 터전을 마련할 당시에는 전통한옥과 오래된 음식점들이 군데군데 있을 뿐 평범하고 오래된 주택가에 불과했다.

“부부 작가로서 갤러리를 만들어 맘껏 전시를 하자는 생각으로 처음 이곳에 자리를 잡았지요. 그 후 가능성 있는 젊은 작가들에겐 문턱이 낮은 전문 갤러리로 다가가 전시 기회를 주고 빔만의 새로운 방식으로 후원제도를 만들어 차별화된 갤러리로 이름을 알렸죠.”

당시 홍익대 인근이나 인사동에 비해 월등히 싼 집값 덕에 오래된 집 두 채를 마련한 그는 ㄷ자 형의 독특한 공간을 그대로 살려 갤러리 겸 카페테리아를 만들었다. 빔은 평범한 상업화랑도, 그렇다고 대안공간도 아니다.

빔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보하며 9년째 변함없는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갤러리를 회원제로 운영하는 차별화 전략 때문이다. 예술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작가를 후원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회원간의 교류와 소통을 중요시하는 곳이 바로 빔이다.

소수의 컬렉터나 정부 지원금이 아닌 순수하게 문화를 사랑하는 일반 대중이 작가를 지원하는 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콘셉트라 할 수 있다. 빔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작가와 회원간의 교류와 소통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카페테리아를 운영하기도 했다.

갤러리보다는 작가와 회원들의 존재를 부각시켜 둘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했던 셈이다. 조수연 씨는 카페테리아에서 직접 스테이크를 굽기도 했었다.

“빔은 이벤트가 가장 많은 갤러리 중 하나였어요. 오프닝부터 전시가 끝날 때까지 주말마다 작가의 전시 콘셉트에 맞춰 파티를 기획하곤 했지요. 웬만한 큐레이터나 작가들이 모여서 서로 공통분모를 찾아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밤이 새는 지도 몰랐어요.”

주말마다 배고픈 예술가들은 빔에 자주 모이곤 했다. 어느새 이곳은 가난한 예술가들이 둥지를 만들어 형성된 뉴욕의 이스트 빌리지처럼 예술혼이 꽃피는 동네로 성장했다. 일반 대중이 단순한 문화 소비자에서 후원자로, 더 나아가 생산자의 역할까지 하도록 돕는 것이 빔의 ‘정신’이었다.

“삼청동 일대가 명소가 되면서 1층에 자리한 빔을 탐내는 곳이 많아졌어요. 임대를 줘서 수익을 챙기라고요. 소득을 못 내는 빔을 ‘경제 공부하시는 분’들이 가끔 ‘바보’라고 놀리기도 하시죠.(웃음) 빔에서 전시를 한 후 성공한 작가들이나 이곳을 추억하는 분들에게 떳떳하고 싶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초지일관 버티는 자세도 필요해요. 빔은 그런 면에서 앞으로 특별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조수연 씨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 때문에 빔에서는 종종 뜻 깊은 전시와 이벤트들이 기획되곤 한다. 그 중 조 씨가 최고의 전시로 꼽는 것은 소아마비와 근위축증을 앓고 있던 사인펜화 작가 석미섭 씨의 <생애 마지막 전시회>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복지관에 살면서 길어야 3년만 산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던 석 씨를 기적적으로 살린 건 바로 스케치북과 사인펜이었다.

그녀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소원은 갤러리 빔의 전시를 통해 이뤄진 셈이다. 반응은 꽤 컸다. 그녀의 전시를 관람하고 소장하고 싶은 관객의 문의 전화가 쇄도한 것이다. 조수연 씨는 다음 해 <아름다운 오월 이벤트>전을 기획해 생활용품과 아트상품으로 제작된 작가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설치하면서 감동적인 시간을 선사하기도 했다.

신학을 전공한 조수연 씨는 목사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하지만 4학년 마지막 학기 때 ‘향기’에 대한 설교를 들은 후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너, 예술 해라”라는 목사님의 말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그는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했다. 사진은 중학교 시절부터 동네 사진관 아저씨 밑에서 잔심부름을 도맡으며 기본기를 탄탄하게 배운 터였다. 어깨 너머로 배운 사진 실력으로 대학교 1학년 때 황순원의 ‘소나기’를 자신만의 독특한 연출법으로 찍은 사진도 있다.

오랫동안 미디어아트 작가와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취재하고 인터뷰했던 작업들을 보니 그 자체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조 씨는 요즘 그런 작업들을 모아 독립영화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우리나라 ‘1세대 가수’들의 낭만적인 삶과 애환에 대한 절절한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며 직접 설명하는 그를 보고 필자는 곧 뜰 독립영화감독을 먼저 만나는 기분이었다.

후반 막바지 작업만 마치면 곧 출품할 계획인 다큐멘터리 형식의 독립영화는 잊혀진 1세대 가수들을 기록하고 그들의 음악을 발굴, 보전한다는 의미 그 이상이다. 당대 최고의 가수였지만 경제적으로 빈곤하게 사는 가수들의 복지와 처우문제 등이 조 씨로 하여금 서둘러 영화를 제작하게 만들었다. 그가 아니었어도 누군가 꼭 해야만 하는 ‘사명’과도 같은 작업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조 씨의 계획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산 모시타운 인근에 ‘미술관 빔’을 조만간 건립할 예정이다.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만들 공간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갤러리 빔에서 하지 못하는 전시와 기획들은 한산의 미술관 빔에서 이뤄질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하던 예술작업과 사뭇 다른 대체의학을 향한 그의 열망은 무척 구체적이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르가 카메라를 들고 세계일주를 하며 소외된 사람들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아냈다면 저는 대체의학을 공부해 병으로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침’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요.”

미술관 빔 건립이나 독립영화 제작, 대체의학 공부. 조수연 씨가 하나씩 준비중인 일들의 공통점은 바로 소외된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들이라는 점이다. 머나먼 꿈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그의 계획들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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