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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도자 재현 넘어 세계 명품으로"
[한국초대석] 도자기 명장 항산 임항택
자유분방한 백자에 매력… 산처럼 우직하게 정진
진사안료 특허 등록·전통 가마 복원 성공
'한중도자명인 100인전'서 자극 얻고파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사진 임재범 기자 happyyjb@hk.co.kr



“소더비, 크리스피에서 한국 도자가 왜 수백만 달러에 팔리는지 아세요?”

지난달 29일 경기도 이천시 항산도예연구소에서 만난 대한민국 도자기 명장 항산(恒山) 임항택은 세 가지 이유를 꼽았다. 희소성과 특유한 감수성, 그리고 도자의 품격을 최상으로 끌어올린 생산의 전통이 그것이다.

“한국 도자는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독창적이죠. 상감 기법을 적용한 고려 청자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렇게 맑은 빛을 품은 중국 도자는 없습니다. 조선 왕실은 관청을 따로 두어 도자를 관할했는데, 그것이 도자에 고급한 철학과 문화가 집약된 기반이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졌다. 중국 도자와는 색을 내는 경로가 다르다. 당에서 발달한 ‘당삼채’의 경우, 그 알록달록한 색은 구운 도자 위에 입혀진다.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다. 하지만 백자와 분청사기의 색은 도자를 굽기 전 그려진다.

가마의 온도와 상태에 따라 의도와는 다른 색이 우러날 수 있다. 집념으로 구상하되 가마에 넣는 순간 집착은 버려야 한다. “가장 어렵고 고달프고 지난한 방법”이다. 그렇게, 불과 운명으로 고아낸 색은 점잖고 깊었다.

하지만 명장은 한국 도자가 가치만큼 대접받지 못한다는 점이 서운하다. 명맥이 지속될 수 없는 역사 탓도 컸다. 잦은 전란은 도자 문화의 바탕을 뒤흔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조선 도공이 일본으로 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19c 말 조선 말기의 혼돈 속에서 정부가 직접 관리하던 관요가 폐쇄되었고, 덩달아 왕실 도자기의 전통도 끊겼다. 이후 ‘한국미술품연구소’가 설립되어 비로소 고려청자, 조선백자 재현을 시도하기 시작한 1956년까지 약 “두 세대 반”의 공백기가 있었다.

명장도 1972년에야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백자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조선백자가 재현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았다. 도자의 길로 들어선 계기였다. 고등학교 미술교사였던 그는 사표를 내고 “요강 공부하러 간다”며 통곡하는 노모를 뒤로 한 채 1975년 이천으로 향했다.

하지만 역사의 단절은 한계였다. 정리된 이론이 없었다. 부딪혀 체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선백자를 재현하는 단계를 넘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인정 받았으며 지난 2005년에는 백자를 붉게 발색시키는 진사안료의 제조방법을 연구, 특허로 등록하고 최근 조선백자의 근원지인 양구의 전통가마를 복원하는 데 성공한 명장도 “아직까지 다 못 배웠다”고 토로한다.

“19c 말 기술은 많이 따라 잡았어요. 하지만 그때 조선 도공들의 심성이나 철학까지는 못 들여다보지 않습니까.”

정작 명장은 ‘무한한 자유’ 때문에 백자에 끌렸다.

“남녀의 치부를 그린 백자가 있어요. 양반을 조롱하는 의도죠. 까치와 호랑이를 함께 그린 것도 있는데, 서민과 양반 간 싸움을 뜻합니다. 청자는 아무래도 불교문화에 바탕하고 있어 표현이 제한되는데, 백자는 분방합니다.”

분청사기에서는 서민들의 정서를 취했다. 고급자기를 만드는 맑고 깨끗한 흙이 완성되기 전 “과도기”에 발달한 분청사기는 왕실보다는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일상적으로 쓰이며 생활이 담겼다. 소박하지만 활력이 넘치는 표현이 특징이 되었다.

명장의 도자는 성과 속을 오간다. 저 아름다운 문양들에는 제각각 현실적인 의미가 있다. 붉게 익은 석류와 홍시는 결실과 풍요, 득남득녀를 뜻한다. 사군자 중 하나인 매화는 추위를 견디고 이른 봄에 핀다 하여 고고한 품위를 풍긴다. 소나무는 장수이고 진흙 속에 피는 연꽃은 고행과 수도, 떼지어 몰려다니는 새우는 우정의 상이다.





그래서 도자도, 도자를 가까이 함도 문화다. 도자를 생각하고 만드는 일 역시.

명장은 이런 한국문화가 면면하기를 바란다. 언뜻 아이러니하게 들릴지는 모르지만, 복원한 도자를 현대적으로 변주하는 것도 그런 바람에 의한 것이다. 도자 중 30% 정도에는 새로운 형과 색을 시도해본다. 시야를 넓히기 위해 해외의 도자 연구를 살피고, 파격적인 디자인을 찾아본다. 문양을 개발하고, 백자에도 상감 기법을 도입해볼 생각이다. 도자를 구입하는 세대와 생활공간, 일상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명장이 출품하는 ‘한중도자명인 100인전’에서도 자극을 얻고자 한다. 도자 분야에서는 국제적 교류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중국의 도자를 좀더 가깝고, 깊게 이해하려는 기대를 갖고 있다. 정부도 한국 도자문화를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주었으면 한다.

‘항산’은 백부가 지어준 호다. 한학을 공부한 백부는 세 아들을 제쳐두고, 어린 임항택에게 “호를 지어줄 사람은 너 뿐”이라는 운명을 점지해주었다. “한학을 공부하다 보면 천문지리를 깨치게 되는데, 그런 눈으로 나를 봐주신 것 같다”고 산처럼 우직하게 도자 인생을 살아온 명장이 말했다. 그는 5월6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한중도자명인100인전’에 참가한 후, 7월1일부터 8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항산 임항택 진사백자전’을 연다.

항산 임항택 명장은…


1946년 생. 충주공업고등전문학교(현 충주대학) 기계과 졸업 후 4년간 교직 생활을 했다. 조선백자 연구에 뜻을 품고 1975년 이천으로와 백석 이정하에게 2년간 사사했다.

1977년 신세계화랑 개인전을 열고 항산도예연구소를 세운 후 진사연구에 전념했다. 2002년 도자기공예기능사를 취득했고 2004년 도자기공예부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되었다. 2005년 진사안료 제조방법을 개발, 발명특허 등록했다.

일본 도쿄, 프랑스 파리, 미국 LA, 러시아에서의 전시를 포함, 총 50회의 전시 경력이 있다. 현재는 한국전승도예협회회장이자 한국도자문화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천이 도자의 중심이 된 까닭은?


매년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이천에는 현재 약 350개의 공방이 있다. 수도권 도자 문화의 중심지다. 이곳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도자에 필요한 흙과 물, 나무가 잘 갖춰진 지역이라는 해석이 보편적이다. 하지만 이곳의 터줏대감 임항택 명장의 대답은 다르다.

"도자에 필요한 흙은 어차피 전국에서 공수합니다. 도자 하나에 한 지역의 흙만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도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게까지 맑은 연수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임항택 명장이 밝히는 연유는 사람이다. 1956년 '한국미술품연구소'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한 것이 단초였다. 여기에 소속되어 있던 도예가들은 서울을 떠나 도자를 실험할 터전을 찾았다. 마침 가깝고, 옹기터가 형성되어 있던 이천이 적소였다.

그렇게 형성된 이천 도자 문화는 1960년대 입소문을 들은 일본인들이 이곳을 활발히 찾으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한중도자명인 100인전 도자유혼 陶瓷有魂


항산 임항택 명장의 백자황금진사채매화문대호, 백자진사홍시문대호, 백자진사석류문호를 5월6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는 '한중도자명인 100인전'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도자문화협회의 창립기념 전시회로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도예작가 100명이 각각 3점의 작품으로 참여한다. 도천 천한봉, 방곡 서동규, 한도 서광수 등 한국 무형문화재와 고소배, 서한당, 포지강 같은 중국의 국가급 공예대사의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주요 작가 및 작품





도천 천한봉(무형문화재)의 막사발

도천 천한봉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넘어가, 국내에서는 그 맥이 끊긴 막사발을 재현한 도예작가다. 막사발은 서민들이 차를 마실 때 주로 쓰였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것은 대정호다완, 두두옥다완, 분인다완. 정취가 무던하면서도 정감 있다.





해강 유광열(대한민국 도자기 명장)의 청자

해광 유광열 명장은 무형문화재였던 선친 故 유근형의 뒤를 이어 조선 시대 단절되었던 고려청자의 전통을 되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역상감 기법을 사용한 청자상감동화모란무늬과형항아리, 실루엣이 당당한 청자상감복사무늬매병, 현대적인 느낌의 청자상감모란당초무늬팔각발을 선보였다.





묵심 이학천(무형문화재)의 퓨전 도자

7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묵심 이학천은 도자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23년 전 색이 다른 흙을 여러 겹 바르고, 그것을 조각해 칠 없이 색을 내는 다중분장상감기법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번 전시의 청화백자잉어문호, 다중분잡호상감기법고향, 진사백자왜병은 도자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빠오즈창(중국 공예미술대사)의 자사차호

자사차호는 중국 도자 문화의 중심지인 '이싱'에서만 출토되는 특수광물질인 자사로 만든 도자로 희소성이 높다. 빠오즈창은 이 도자의 기본형에 포용과 자유라는 철학을 담아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는 옥대정상(玉帶呈祥) 세트를 출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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